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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봅 Jul 18. 2020

요가하는 나르시시스트


 

 예쁜 운동. 


나에게 요가는 그런 이미지였다. 예쁜 사람들이 예쁜 옷을 입고 예쁜 (혹은 말도 안 되는) 동작을 하는 그런 운동. 하지만 내가 직접 해 본 요가는 그냥 ‘예쁜 운동’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잖은가, 요가는 생각보다 빡세다. 힘과 유연성, 균형감각이 동시에 필요하며 그 ‘예쁜’ 동작을 만들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몸이 아파야 하는가. 그렇게 어찌어찌 예쁜 동작을 만들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운동에 지친 표정은 또 어찌할 것이며, 땀에 절어 산발이 된 머리카락은 또 어찌할 것이냔 말이다.      


 그래서 낸 나의 결론은, ‘예쁜 운동 화보는 존재할지언정 예쁜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과는 상관없이 나는 요가하는 내 모습이 멋있어 죽겠다. 그건 내가 입은 요가복이 예뻐서도 아니고, 내가 취하는 동작이 정확해서도 아니며, 운동하는 내 얼굴이 예뻐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요가라는 운동을 하고 있는 나의 행위 자체가 너무 멋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마 이건 내가 요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가지고 있던 환상이 빚어낸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땀내 안 날 것 같은 운동. 괴롭지만 우아한 운동.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운동.... 뭐 그런 것.      


 사실 땀내가 난다는 것만 제외하면 딱히 저 환상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게 나의 요가 나르시시즘에 한 축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요가를 하는 사람들 중엔 실제로도 저렇게 멋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몸을 단련하고, 마음을 단련하고,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한 사람들. 그런데 심지어 그런 사람들은 그 멋진 동작을 하고서도 우쭐하지 않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내면을 가꾸는 말 그대로 심신을 ‘수련’한다고 하니, 사실 이건 내게 완전 딴 세상 이야기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요가에 관한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정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은 아님을 느낀다. 나는 내면의 수련은커녕 육체의 수련으로도 벅차 할 뿐 아니라 사사로운 모든 동작들까지 남과 비교한다. 내가 잘 되는 어떤 동작 앞에선 우쭐하고, 남보다 못한 동작을 할 때면 눈치를 본다.     

 

 옆사람이랑 비교하지 마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할 수 있는 만큼에서 아주 약간만 더 나아가 보세요.라고 말하는 선생님께 반항이라도 하듯 비교하고, 무리하고, 내 능력보다 훨씬 더 잘하고 싶어 욕심낸다.      


 그리고 그렇게 어떤 동작을 무리해서 만들어 내면 당연히 온몸의 근육은 긴장되어 있고, 언제 균형을 잃고 쓰러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가 되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하면 스스로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몇 초에 불과 하지만 내가 이 멋진 동작을 하다니!      


 동네 사람들, 내가 이 동작을 해요! 앞사람들 몇몇은 성공하지만 뒷사람들 대부분은 못 해내는 이 동작을 내가 한다고요! 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으로 가슴이 팔딱팔딱 뛰는 것이다.       


 나의 이런 꼴이 오랫동안 요가를 수련해 온 사람들이 봤을 때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넘길지, 아등바등 어떻게든 해 내려는 모습이 우스워 보일지... 가능하면 전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웃긴 것은, 나 스스로도 내가 하는 요가가 요가의 정신과는 다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기야, 그게 가능했더라면 진작에 고수의 반열에 올랐겠지. (고수라는 단어가 요가와 또 어울리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기어코 쓰는 게 또다시 나의 수준을 말해준다.)     


 하지만 뭐 어떤가.      


 중요한 것은 내가 어쨌든 요가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라고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의 모습에 도취되어하는 것이든, 요가의 정신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든 하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을 것이란 믿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잠깐의 머리 비움과 체력의 향상이 운동의 주목적이다. 그런 내가 굳이 요가의 정신까지 깨닫지 못하는 게 뭐 어떻다고. 그냥 동작 하나를 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아등바등 대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름대로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는 프로가 아니다. 그러니 조금 어설플 수도 있고, 요가를 대하는 태도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노력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상상만큼 요가를 잘하지 않아도, 땀을 흘리고 산발을 하고 있어도 나는 요가하는 내 모습이 너무 좋다. 잘하면 잘해서 멋있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멋있다. 삶의 일부에 이런 취미를 두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잘해도 멋지고, 못 해도 멋지다니.

그래, 나는 요가하는 나르시시스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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