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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의 서른 Feb 20. 2023

[연말] 네? 제게 다시 아홉수가 온다구요?

허구의 12월










  22년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식 나이로 인해 느꼈던 불편함이, 조금은 해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이 나이에 대해 진심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재밌기도 했다. 빠른년생들은 이제 우리 세대까지만 남겠다며, 대학생 1학년 개강 파티 때 빠른년생들은 개강 파티가 열리는 식당 입구를 들어오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주변에서도 그 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그럼 두 살 더 젊어지는 거구나’ 하며 하하 웃곤 했다. 마흔살이 되며 앞자리가 4로 바뀌는 것에 대해 살짝 우울해져 있던 사람도, 비장하게 서른살을 맞이한 우리네 세대들도 잠시 스무살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 살짝은 들떠있었다.


  막상 연말이 다가오니 새해의 나이를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잠시 혼동이 왔다. 초록 창에 ‘만 나이’를 치자마자 ‘만 나이 계산기’로 검색어 추천이 나타났고, 잠시 후 날짜 입력 칸이 나왔다. 날짜를 입력하니 바로 결과가 나타났다. “만 29세, 닭띠입니다.” 검색창으로 다시 돌아가 아홉수를 쳐보았다. 지식인에는 나처럼 아홉수에 자신들이 속하는 해인지 물어보는 질문들이 많았다. 혹시 이 사람들도 아홉수가 다시 올까 걱정하는 걸까? 스크롤을 얼른 내려 태양신, 우주신등 신적인 닉네임이 붙어있는 사람들의 답변을 대충 읽어보았다. 사주로 따지면 개인마다 다른 아홉수의 시기가 있다고들 하여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사주를 따져볼 여유는 없으니 대충 그 아홉수 비슷한 시기가 또다시 올 수도 있겠거니 하며 창을 닫았다. 답변을 보며 따져보니 내년 생일 이후에부터 다시 30살이 된다고 한다. 복잡하지만, 새로운 제도 아래 스물 아홉살의 인생이 8개월이나 다시 늘어났다. 네? 제게 다시 아홉수가 온다구요?


  아홉수가 다시 왔나 잠시 생각이 들었던 건 내내 잘 타던 차의 시동이 달리던 중 갑작스럽게 멈췄기 때문이었다. 하긴 올해에 많이 타기도 했지. 보통 때와 다르게 늘어난 출장 때문에 거의 달에 몇천키로를 달렸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무섭게 달리는 도중에 시동이 꺼질 줄은 몰랐다. 차선이 많은 도로에서 그것도 1차선에서 차가 멈출 줄이야. 더욱더 당황스러웠던 건, 견인되어 이동한 카센터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해 일단은 다시 차를 끌고 와야만 했다는 것이었다. 자동차 진단기로도, 카센터를 운영하던 사장님의 육안검사로도 발견하지 못했다. 일반 카센터에서도, 자동차 제조사에서 운영하는 카센터에 가도 정상으로 판별되니 불안한 마음으로 운전을 해야 했다. 그 후 세 번 정도 견인을 반복한 후, 택시를 전문으로 고치는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서야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자동차의 기관지랄까, 엔진 속에서 기름을 열심히 태우기 위해 산소가 공급되는 곳에 카본 찌꺼기가 쌓이고 쌓여 막았던 것이었다. 차가 숨을 못 쉬니 멈출 수 밖에. 그래도 큰 사고가 안 나서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유난히 힘들었던 아홉수라며 더 유난을 떨뻔했다. 연말인 만큼 출장일정도 줄어드는 덕에 큰 불편없이 지나갔으니, 이쯤하면 잔잔하게 아홉수를 잘 넘겼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말이라 빨리 지나가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회사에서도 연말 이벤트들이 많아져 더욱더 빠르게 지나감을 느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Year-End Party, 종무식을 하기로 했다. 연말을 마무리하며 한해 동안 각자의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인데, 알게모르게 다들 부담이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첫번째로 진행되었던 종무식에는 발표 슬라이드 수를 한정짓지 않았고, 첫번째로 제출한 팀원의 발표자료가 공개되는 바람에 다들 자신의 결과물에 온갖 정성을 들여버리게 되었다. 다행히 이번엔 모두의 부담을 줄여주고자, 페이지 수와 발표시간을 한정한 후,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멈추는 룰을 공지하여 자료를 만들기로 하였다. 한 페이지 안에 간단히 요약을 하여 프로젝트 진행상황 공유의 의미로 정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힘이 덜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1년간 힘쏟아 끌고온 프로젝트를 한페이지에, 크고작았던 사건사고들을 모두 적기엔 한페이지는 너무 적었다. 그래도 차근차근 정리를 시작했다. 이번년도 한해의 목표는 제품을 출시해보는 것이었다. 사실 이 목표는 이 회사에 들어올 때 목표이기도 했다.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를 시작했기에 사실상 계약으로는 복무만료일인 지난 해 12월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와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근 2년여를 공들여온 개발제품을 세상에 출시를 하고싶어 계속 회사에 남아 있기로 했다. 전문연동안 내 발자국 하나라도 꼭 남기고 간다며 같은 연구실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달렸던 한 해였다.


  그래서 더욱더 이번 해엔 어떻게든 개발 제품이 양산화 되고 매출실적이 나기를 바랬다. 운이 좋게도 1월부터 개발품에 대한 고객사 평가가 빠르게 진행되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고객사에서 평가가 빠르게 된 만큼, 양산화도 빠르게 진행되어야만 했다. 새로운 공장을 세우기엔 비용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기존에 있던 다른 생산라인에 양산화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붕붕이도 지난 한 해가 가장 많은 거리 수를 뛰게 되었다. 경기도와 경상도를 한달 사이에 그렇게 오고가며 생산 조건들을 맞춰나갔다. 연구실에서 백번이고 천번이고 만들었던 제품을 큰 규모의 생산 현장에서 똑같이 구현하기가 이렇게 어려웠을 줄이야. 제품 하나 만든다는게 참 어려운 일임을 크게 체감했다. 


  추웠던 하루부터 햇살이 따스해지고 뜨거워질 때까지 생산 공장에서 많은 날들을 보냈다. 결국엔 양산화가 마무리되어 주간부터 야간까지 하루종일 제품이 생산될 수 있도록 조건을 맞출 수 있었다. 물론, 개선은 계속해서 필요했지만, 점차 직접 내려가 조건을 맞추는 출장일 간격이 멀어졌다. 날씨가 쌀쌀해질 쯤이 되자, 회사에선 본격적으로 제품 홍보를 시작했다. 개발품과 관련한 전시회를 기회로 삼아, 여러 회사들에게 제품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양산을 마치고 올라온지 몇일 안되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지도 못한 채 전시회를 준비했더랬다. 회사에서도 첫 출시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더 컸다. 사람들이 전시회에 오기전 영상으로 먼저 제품 출시를 알리자는 본부장님의 아이디어 하에 영상 촬영이 진행되었다. 세상에 발자국 하나 남긴다는게 유튜브에 남기자고 했던건 아니였는데 말이다. 특허나 제품담당자에 허구 연구원이라 적혀있기를 바랬는데, 일이 커져버린 것이었다. 사내 영상물을 담당하시던 PD님과 함께 연구원들의 제품 소개 영상을 제작했다. 어찌나 카메라 앞이 어색하던지. 그렇게 늘상 말하던 제품에 대한 원리를 소개 하는 한줄을 더듬고 버벅이기를 몇차례 반복하고서야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전시회를 마치고서야 소개영상이 반복재생되던 디스플레이를 끌 수 있었다.


  종무식을 마친 후 12월의 마지막 주엔 못다쓴 연차를 소진하며 한 주를 보내게 되었다. 깨끗해진 폐를 달고 복귀한 붕붕이를 타고 모임들을 참석할 수 있었다. 대학 생활을 내내 보냈던 곳과 다른 타지에서 근무를 하는 터라 대부분의 모임 참석을 위해 열심히 달려갔다. 한해의 마무리를 하며 한해 어땟냐며 나누자는 게 주 목적이기는 했지만 , 거의 연말을 핑계삼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근황토크만 실컷 하며 돌아왔다. 실컷 놀고나니 몸이 자연스럽게 무거워졌음을 느꼈다. 30대 부터는 회복이 느리다는 말이 절로 실감이 되었다. 나만 그랬으랴, 같이 실컷 떠들며 늦은 밤을 보낸 친구들도 다음날 아침은 모두가 일찍부터 회복이 잘 되지 않았다. 


  역시 연말과 연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새해를 몇 일 채 안남긴 날, 충동적으로 근처 헬스장을 방문했다. 운동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선생님의 말에 얼떨결에 수영을 하고 싶어서라고 말해버렸다. 수영장에서 보일 배를 좀 정상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찌 그렇게 다들 신경도 안쓰는 것에 신경을 쓰는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선생님은 살짝 당황한 모습이 보였다. 상담란의 운동 목적칸에는 다이어트와 근력증진이 적혔다. PT 가격에 헉 소리가 나오긴했지만 그래도 내년 만큼은 운동을 하는 저녁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더많은 생각이 들기 전에 카드를 긁고 나왔다. 내년의 허구야 힘내렴. 넌 할 수있어. 


  부모님께 우스갯소리로 물려받은 복 중 하나가 일복이라며 농담을 하곤한다. 특히나 이번해엔 일복이 차고 넘쳤다. 과연 이 일복이 다음 해에도 많을지, 대체 언제까지 많을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며 대화를 마무리 했더랬다. 과연 내년부턴 저녁을 더욱 풍성하게 채울 수 있을까? 일단 목표로는 취미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젊을 때부터, 늙어서까지도 몸에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취미. 그중에 눈여겨 보던 것이 바로 수영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마치고 잠시 한달여간 수영을 배웠었지만, 완전히 자유형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수업을 나가지 않았었다. 그때의 아쉬움이 30이 다 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부디 내년엔 야근으로 저녁을 채우지 말고, 풍성하고 다양한 활동들로 즐거운 저녁시간을을 채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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