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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의 서른 Apr 17. 2023

[30대] 나의 30대 어디로 흘러가는가

현재의 2월

  올해로 서른하나가 되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삼십 대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을 상상했겠고, 누군가는 멋진 직업인으로 사는 삶을 그려왔겠지만, 글쎄, 나는 딱히 그런 것도 없었다.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 줄 알고! 어린 나이부터 어쩐지 애늙은이마냥 인생의 덧없음을 빨리 깨달았고, 그냥 후회하지 않게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덧 내가 서른하나다. 조카도 셋이나 생겨버렸으니 영락없이 사회의 어른으로 구성할 때이지만, 아직도 마음은 학생 때에 머물러있는 듯하다. 그래도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목표에는 한참 모자란 듯하다. 이런 고모라 미안해! 그래서 나는 어린걸까 늙은걸까?

 

  이 프로젝트의 타임키퍼로서, 그동안 친구들에게 왜 글을 마감일에 탈고하지 않느냐고 재촉했지만, 이번 주제는 나에게 가장 어려워서 마감일을 처음으로 넘겨버렸다. 글을 써놓고도, 갈아엎기를 수십 번. 그동안은 있었던 일을 일기처럼 쭉 적어나가면 되었지만, 30대라는 주제를 정한 이상 과거보단 미래,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려내야 할 텐데, 목표를 잃어버리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뭐라고 써야 하지..? 싶어 약간 벙찐 기분이었다. 게다가 하루에도 마음이 청기 올려 백기 올려 식으로 바뀌는 나의 변덕스러운 성향도 한 몫했다. 그래도 이 기회에 정제된 글로나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글을 쓰기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는 최근 내 인생에 있어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대로 산다고 했는데, 그게 폭풍의 흐름 속이었나요..? 이 사건 전후로 나의 30대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지게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퇴사”다. 사실 (그놈의) MZ세대답게 같이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한 적도 없고, 언젠가 이직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언젠가는 있을 일이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권고사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리 내가 입버릇처럼 “내 꿈은 실업급여 받는거야.”라고 말했다고 해도 그렇지! 꿈은 이루어진다?

 

  올해 들어서 조금 더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테니스 치러 가기 전에 만나 (명목상) 이직스터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이 편안한 직장에 있다 보면 덜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사실 이 회사는 안주하기 좋아하는 성향의 나에게는 정말 꿀직장이었다. 출퇴근도, 일 강도도, 급여도 나름 만족스러워서 다른 단점들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이었다. 비록 그것이 독이 되어 고여가는 중이었지만. 물경력인 걸 인지하고 있지만 스스로 박차고 나갈 수 없는 이 꿀직장에서 그저 하루하루 휴일만 바라보고 다니고, 그렇게 2023년도 흘러가지 않을까 했는데, 이렇게 퇴사가 갑작스레 결정될지는 몰랐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어느 날 팀장님으로부터 해괴한(?) 제안을 받게 된다. 회사가 어려워 이사님들도 하나둘 퇴사하시고, 내가 속한 법무팀도 불가피하게 인원 감축을 해야 하는데, 잠시 우리 회사 고문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일할 수 없겠냐는 것이다. 팀장님으로서는 우리 팀원들을 모두 지킬 묘안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이 회사에 오기 전 두 달정도 그 곳에서 근무한 적도 있고, 같은 건물이어서 사실상 크게 나의 신변의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게 해괴한 제안이었던 이유는 정식으로 이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모양새만 갖추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냥 보여주기식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3개월 후에는 다시 회사에 돌아올 수 있게 해주겠다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팀장님의 말마따나 크게 대단한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쉽사리 수긍할 뻔했다. 그래도 당장의 거취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그냥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돈을 버는게 나은가하고. 그렇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니 너무 황당한거다. 다른 팀은 보통 임원들이 그만두는데 우리 팀은 가장 막내인 내가 왜? 게다가 월급은 그대로 지금 회사에서 나온다니 이건 실질적으로 자금 사정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보여주기식으로 나를 내보내겠다는 건데, 당연히 기분이 좋지도 않았다. 말이 아다르고 어다른건데, 자잘해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담을 수 없는 팀장님과 변호사님의 그 사소한 태도도 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래서 차라리 그럴 거면 정식으로 해고처리를 해주시라 말씀드렸다. 위기는 기회! 정말 정확히 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말이 아닐까. 물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건 나에게 달렸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금 이 회사에서 나름 2년이나 근무했겠다, 여기서 더 머물러봤자 발전은 없을 것이 뻔한데, 차라리 잠깐 쉬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요인에 의한 결정이긴 하나, 퇴직금에 실업급여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잖아? 그야말로 “오히려 좋아”!

 

  그렇지만 막상 그렇게 던져놓고는 사실은 덜컥 겁이 나긴 했었다. 과연 이 선택이 맞는 것일까? 하고. 그냥 자존심을 조금 굽히고 사무실을 옮기는 게 나은가? 아니면 그냥 버틸까? 하고. 그런데 그냥 단순한 불안 때문에 이곳에 머무르는 건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연명치료에 불과한 느낌이랄까. 2년 전, 갑작스레 취업을 준비할 당시의 나는 시험공부를 오래 했기 때문에 너무 막막해서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급하게 변호사 사무실에 취업하고 또 이곳에서 일하기로 한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참 많이 흔들리고 불안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사회 경험도 조금 생겼고 돈도 생겼으니 다시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한 방향성을 재고할 정도의 여유는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다. 돈을 더 모으지 못하고 까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쓰라리지만, 앞으로 평생 돈 벌어야 하는데 뭐. 뭐해 먹고 살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내가 학생으로서 공부를 계속하는 동안, 친구들이 대부분 취업을 하고, 그래서 졸업하게 되면 얼른 나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원하던 대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밥벌이를 하면서 여느 직장인들이 그렇듯 왜 직장인에게는 방학이 없나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 그저 휴일만 바라보며 평일을 보내고, 기다리던 휴일이 지나면 또 평일이 시작되고, 브레이크가 없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노동력이 아닌 시간을 월급과 등가교환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사이 쉼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적당한 타이밍에 좋은 기회가 온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젊으니까! 새로운 시작을 하기 딱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을 했고, 앞으로도 많은 결정을 할 테지만, 이번의 나의 선택은 나의 앞으로의 30대, 아니 나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중대한 선택인지라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 중에는 그래도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 준비를 하는 것을 권한 친구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나의 성향에는 쉽지 않더라고.

 

아무튼! 그래요! 나 퇴사합니다!
결정! 땅땅땅!

 

  이렇게 결정하고 나니 이제 걱정인 것은 부모님께 알리는 것이었다. 어쩐지 시험에 떨어진 이후 괜히 죄인같은 기분이 들어 주눅이 든 상태인 데다가, 그저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행복하게 살겠다며 취미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나를 보며 부모님이 나의 미래에 나보다 더 걱정하고 계신 듯해서 이번 결정에 어떻게 반응하실지 걱정이 되었다. 처음에 엄마한테 먼저 말씀드렸는데, 엄마는 의외로 잘됐다며 기뻐하셨다. 네? 어쩐지 신나 보이기까지 하셔서 약간 당황스럽긴 했는데, 어쨌든 다행이지 뭐. 예전에 언젠가 길거리에서 엄마와 함께 봤던 사주에서 나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했다며. 이런 거 제일 안 믿으면서 또 맹신하는 우리 엄마, 아무튼 못 말린다. 걱정보다 나의 앞길을 응원해주시니 든든하기도 했고, 나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다음 넘어갈 산은 아빠였는데, 아빠 또한 그동안 나의 이직을 바라고 좀 더 도전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응원해주시는 한편 독백에 가까운 잔소리를 하셔서 귀에 피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가 또 싸울 뻔했다.)

 

  항상 회사에 묶여 고정된 사고가 퇴사를 결정하고 나니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펼쳐졌다. 역시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던 걸까? 퇴사 후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니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돈과 시간이 없었을 뿐!

 

  오랜만에 못 가본 장기 해외여행도 좀 하고 싶었는데, 막상 떠나려니까 망설여졌다. 20대 때는 30개국 여행을 다녔던 나인데, 코로나 이후 3년을 해외여행을 못 가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품이 들어 사실 섣불리 결정을 못 하겠더라. 비행기 값은 왜 이렇게 비싼지! 게다가 내가 번 돈이다 보니 쓰기에 더 꺼려지는 느낌. 현실에 찌들찌들해져 그 사이 몸도 마음도 낡아버렸다. 한때는 여행을 업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여행 떠나기도 귀찮다니! 어쨌든 이번에 떠나게 되면 무려 30대의 첫 해외여행이 되겠다. 아주 고무적이군.

 

  여행도 여행이지만, 앞으로 내 미래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 당장 상반기 시즌이라 자기소개서 넣을 곳이 많더라고.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일단 제출을 목적으로 이곳저곳 지원해보려 한다. 특히 이번에 공고 올라온 한 곳은 우대조건 중 변호사 자격증뿐만 아니라 로스쿨 졸업생을 우대해주는데 무려 필기를 면제해준단다! 그러니 더욱 열심히 서류를 써봐야겠다. 합격하게 되면 너무너무 좋겠지만 당장 6월부터 입사여서, 아직 합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쉽고 난리. 김칫국 레전드.

 

  팀장님은 당신께서 시험에 불합격하고 법조계에 몸담으면서 서러움이 많으셨는지 공부를 더 해보라고 말씀은 하셨고, 나도 취업한 이후 수없이 고민한 문제지만, 아무래도 공부는 더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게 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지만, 좀 더 가슴 뛰는 일 말이다. 나이 서른 하나 먹고 아직도 진로 탐색이라니! 아직 모르겠다면 일단 공부를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면서도, 공부는 하기 싫은걸. 아직도 오락가락 흔들리는 청춘이시다.

 

  불안정한 20대에는 항상 안정을 찾아 헤맸던 것 같지만, 30대가 된 지금은 세상에 어떤 것도 안정적일 수는 없구나 싶다. 늘 미래는 불안하고 하루살이와 같은 마음이다. 그래도 이 시기. 졸업 이후 시험에 떨어져서 그냥 눈앞에 현실에 급급해서 어영부영 취업해서 살아온 근 2년과 달리 조금 더 장기적인 시각으로 나의 인생을 설계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할 할 중요한 시기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냥 살던 대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래도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뭐든 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유퀴즈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보고 있자면 참 인생은 다양하고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냥 나도 나에게 맞는 행복한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 당연하게도 그 누구보다도 내가 나의 앞으로의 30대, 앞으로의 인생을 응원한다.

 

  지난한 겨울이 끝나고 봄이다. 나의 인생에도 봄이 오고 꽃이 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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