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희 May 11. 2021

더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주간 할머니 #5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몰라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하게 되었다. 큰 병원에 오기까지 과정도 참 오래 걸렸다. 


원래 작년 봄쯤 전문 병원에 갔었는데 수술 권유를 받았고 현생이 바빠 계속 미루다가 이제야 수술을 하자! 마음을 먹었더랬다. 너무 늦은 건 아닐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걱정이 되는 건 나뿐만이 아닌지 할머니가 같이 가자고 성화였다. 전문 병원에서 우리는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두 가지 수술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둘 중 하나는 신경이 마비가 될 수도 있는 수술 방법이었다. 딱 봐도 나머지 하나, 더 비싼 수술 방법을 선택하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속으로 그냥 빨리 더 비싼 수술 방법으로 수술하고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할머니가 피검사 조차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다른 병원에 가겠다는 소리였다. 


병원에 나오면서 물었다. 왜 그래, 병원 의사 선생님도 좋아 보이고, 다 괜찮아 보이는데 뭐가 문제야. 할머니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신경이 마비될 수도 있다잖아... 무서우니까...라고 하셨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거였다. 할머니는 내 수술에 생각 이상으로 두려워하고 계셨다. 


결국 나는 다른 전문 병원을 하나 더 가보기로 했다. 신촌에 유명하다는 병원에 갔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큰 병원에 가보란다. 그때의 그 무서움이란. 초음파 자료와 소견서를 받고 집 근처 큰 병원을 예약하면서 손이 떨렸다. 정말 큰 일이면 어쩌나. 


큰 병원에 가는 날엔 역시 할머니와 함께였다. 검사를 3개를 예약하고 진료 날짜를 잡았다. 할머니 머릿속에는 온통 언제 당신이 함께 검사를 보러 와 줄 수 있는지, 진료는 같이 들으러 와 줄 수 있는지 였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한사코 말렸다. 


첫 번째 검사날이 되었다. 검사 두 개를 오전과 오후에 나눠서 진행하는데 오전엔 혼자 검사를 진행했고 오후에는 할머니가 검사를 함께 봐주러 오셨다. 초음파 검사였다. 


검사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 앉아있는 내 앞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물기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큰 수술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런 검사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다 큰 손녀가 이러고 있는 모습이 꽤나 걱정이 되실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나는 왜~하고 쳐다봤다. 할머니는 그냥~하고 웃으셨다. 


기다렸던 초음파 검사 시간. 짐을 두고 나 혼자 들어가야 했다. 검사실에 들어가서 누워있는데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할머니의 음성.


"저, 이현진이 보호자 되는데요. 같이 들어가서 볼 수 없나요?"


그리고 간호사에게 정중하게 거절당하는 대화. 


이 짧은 초음파가 뭐라고, 보시면 무엇을 아신다고, 할머니는 이 초음파 검사를 보기 위해 여기를 왔는데 못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못난 손녀는 그런 생각을 했다. 


초음파가 끝나고 나와서 머쓱하니 할머니에게, 이렇게 왔는데 검사도 못 봤네. 근데 나도 못 봤어~라고 했다. 할머니 손을 붙잡고 병원을 나왔다. 다음 검사는 할머니가 오지 못한다. 검사 결과를 함께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타까워하셨다. 더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일이 있어 할머니와 함께 집에 가지 못했다. 할머니를 먼저 보내드리고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데, 알 수 없는 눈물방울들이 계속 주룩주룩. 

거 보라고, 뭣하러 병원에 오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사실 많이 행복했다. 행복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