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희 Jul 16. 2023

당신과 함께 오늘을 여행하는 일

The journey is the reward.

내일을 상상하는 것보다 어제를 생각하는 일이 자주 있는 나는 어릴 적부터 ‘후회는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근데 그럴 리가 있나. 사실 그 말들은 내 흑역사를 애써 괜찮은 척 무마하는 가면이었고 스스로에게 하는 최면이었다. 오래전 내 친구는 나에게 별명을 지어줬다. 삼척, 괜찮은 척 쿨한 척 아는 척. 좀처럼 척하는 버릇이 있는 내가 여간 재수 없던 게 아닌가 보다. 그 별명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어느 정도 유효해 보인다. 사람이 이렇게 안 변한다.



솔직하게 말해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한둘이 아니다. 마치 어바웃타임의 몇몇 장면처럼 그 순간순간을 모면해서 더 나은 시간으로 되돌리고 싶다. 이불속에서 발차기만 하지 않을 뿐이지 가끔 내 부끄러운 과거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면 눈을 꼭 감고 얼른 잊히길 바란다. 하지만 그럴리는 절대 없고,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산다. 누가 물어봐도 뭐 하러 그 과거까지 다시 가서 그러냐며 손사래 친다. 그렇지만 기회가 있다는데 마다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냥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다닐 뿐. 한번 삼척이는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삼척이로 살아왔다. 괜찮은 척, 쿨한 척, 곤란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뭐 그런 아는 척.



언급했던 영화 어바웃타임의 교훈을 대충 설명하면 이렇다.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라. 그리고 오늘을 즐겨라.‘

주인공이 유전적인 타임슬립의 능력을 깨닫게 되고 본인의 지지리 궁상 인생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고자 이리저리 시도하고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웃기기도, 슬프기도 한 상황들을 직면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홀라당 놓치는 시간을 살기도 한다. 애잔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결국 본인의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매번 실수와 실패를 바로 잡고자 능력을 사용하는 것보다 그저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깨닫고 그저 오늘을 산다. 즐기라는 말은 결국 쾌락을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행복을 음미하며 살라는 말이었다.


그 유명한 비바람이 동반하는 결혼식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맞닿아 있긴 하지만 뜬금없이 영화 리뷰를 하려는 건 아니고, 내가 최근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를 이 영화에서 담고 있다. 그건 바로 욕심내지 않고 사소한 행복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아는 마음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고, 오랫동안 아끼는 이유도 이와 같을 거라 생각한다.


욕심이야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유명하고 싶을 수 있고, 기가 막힌 상대와 만나 불같은 사랑을 기대할 수 있으며 언젠가 누군가 나를 떠올릴 때 한없이 우러러봤으면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나도 아직 살아갈 나날이 많이 남은 청년이니 여러 개 가지고 있다. 다양한 모양새로. 근데 중요한 건 거기까지 가는 과정과 마음가짐이다. 아등바등 원하는 것만 쫓다가 그것 외의 다른 것들을 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다정함을 잃지 말 것. 본연의 친절함을 놓치지 말 것. 사소한 행복이 가장 큰 행복임을 잊지 말 것. 행복은 정말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돈과 에너지를 써서 쟁취하지 않아도 충분한 모습으로 내 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그런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생각도 조금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혹여 어느 날 내게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실수했고 실패했을 때로 돌아가 그것을 바로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생긴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와의 그리운 순간들로 타임슬립하는 주인공. 한없이 탁구를 치기도, 한없이 산책을 하기도 한다.


할머니가 소풍 가기 전날 냉장고를 털어 김밥을 싸줬던 순간으로.

할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산에 올랐다가 시장에서 잔치국수를 얻어먹던 순간으로.

한강에서 아부지에게 처음 두발 자전거를 배웠을 때로.

친구와 만화책을 읽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들었던 어떤 오후로.

야자 끝나고 하염없이 거리를 걸으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채웠을 때로.


그냥 어떤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그때는 그게 영원할 줄 알았던 어떤 순간들로 돌아가고 싶다. 그냥 그 순간을 다시 살고 싶달까. 그때의 좌절, 고통, 불안, 우울- 모든 것이 다 동반하겠지만. 지금은 그만큼의 좌절도, 고통도 불안도 우울도 없는, 그리고 그때의 그들도 재미도 없는 직장인이 된 나. 나는 그 순간들이 그리운 것 같다. 그 순간이라면 흔쾌히 다시 돌아가고 싶다.







스무 살이 되면서 나에게 삼척이라는 별명을 줬던 친구가 만년필을 선물해 줬다. 너는 쓰는 것을 좋아하니 이만한 선물이 없다며. 그리고 그 만년필엔 이렇게 적혀있다.


The journey is the reward.
여정은 목적지로 가는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보상이다.


인도 속담 중 하나라고 하는데, 스티브 잡스가 말해서 더 유명해진 말이라고 한다. 솔직히 저 만년필을 받고 나서 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젠 종종 저 각인을 문지르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더불어 근 삼십 년 동안 척이라도 했더니 정말 자기 최면이라도 걸린 걸까. 나는 그냥 굳이 미래에 대해 고민하진 않고 오늘 나의 일, 사랑, 나 스스로의 상태와 기분을 인지하려고 애쓴다. 소위 사태파악을 한달까. 대신 과거에 대한 생각을 엄청하지만. (그리워하든 후회하든 말이다. 대체로 그리워서 감정이 격해진다.)


태어나서 주변인들 중에 내가 제일 불행한 애인 줄 알았다던 그 친구. (서로 사회를 겪으며 우리가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저 짧은 한마디는 내 모든 불행했던 십 대의 순간에 대한 최고의 위로가 되어주었다. 뒤돌아보는 시간을 줄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모든 실수와 실패, 돌이킬 수 없는 일들.. 사실 그 자체로 보상이다. (물론 그 순간에 그걸 인정하는 건 너무 힘들다.) 그로 인해 잃은 것들도 많기에 얻은 것도 더 많으니까. 우린 그저 하루를 음미하면서 살면 된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About time, 2013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입니다.




팀라이트란?

- 팀라이트 소개


매주 금요일 오전 8시! 따뜻한 작가님들의 레터를 받아보고 싶다면

- 팀라이트 레터링 서비스 정기 구독 신청


팀라이트와 소통하기 원한다면

- 팀라이트 인스타그램


팀라이트 작가님들의 다양한 글을 모아보고 싶다면

- 팀라이트 공동 매거진 구독하기


놀면 뭐쓰니, 인사이트 나이트 오픈 채팅방!

- 팀라이트 인나 놀아방





작가의 이전글 메일리로 뉴스레터를 보내보았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