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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희 Aug 25. 2023

소리 내어 웃는 일에 대해

근데 웃는다고 넘겨지긴 하냐

어릴 적에 노래방 가서 자주 불렀던 노래가 몇 개 있었는데, 럼블피쉬의 <으라차차>가 그중 하나였다. 음역대도 나와 비슷하고, 워낙 락밴드에 심취해 있던 때라서 곧잘 따라 부르곤 했다. 

가사 중엔 이런 문장이 있다. 


으라차차 한 번 더 참아볼게
으하하하 웃으며 넘겨볼게


이 부분을 부르다 보면, 특유의 으하하하-음절이 묘하게 내 속에 있는 답답함을 내지르는 기분이 들곤 했다. 흉통에서부터 숨과 함께 보내는 소리가 꽤 통쾌했다. 


이런 게 왜 이렇게 기억에 남는지. 그도 그럴게 나는 편하게 웃지도 편하게 울지도 않는 학생이었다. 유독 길었던 사춘기, 참는 게 익숙하고 아닌 척 괜찮은 척하고 넘기려고 하던 습관이 있었어서 TV를 보면서도 으하하-하면서 편하게 웃어본 적이 잘 없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웃기다고 잘 보는 장면들을, 나 혼자 보다 보면 몸을 베베 꼬면서 다른 채널로 돌리기 일쑤였다. (장면은 지금도 자주 돌리곤 한다. 자극적인 거 싫어잉) 그래서 영화관에 가면 되려 마음이 낫다. 모두가 같이 웃고 같이 울고, 내가 영화를 뒤로 돌릴 수도 중간에 나갈 수도 없으니까 온전히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최근에 들어서, 방에서 간혹 유튜브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며 웃는 일이 많아졌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혼잣말도 하며 낄낄대다가, 와하하 웃다가. 그러다가 문득 아, 이건 좀 낯선 내 모습이군 싶다. 애인이나 친구와 있을 때는 맘 편하게 있는데, 도통 혼자 있을 때는 그게 잘 안된다. 언제든 사자가 들이닥칠지 몰라 경계하는 고라니 같은 마음이 이런 걸까. 혼자 있을 때 뭘 그렇게 체면을 차리려고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걸 생각하고 나서는 가끔 노래를 듣다가 흥얼거리기도, 실룩샐룩 춤을 춰보기도 한다. 그 잠깐의 몇 초가 나를 더 기분 좋게 한다. 나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나. 친구들 앞에서는 웃기도 흥얼거리기도 흔들흔들 잘만 하면서 혼자 있을 때는 침묵 그 자체였으니 어느 순간 혼자서 와하하 웃은 나를 발견했을 때는 퍽 난감했다. 잉 이게 뭐여, 했더랬지.



요즘 부쩍 한숨이 늘고 부정적인 말이 자주 나오는 추세라서 약 20년 전 노래를 강제 주입할 필요를 느낀다. 이제는 웃는다고 매사 넘어가지 않을 나이가 되었고, 밖에서 잔뜩 괜찮다, 끄떡없다 웃으며 보내고 와도 집에 와서는 그게 말처럼 되지 않는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더 서러워지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그러다 괜히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본다. 노래를 들으면서 청소기를 돌리고, 방 정리도 해보고, 괜히 더 공을 들여 요리도 해본다. 설거지도 제깍제깍. 유튜브나 드라마를 보며 베개를 꼭 껴안고 와하하 웃어보기도 한다. 흥얼거림과 웃음으로 시간을 채워본다. 바깥일의 불쾌함이 나를 덮치지 않게.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일들이 나를 가로막지 못하게. 괜히 더 크게 웃어본다. 


물론 웃는다고 넘겨지진 않으나.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을 어찌할 수도 없으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 시간이 더 가라앉지 않도록 밧줄 정도는 매달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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