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을 전후로 한파가 덮쳐 숲 속의 호수가 한 주일 넘게 얼어붙더니 천지도 은세계라! 눈길에 며칠인가 오후 내내 발자국 찍는 날도 있었네만, 코비드로 인해 깨어진 일과로 인하여 차분히 앉아 자판 위에 손 놀릴 여유가 없었네. 년 전에 받은 메일에도 묵묵부답 마음 바쁘게 사는 동안 화단의 봄 꽃이며 야생 초목에도 어느덧 새물이 오르니 숨소리만이라도 들려줘야겠네.
세상에 보고 배우고 실천할 게 많은데 단지 연명하기 위해 한 가지 일에만 매어 산 것을 후회하여 천직으로 여기던 직장을 떠난 자네의 속내를 헤아릴 수는 없으나, 아무리 단조로운 삶이었다 해도 회사를 경영하며 이룬 업적과 보상이 가상하게 여겨지네. 일전에 자네와 같이 일하던 내 조카에게도 상사님께 많이 배우라 일렀던 만큼...
이제 직장생활의 구속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 출발하려는 자네를 끌어올려줄 힘은 없지만 앞서 은퇴한 경력이 있으니격려의 말로나마 밀어주고 싶네.
부처님의 말씀을 적어 놓은 아함경(阿含經)의 맹귀부목(盲龜浮木)을 아는가? 어느 날 부처님이 제자들 중에서도 꽤나 영특한 아난(阿難)에게 물으셨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어찌 생각하느냐?
아주 기쁩니다.
얼마나 기쁘냐?
그게... 우물쭈물하는 아난에게 부처님이 또 물으셨네.
깊은 바다에 백 년에 한 번씩 수면에 떠오르는 눈먼 거북이(盲龜)가 살고, 바다 수면 어딘가에는 풍랑 따라 사해를 표류하는 구멍 난 널빤지(浮木)가 있는데, 거북이가 수면에 닿을 때 그 작은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겠냐?
아난이 '그럴 수는 없을 거'라고 대답하자 부처님이 고쳐 물으셨지.
세월이 끝없이 흘러도 그런 일이 절대로 없겠냐?
'있기 어려운' 일이지요. 아난의 대답에 부처님이 말씀하셨데.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인생이 눈먼 거북이가 백 년에 한 번 수면에 올라 대양에 표류하는 널빤지의 작은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만큼 희박한 확률로 얻은 것이라 여기면 그에 어울리게 값지게 살아야겠지? 이러니 어느 고승의 말씀 맞다나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정진(精進)할밖에...
일본어로 '고맙다'는 인사 '아리가도(ありがとう)'를 한자로는 '有難う'라 쓰는데, 있을 유(有) 어려울 난(難), 각 글자의 의미를 합성하면 "있기 어렵다"는 뜻이 되지. 일본에 불교가 성행했던 옛날에 불자들이 불상 앞에서 합장하고 아난의 대답인 有難(있기 어려운)을 독송(讀誦)하던 것이 무로마치(室町) 시대 이후 세간에서 두 손 모으고 고마움을 표할 때 쓰는 용어로 굳어졌다는 게 'ありがとう(有難う)'의 어원(語源)이라 하네.
어렵게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 기쁨과 고마움을 불상 앞에서 독송하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단지 구세주에게 복만 기원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태어난 것이 희귀하고 즐거운 일임에 감사하는 걸.
성경에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지? 그 건 우리에게 세상에 살 기회를 주신 창조주께 감사하고 제물(祭物)을 바치라는 명령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귀한 선물 받은 걸로 여기고 삶을 값지게 만들라는 교훈일 거야.
인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라고 말해줄 만한 경륜이 부족하니, 이처럼 인생의 격을 높이는데 노력하자는 말 보다 더 좋은 말이 안 떠오르네. 궁색한 어휘에 희망과 기원이라도 더하면 좀 나을까?
첨단기술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하며 휴식이 부족한 삶을 살아온 자네가 직장생활로 인하여 달리 하고 싶었던 일들을 미루어 왔으니 이제 실행할 기회가 왔네. 즐겁게 꿈을 이루기 바라네.
나는 바쁘게 산다면서 신년 들어 시침(時針) 가속된 줄도 모르고 꾸물꾸물 늑장 부린 것 같네. 내 인생살이에는 뭔 계획이 있을까? 단지 선도하시는 마님 따라가며 즐겁게 살려는 노력뿐이지...
월초에는 한 주일 간 독일 접경지에 있는 콘도를 빌려 쓰며 맑은 하늘 아래 산책 많이 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연일 비 오고 바람이 부네. 강풍으로 재난과 사상자까지 생겨서 오늘도 근처 숲길은 통행이 금지되었네만, 아침나절에 공기가 안정하여 마님과 주변의 주택가를 돌아 식거리 장만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로수에 피어 있는 꽃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네.
사진 보며 봄이 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까? 눈 크게 뜨고 귀도 쫑긋! 잘 살펴보게! 봄 소리 흩뿌리며 꽃 인사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