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잠시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ly Jul 23. 2018

남걱정

다 비싼데 어떻게 먹고 사니?

지난 3월 말 한국 가서 2주일 동안 가족 상봉하고 누나 사는 아파트 내부 수리 마친 후 4월 초순에 돌아와, 바쁘게 사는 동안 봄꽃이 지고, 5월도 어느새 6월의 녹음 속으로 발을 들이네.


어제는 월요일. 동네 성당 앞 공터에 장 서는 날이라 테라스에 심을 화초를 사러 갔더니, 떠돌이 장사꾼이 전보다 줄기는 했지만 여름 과실이 벌써 나와있고, 화초상의 진열대에는 화분에 빼곡히 담긴 꽃들이 화사함을 뽐내고 있었네. 그 많은 꽃 중에 무얼 고를까? 결국 작년처럼 홍조를 띤 브라질 원산의 만데빌라(Mandevilla) 꽃이 담긴 화분 열 개를 골라 맡겨두고 장 구경했네.


슈퍼마켓보다 질 좋은 이곳의 청과물 가격은 서울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싼 느낌이 드네. 한국의 국민소득이 이제는 유럽의 중심인 여기 못지않게 높지만, 저소득층이 많은 한국의 식재료 가격이 비싼 것을 상기하니 얼마 전에 만났던 조카들의 얼굴들이 번쩍 떠오르고, 별로 즐겁지 않은 의문들이 생겨났네. 물가 높은 한국의 서민 가족들은 주거비 교육비도 다 비싼데 봉급으로 제대로 먹고살까? 행복할까?


- 조카들의 살림살이


1. 중학교 선생님인 조카는 노총에서 일하는 남편과 딸 둘을 키우고 사는데, 최근에 큰 아파트로 이사 갔다네. 교육공무원이라 아이들 낳고 출산휴가도 몇 년씩 쓰면서 적잖이 쉬었지만, 작년 말에 허리를 다쳐서 또 한 학기 휴직원을 냈데. 이번에 삼촌 오셨다고 비싼 생선회를 푸짐하게 사 오고 마른 해산물까지 선물로 받았는데, 인사로 초콜릿 한 상자밖에 못 주어서 아주 미안했어. 밤에 조카를 배웅하러 밖에 나가서 보니, 남편 봉급이 후한지 근사한 새 차를 타고 가더라. 휴직한 조카 어찌 살까 별 걱정을 다 했지?


2. 부부가 모두 공무원인 조카네는 9급으로 시작해서 20년 동안 2계급 승진해 제법 큰 아파트에서 딸 둘을 두고 사는데, 관광이나 스포츠 등 문화비 지출은 별로 안 하고 비싼 유기농 식품에 돈을 쓰지. 저축 외에는 주식 투자도 안 하지만 거주하는 아파트 시세에는 관심이 커서, 남들이 단기에 집 값 올랐다고 좋아하는데 자기네 아파트만 그대로라며 집 잘못 샀다고 푸념하더라. 그래도 아파트 시세 따라 오르내리는 혈압 진정시키며, 올해 전문대 졸업한 딸을 해외로 유학 보내려고 학교 찾는데 고심하고 있지.


3. 미국의 유명 전자회사 한국지사에 십 수년 다니다가 5년 전 작은 외국회사의 한국지사로 이직해 부하직원 없이 고객지원을 전담해 온 조카는 본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퇴사를 고려하고 있지. 실력은 있지만 나이 때문에 마땅히 갈 데가 없어서 농사나 지을까 한다는데, 농사를 영농지식과 경험도 없이 막연히 시작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농사가 그리 낭만적인 사업이 아니라는 건 시골에 가 보면 당장 알 것이라 긴 얘기 안 했네. 단지 좋은 대학 보내려고 딸을 시골의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로 보낸 것에만 참견 좀 했지. 아이를 그렇게 스파르타식으로 일찍 떼어 놓고 기능적으로 키우는 건 사랑과 인정이 가득한 삶의 행복을 무시하고 미래의 밥통만 채워 주려는 것 아닌가?


4. 초콜릿부터 화장실 변기까지 온갖 상품을 포장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조카는 아내와 함께 10년 넘게 공장을 확장하며 사업을 잘했는데, 근래에 인상된 최저임금과 전처럼 쉽게 한 직원에게 여러 가지 일을 시킬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사업이 적자로 돌아섰기 때문에 공장문 닫고 건물과 부지를 세 놓기로 했다네. 조카는 그동안 저축한 돈과 부동산을 가진 덕분에 앞으로 먹고사는 건 걱정이 없다고 하지만 높이 오를 새가 너무 일찍 날개를 접은 것 같아. 그런데 공장 폐업으로 인해 실직해 최저임금도 못 받게 된 직원들은 어디로 떨어지나?


5. 조현병으로 고생하는 누나를 위해 집수리해주느라 가족 만나러 다닐 시간이 없었는데, 하루는 대구 사시는 누나가 고속철 타고 오셨네. 아이들 소식 들으니 재벌가에 시집간 딸과 교수 부인인 딸 자랑은 접어두고 10년이 되도록 비정규직으로 대학도서관에서 일하며 시집 못 간 가난한 막내딸 걱정하시며 눈시울을 적시더라. 비정규직은 다 그렇게 가난한가? 아니면 씀씀이가 너무 큰가? 직장 있어도 젊은이들 세상 살기 참 힘든 모양이네.


서울 가서 거의 2주일 간 밤샘 작업하며 겨우 집수리 마치고 떠나던 날은 비행기 이륙 시간이 자정이라 인천공항 가는 길에 부천에 들러 작은 누나 부부를 만났네. 오랜만에 식당에서 저녁 식사중에 술잔 기울이며 사는 이야기 대충하고 헤어졌지. 바쁘게 왔다가느라고 이렇게 누나도 약식으로 만났으니 서울 가서 친구들과 어울릴 여유가 있었겠는가? 평소에 한국에 사는 가족 친구 생각 많이 하며 지내지만, 때 맞춰 모두에게 적절한 안부인사 전하기가 그리 쉽지 않네.


현충일 잊지 말고 사모님께 충성하여 사랑 많이 받으시게!


- 2018년 5월 29일, 마님께 충성을 다짐하며...


다가오는 현충일* 잊지 말라고 적는 인사에 채울 게 별로 없어서 3월 말에 서울 가서 보고 들은 조카들 이야기로 수다 좀 떨어 넣었네. 우리의 근황은 첨부 사진으로 대신하니 변한 얼굴 좀 들여다보게.

-------------------------------------------------------------------

*: 내가 오래전부터 현충일을 ‘현모양처께 충성하는 날’이라고 강조해 왔는데, 최근에 ‘적폐 청산’ 한다는 어떤 분이 ‘현모양처’는 ‘일제시대의 산물’이라고 하더라. 이상적인 여자를 꼭 ‘잘난 어머니 좋은 아내’로 규정하는 것도 여성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한 ‘성차별’이라 주장하시는 분도 계시지. 어쨌든 나는 6월을 우리 마님께 충성하는 달로 정해 놓고 살고 있으니, 모레부터는 좀 더 잘 모셔드려야겠네.


매거진: 잠시 생각 / 다시 쓴 편지 / 숨은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초콜릿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