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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스베이거스

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 4천 마일

by lovely

2. 라스베이거스

꼭 무언가를 빼놓은 듯한 짐 꾸리기에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나는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 집을 떠났다. 2008년 5월 19일...

대서양 건너 미국 동부의 뉴와크(Newark)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마친 우리는 바로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를 탄다.

비행기는 동부에서 서부로 다섯 시간 비행한 후 서서히 고도를 낮춘다. 이제 산야의 광대한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서부의 주름진 땅이 시야에 더욱 선명하게 들어온다.

이제 곧 우리가 라스베이거스(Las Vegas)를 기점으로 서부의 주요 국립공원들을 순회하는 4주일간의 여정이 시작된다.

- 라스베이거스의 첫인상

해 질 무렵 탑승구에서 나오는 순간, 슬로트 머신들이 맨 먼저 나의 눈길을 끈다. 라스베이거스의 첫인상은 '도박의 도시'이다.

저녁에 스트립(Strip: 도박꾼들이 돈을 다 잃고 '알몸'으로 나온다 하여 라스베이거스 대로를 이렇게 부름)을 따라 걸으니 길가의 대형 호텔들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인상 2: '밤의 도시'이다.

호텔 카지노에는 슬로트 머신 수천 대가 있고, 큰돈 쓰는 손님들을 위한 포커 테이블도 수십 개가 넘는다. 저게 다 돈을 먹는 기계들이라니! 멀리서 보니 사람들마저 기계처럼 보인다. 라스베이거스의 인상 3: '기계의 도시'이다.

벨라지오 호텔(Bellagio Hotel) 안은 호텔인지 식물원인지 분간이 안 간다. 바닥에 깔린 화초와 나무가 벽과 천장에 붙어있는 화려한 장식들과 어울려 환상을 연출한다. 라스베이거스의 인상 4: '환상의 도시'이다.

우리가 카지노를 지나 뷔페식당 카운터 앞에 줄을 서고 있으니까, 매니저가 테이블로 안내하고 웨이트리스는 우리에게 얼마든지 마시라며 음료를 내준다. 음식 진열대에는 이국적인 음식들이 가득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식객들은 음식의 반을 접시에 버려두고, 또 음식을 담아 온다. 라스베이거스의 인상 5: '낭비의 도시'이다.

- 스트립 거리

아침이 밝아 온다. 하늘이 맑고 푸르니 거리를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스트립의 동쪽에서 중심부를 향해 길을 가는데, 십자로 한쪽에 뾰족한 탑들이 색연필처럼 솟아 있는 유럽의 고성 같은 호텔이 보인다. 그 안에 900석을 갖춘 공연장에서 중세의 기사들이 싸움을 벌인다는데, 호텔 이름이 엑스칼리버이다.

길 건너편에 보니 엠지엠 그랜드 호텔(MGM Grand Hotel) 앞에 거대한 황금 사자가 앉아있다.

호텔 안에 들어가니 슬로트 머신이 숲 속의 나무처럼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 한 모퉁이에 사람들이 모여 유리로 막힌 우리 안에 있는 사자들을 구경하고 있다. 벨라지오 호텔 안에서는 식물원을 봤는데, 이 호텔에는 동물원이 다 있네! 그런데, 왜 거리에는 애들이 별로 없을까? 이 도시에 추가할 인상이 하나 더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인상 6: '애들은 가라'이다.

우리가 호텔 밖으로 나와 서쪽으로 계속 걷는 동안 거리의 풍경이 모나코로 바뀌고, 곧이어 에펠탑이 솟아 있는 파리의 거리로 변한다. 길 따라 더 멀리 가 보고 싶지만, 아스팔트가 뿜어대는 뜨거운 열기에 못 이겨, 우리는 파리 라스베이거스 호텔 안으로 들어간다.

슬로트 머신이 꽊 들어차 있는 홀의 천장화는 푸른 하늘 같고, 그 아래에는 에펠탑이 다리를 뻗고 있다. 우리는 호텔 안의 미로를 쏘다니다가 오후 4시쯤에 예약한 렌터카를 찾으러 간다.

우리 차는 풀사이즈의 세단차인데, 대다수의 미국 차들이 그렇듯이 대용량 엔진에 자동변속기를 장착하고 있다.

- 무대 예술

거리를 쏘다니는 즐거움과 카지노의 돈놀이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바로 환상적인 무대예술이다. 스트립의 대형 호텔들은 주 수입원이 카지노이지만, 식당가와 공연장도 갖추어 놓고 손님 끌기에 각축을 벌인다. 라스베이거스 공항 안의 벽보는 물론이고 시내버스의 차체나 거리의 전광판들도 모두 호텔들이 내놓는 개그와 댄스, 마술과 곡예, 버라이어티 쇼와 같은 무대예술 광고이다.

저녁에 카(KA)라는 쇼를 보려고 MGM 그랜드 호텔의 예약창구에 가보니 등급이 낮은 표는 매진되고 없다. 상석의 표를 예약하고 공연 시간에 맞추어 가니 대기 중인 인파도 대단하다. 쇼가 시작되자 배우들이 무대 위로 날아오고, 굉음과 연기 속에 가히 20미터 높이의 무대가 수직으로 일어서며 불꽃을 일으킨다. 배우들은 그 회전하는 무대에 거미처럼 붙어서 곡예를 하는데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 죽음의 계곡으로

미국 도착한 지 3일째, 우리는 서부 국립공원 탐방의 첫 번째 행선지 데스밸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으로 떠난다. 라스베이거스 시내를 빠져나와 20마일쯤 달리니, 네바다 사막의 군사기지와 인디언 보호구역 주변으로 길게 뻗은 사막길이 시작된다. 키 작고 메마른 풀들만 드문드문 나 있는 풍경이 단조롭고 지나는 차량도 드문 사막의 고속도로 위를 꼭 한 시간쯤 달리고 있지만, 마치 제자리걸음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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