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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진 Apr 26. 2019

펜싱 이야기 #2. 펜싱은 실전에 약하다?

도대체 누구를 죽이시려고요?

 내가 펜싱을 한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미심쩍은 눈으로 질문을 하곤 한다. 검도랑 붙으면 누가 이기느냐 하는 질문은 거의 '두 유 노 김치?' 수준이고, 말랑말랑한 검으로 싸우는 펜싱은 실전에 아무 쓸모가 없지 않으냐 하는 질문은 거의 '두 유 노 갱남스타일?' 수준이다. 동시에 찔렀는데 왜 한쪽만 점수를 주는 거냐며 대놓고 비웃는 사람도 있고 검인데 왜 찌르기만 되냐고 '심지어' 화까지 내는 사람도 있다. 이외에도 엄청난 동체 시력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을 샤샤 샤샥 피하는 거냐라든가 정말 1초에 3번이나 공격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재미난 질문들을 쏟아낸다.


 일단 하나씩 답변을 해보겠다.


 먼저 검도와 펜싱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에 대해선 정확히 답을 해 줄 수 있다. 검도와 펜싱은 절대 싸울 리가 없으며, 설령 크로스오버 대련을 한다 하더라도 검도의 룰과 장비로 싸우면 검도가 이길 것이고 펜싱의 룰과 장비로 싸우면 펜싱이 이길 것이다. 검도와 펜싱은 농구와 핸드볼처럼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깊게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종류의 스포츠일 뿐이다. 서로 적용되는 규칙이 다른데 이를 하나로 묶어 비교를 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답을 하면 다음에는 '실전에서 붙는다면 어떤가'라는 질문이 반드시 따라온다. 이런 질문엔 참 답을 하기 곤란하다. 어느 것이 더 강한 지 알 수 없어서가 아니다. 검도나 펜싱, 둘 다 실전용 검술이 아니기에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한다면 둘 다 '아니올시다' 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마치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졌는데 접영과 평영 중 어느 것이 더 생존에 유리한가를 묻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두 종목의 운동은 총기와 화포의 발전으로 이미 오래전 실전 무술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고, 신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수양하는 스포츠로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그러니 둘 중 어느 것이 더 재미있느냐 하는 질문에는 주관을 듬뿍 담아 충실히 답변할 수 있지만, 둘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한가 하는 질문에는 도무지 답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일이 생긴다면 펜싱 검이나 죽도를 드는 대신 차라리 소화기를 들고 맞서 싸우시라 권하겠다.


 나는 검도도 어느 정도 경험해본 적이 있지만 검도에 대해선 크게 감흥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인지 운동을 하는 동안 특별히 따로 이론을 공부한다거나 역사를 추적해본 경험이 없다. 검도는 다른 1:1 격투 종목과 마찬가지로 타고난 힘과 체력, 체격, 기질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처럼 비실비실한 몸뚱이와 천식을 가지고 태어난 약골에겐 너무도 어려운 운동이다. 소위 말하는 '등빨'이 좋은 사람이 체중을 실어 밀고 들어오면 균형을 잃어 그대로 실점을 하게 되고, 밀리지 않기 위해 힘으로 버티려다 보면 갈비뼈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나는 1년 사이 두 번이나 갈비뼈가 부러졌고 아내에게 온갖 꾸중을 듣고 그 길로 검도를 그만두게 되었다.

 

 펜싱은 조금 다르다. 타고난 운동 신경, 심폐 능력이 좋다면 그건 정말 감사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펜싱을 잘할 수 있다. 기술이 많고 규칙이 복잡하기 때문에 노력과 공부로 부족한 운동 능력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플러레의 경우에는 공격으로 득점을 하는 것과 방어 직후 반격으로 득점을 하는 것이 5:5로 공평한 밸런스를 가지고 있다. 에뻬의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고 반격만으로도 승리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규칙에 대한 연구, 기술에 대한 연구, 상대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한다면 수준급 선수가 될 수 있다. (아쉽게도 사브르는 공격 일변도의 종목이라 '타고난' 사람들만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아마추어 세계에선 그다지 인기가 없다.)


 나의 종목인 플러레의 경우를 설명하자면, 득점이 가능한 부위 면적이 작고(팔, 다리를 제외한 몸통) 단번에 정확하게 그 부위를 찔러야 하기 때문에 상대의 방어 자세를 무너뜨리기 위한 스텝이 매우 분주하고 손기술이 상당히 화려하다. 상대가 내 몸 쪽으로 검이 찔러 들어오면 제아무리 초보자라도 칼을 휘저어 방어를 시도하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막을지 예상하지 못한다면 단번에 찔러 내는 게 생각보다 까다롭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페인트를 시도한다. 한 번 거짓 공격으로 상대의 헛손질을 유도한 다음 두 번째에 찌를까, 아니면 좀 더 접근하여 상대의 검을 쳐내고 공간을 만들어 찔러 들어갈까. 이중 페인트를 시도할까, 삼중 페인트로 상대의 스텝까지 무너뜨리고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낼까.


 다양한 공격의 패턴만큼 방어의 패턴 수도 복잡하여 공격과 방어의 경우의 수를 그리다 보면 정말 무한대로 빠져들게 된다. 경험이 많은 선수는 자신이 겨뤘던 숫자만큼 다양한 경우의 수가 몸에 기록된다. 시합이 끝난 뒤 나름의 복기를 하면서 상대의 유형에 따른 공격과 방어 전략을 정리한다. 여기서 욕심을 좀 더 부리는 선수는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선수의 전략과 패턴을 분석하여 코치와 함께 집중적으로 연습해 짧은 시간 안에 복수에 성공하기도 한다. (초보자들의 시합에선 한 시간 안에 복수에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펜싱은 완벽한 공격 기술이나 완벽한 방어 기술이 없는 균형이 잘 잡힌 가위, 바위, 보 게임이다. 머리만 잘 쓴다면 신체 능력이나 실력차를 극복해 극적인 승리를 거두기 쉬운 스포츠이다. 제아무리 운동치, 몸치라도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중수까지 도달할 수 있다. (고수는 무리다. 인간적으로 거기까지 바라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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