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안 뛰네요”
무심히 의사는 내뱉는다. 뭔가 이상하다는 작은 직감은 맞았다.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3분여 짧은 진료시간이 무심히 지나간다.
“일주일 뒤에도 안뛰면 수술해야 하니, 올때 4시간 굶고 오세요”.
의사는 충격을 받은 내 상태를 조금 생각한 듯 일주일의 시간을 준다. 간호사는 멍한 나를 위로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다보면 이처럼 영화 필름이 늘어진 것처럼 시간이 늘어지고 공간이 휘어지는 경험을 하나보다.
심장이 안뛰는 작은 생명은 아직 내 배안에 있는데, 나는 믿을 수 없는데, 하루는 흘러간다. 방학이었던 아이와 나는 오늘 하루를 보낼 수 없어서 도서관을 간다. 아이 책을 몇 권 읽어주고, 정이현의 소설을 빌린다. 이전에 근무할 때 팀장님 책상에서 봤던 ‘달콤한 나의 도시’. 집에 돌아와 나는 그 책을 읽고 버텼다.
오진도 종종 있다는 그 말을 믿고, 내일 다른 병원을 가보리라. 집에와서 겨우 진정하며 신랑한테 전화했었다. 그 와중에도 병원에서 집까지 나는 걸어왔으며, 집에서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그도 힘들테지만, 덤덤히 받아들인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오진이라 믿어본다. 나는 오진이라 믿고 그날 남편에게 전화할 때 울었던 것 말고는 울지 않았다. 내 생애 처음 경험했던 시간과 공간이 멈추고 휘어지던 그 슬픔에 최대한 피하고 있었다.
아이를 재우고 남편도 자고 나는 정이현의 소설을 끝까지 읽고 잠들었다. 새벽 3시.
다음날, 나는 토요일에 갈까. 지금갈까 고민을 했다. 아이는 방학이라,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아이 입장에서 진찰실에 들어가도 엄마는 옆방에 들어가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이상한 엄마 병원, 산부인과를 갔다. 굳이 여의사를 찾아 1시간을 기다린다. 아이는 왜 이렇게 엄마를 안 부르냐고 한다. 1시간의 기다림 끝에 만난 의사에게 나는 중요한 일이기에 몇군데 다니더라도 확인을 하러 왔다고 했다. 3군데는 가볼까 한다고 했다.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른데 가보실 필요가 없어요. 확률적으로 초기유산은 안좋을 경우 발생해요. 탈락되는 것이지요.”
다른 고민을 하지 않게, 의심을 하지 않게 최대한 길게 설명한다. 내일 와서 수술해도 된다고, 나같으면 바로 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내게 가장 필요한 사실확인을 해주었다. 어제보다는 충격이 덜하다. 이제 입장정리와 수술을 해야한다.
마침 연휴가 금토일이었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나는 내일 수술을 하겠다고 좀 쉬어야 하니 당신이 큰 애를 봐달라고. 그러게 쉽게 내일이 수술 날짜가 되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엄마가 내일 올라오겠다고 하시고, 나는 그렇게 생애 첫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일주일 뒤에 오기로 되었는데, 이틀 뒤에 왔냐는 간호사 말에, 몸조리 해야 되어서 빨리 하려고 한다고 했다. 굶고 오셨냐고 확인을 한다. 그리고 한번 더 진찰을 한다. 이미 피가 고이고 탈락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기하고 옷을 갈아입고, 영양제를 주사하고. 대기하다가. 내 이름이 불린다.
차가운 수술대와 차가운 스테레인스 사각통을 보았다.
“잠이 오시면 자면 돼요. 졸려요?”
마취제를 넣는 듯 간호사는 말한다.
“아니요”
그러나 내가 깨었을때는 병실이었고, 모든게 끝나있었다. 그때부터 눈물이 났다. 허무했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첫날에 울지 못한 울음을 마취도 덜깬 상태에서 다 울어냈다. 옆에서 진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산모가 있는데, 누가 있건말건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링거가 꽂혀있던 손은 아팠고, 밖으로 나왔고, 피가 역류한 링거를 빼고,
“이제 가시면 돼요”
그렇게 쉽게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탈의실에서 내 짐을 마주하며 울고, 기다린다는 남편의 문자를 보고 운다.
“결제를 한번 더 하고 가셔야 해요”
아까 결제에 뭐가 빠졌다며 우는 내 얼굴에 업무상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을 챙겨준 간호사.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울지말라고 위로해 주는 간호사.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펑펑 더 운다. 추가 결제 사실을 알려주고 남편이 결제하고, 나는 그제야 내가 병원 슬리퍼를 신고 내려온 걸 깨닫는다.
“갈아신고 올께”
신발을 갈아신고 오면서 나는 내 담당의사와 만난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이런 상황에도 예의를 차린 인사를 한다. 물론 고맙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기도를 하고,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혹시 죽어도 여보는 내가 사랑하는 건 알 것 같았어. 평소에 내가 잘 말했으니깐”
큰 수술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죽다 살아났다는 걸 알고, 작은 생명은 저 하늘 어딘가 물방울이 되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며칠 뒤 털어놓은 동네 언니들도 전화온 언니도 유산의 경험이 있다는 걸 들었다. 이렇게 슬픈 일이 이렇게 흔하면 엄마라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강해야 하는 것일까?
내 일이 아닐 때는 몰랐다. 아니 나는 건강한 줄만 알았다.
인간은 동물이었다. 어떤 이는 잊어버리라 한다. 그렇지만 나는 하늘의 작은 물방울이 되었을 그 작은 생명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련다. 이런 글로 작은 생명을 이야기 하기엔 너무 작다. 하지만 엄마가 능력이 된다면 너의 이야기를 소설로도 쓰고 싶고, 에세이로도 쓰고 싶다.
확률의 한가운데 걸려버린 나. 그냥 그런 인간이구나. 얼마나 더 겸손해져야 하는 걸까? 그래도 몸은 더 가벼워지고 있고, 다시 점심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졌다. 여느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잊지 않고 싶다. 내가 다시 살아난 것.
마취의 1시간 반은 나는 아무 기억도 없다. 이렇게 사람은 쉽게 죽을 수도 살수도 있음에 그저 놀랍다.
그리고, 정화수를 떠서 기도를 드렸던 옛 엄마들 처럼 나도 종교와 상관없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일단 발을 거친 내 종교에 기대어 안하던 기도를 다시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지금 내 아이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제 더 한걸음 내어 내가 돌려주고 싶은데, 내 우울증은 생각보다 깊었던 것 같다. 그래도 꽤 괜찮다. 이제야 쓴다.
2014년 8월 14일, 네가 간 날이고, 나는 너를 작은 물방울로 기억한다.
죽음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서른이 넘어가고 결혼하고 엄마가 되는 건 평범한 게 아니고, 위대한 거다. 위대한 인간이 되기에는 너무 부족한데, 아이와 함께 느끼고 그저 같이 성장하는가 보다.
정말 내리사랑인 것 같다. 아프다. 그렇게 강하지도, 그렇게 부지런하지도, 그렇게 평범하지도 못한 내가 의무와 책임과 그리고 나를 발견하는 일을 잘 해나갈지 모르겠다. 그렇게 그런 나는 물방을 기억하며, 또 하루 채우며, 웃는다.
엄마 글 안 쓴지 오래 되어서, 아니 원래 실력이 그저그래서 그냥 짧게 썼어. 기도할께. 고맙다. 위로해 줘서. 내가 되는거 엄마가 되는거 같이 하는 건가봐. 어렵다. 완성은 없을꺼야. 그냥 그렇게 오늘도 잘. 고맙다.
-2014. 8. 27 수요일 낮에
*저는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둘째를 가지려고 했죠. 첫째가 외로울까봐요. 10주차에 계류유산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일은 많다면서 덤덤히 이야기하는 의사의 말이 참 이상했습니다. 정말 주변에 많더군요. 이 글은 제 노트북 한켠에 계속 있던 글입니다. 수많은 아픔이 세상에 있지만, 내 아픔은 내가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유산을 겪은 일을, 그 자그마한 생명에 대한 아픔을 이 글을 쓰고서야 보듬어 줄 수 있게 되었었습니다. 여기에 있으니까요. 벌써 10년전인데, 여기 옮기면서도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여기에 있으니, 여기서 보듬고, 저는 일상을 살아냅니다. 그게 글의 힘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