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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r 05. 2022

할머니의 자리 두 번째

나의 어른들에 대하여


할머니는 늘 혼자된 엄마를 안쓰러워했고 엄마의 딸인 나까지 안타까움에서 오는 애정과 관심을 받았다. 어둑한 저녁 할머니가 소고기를 볶아 끓인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를 다 먹자 할머니가 어깨춤을 췄다. 일곱살이 되니 밥 한 공기를 다 먹느냐며 다음날까지 칭찬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었을까.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보니 할머니가 오후부터 술에 취해있었다. 친척들이 왔을 때만 먹던 술을 할머니 혼자 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집에서 나는 술냄새와 할머니 몸에서 나는 비릿한 술냄새가 싫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다 큰 둘째 녀석을 잃고 한 달간을 소주 한 궤짝씩 먹으며 데굴데굴 굴렀다고. 그날은 할머니 둘째 아들의 기일이었다. 좁은 부엌에 서서 슈퍼에서 사 온 소주를 짤깍 열어 유리컵에 콸콸 부어 먹었을 할머니. 그것을 넘기며 뜨거웠을 목구멍과 가슴팍. 내게서 난 존재를 잃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고 어떤 느낌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내게 태어나기도 전에 없어진 둘째 외삼촌. 그 존재의 부재가 왠지 모르게 허전하게 느껴졌다.


한 달에 한두 번 술을 마시던 엄마는 시간이 지나자 한번 술을 입에 대면 일주일의 시간을 취해있는 데만 썼다. 자연스레 밖에서도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엄마를 데리러 오라는 연락도 늘어났다. 할머니는 엄마가 밖에 나가 정신을 잃는 것보다 차라리 집에서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엄마가 취할 때면 술을 사 왔고 그렇게 집에는 초록색 소주병이 늘어갔다.


가족들의 침묵과 치료에 대한 무지. 잘못된 사랑의 형태. 내가 중3이 돼서야 비로소 엄마가 병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엄마가 술을 먹은 지 15년이 넘어서다.  엄마가 입원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자식을 눈앞에 두어야 안심이 되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치료가 너무 늦어서였을까 엄마가 치료에 의지가 없어서였을까. 엄마는 그 이후 죽기 전까지 재발과 입퇴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한동안 할머니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다. 엄마는 할머니를 그리워했고 할머니 역시 엄마를 찾았는데 엄마가 죽기 전 1-2년 간은 서로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엄마를 만나기엔 거리가 먼 삼촌네 집에 머물렀고 병원에서 외출 나온 엄마가 할머니를 만나러 갈 만큼 삼촌네와의 사이가 좋지 못했다. 엄마의 마지막 길을 알리지 못한 건 나와 가족의 비겁함이 컸다. 당장 엄마의 죽음조차 받아들이기엔 벅찼던 내가 할머니에게 그 딸의 죽음을 이해시키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나는 그 당시 9개월 된 딸을 기르고 있었고 아일 업은 채 장례식장에서 상주 자리를 지켰다. 마침 할머니는 늙었고 딸의 죽음이 그녀의 건강에 미칠 영향이 클 수도 있다는 사실에 힘입어 모두들 침묵을 지켰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 엄마를 찾던 할머니에게 그 딸의 죽음을 알리며 납골당에 모시고 갔던 날. 그때의 할머니 모습을 여태 잊을 수 없다. 차에서 가슴을 치던 할머니. 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더라면 할머니가 좀 더 마음껏 울며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까.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십 년 이상 이어진 엄마의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죽음 앞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와 가족들이 할머니의 슬픔까지 감당할 여유가 없었음도 사실이다.


엄마는 나와 할머니에게 서로 궁합이 잘 맞는 손주 지간이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할머니도 뱀띠 나도 뱀띠. 29년생인 할머니와 89년생의 손녀. 12년마다 돌아오는 그 해가 딱 맞아떨어져 5번을 돌아 뱀띠로 만난 할머니와 나. 그럴 때면 내가 할머니와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질은 밥이나 죽을 좋아하는 식성) 맞아떨어지기라도 할 때면 같은 뱀띠 간의 천생연분설은 더 설득력을 가졌다. 엄마는 작은 것으로도 할머니에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릴적 할머니의 구속과 엄마의 술 문제로 인해 좁혀지지 않던 모녀 사이를 가진 엄마가 나와 할머니의 좋은 관계로 대리만족을 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나와 할머니와의 관계에 본인과 엄마의 관계를 투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후덥지근했던 오후 할머니는 어린 나를 화장실의 낮은 의자 위에 세워 목욕을 시켰다. 한쪽 팔을 들어 겨드랑이를 비누 묻힌 샤워볼로 닦이고 나머지 한쪽 겨드랑이도 북북 씻겼다. 깨끗해지는 날 보며 본인이 씻은 듯이 시원해했다. 그러다 내가 의자 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졌고 옆구리가 아파 한참을 울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아일 다치게 했다며 호되게 꾸짖었다. 그날 할머니는 오후 내내 그리고 밤에 잠들 때까지도 내가 그것을 기억하는지 계속 물었다. 아까 화장실에서 넘어졌을 때 아팠나? 어느 쪽이 아팠나? 하면서 내 기억이 빨리 없어졌으면 하면서도 넘어지면서 다친 곳이 문제가 없는지 계속해서 확인했다.


지금 아이를 기르는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니 어린아이를 오후 시간에 씻긴 사실에 생각이 머문다. 엄마가 두고 나가 며칠간 엄마 손을 타지 못한 꾀죄죄한 손녀. 저걸 내가 씻길까 말까 하다가 마음을 먹고 화장실로 불러 급한 마음으로 손녀를 닦였을 것이다. 넘어진 손녀의 몸이 걱정되어 손녀가 그것을 자세히 기억하는지 물어보면서도 빨리 잊길 원했던 할머니의 마음이다.


할머니의 겨드랑이 옆에는 쥐젖이 달려있었다. 작은 열매 알갱이처럼 달려있던 것이 신기해 무어냐 물으면 할머니는 쥐젖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것을 만지기도 했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할머니의 시큼한 냄새와 할머니 옷에서 늘 나는 포근한 냄새가 같이 전해졌다.


작년에 큰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에 몇 번 갔었다. 눈밑이 까매지고 눈이 푹 꺼진 채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에게 우리 첫째가 이만큼 컸다고 둘째도 많이 자라 귀여운 짓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 몸에서 생겨 나온 내가 이렇게 또 아이들을 생겨나게 한 것이 내심 뿌듯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아이들은 배워야 한다고 바이올린도 지금처럼 계속 알려주고 피아노도 알려주고 공부시켜야 한다고. 틀니가 빠져 오므라진 입술로 여러 겹의 주름이 깊게 패인 인중을 움직여가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이야기했다.


엄마와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며 받는 유혹의 시간은 내가 사랑을 많이 받고 유복한 집에서 자란 아이임을 드러내고 싶을 때이다. 실제로 우리 집은 부족함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은행에서 높은 직책을 가진 외삼촌 덕분에 조카인 나까지 입고 자고 먹는 것에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는 데 필수적이진 않아도 아이들이 자라는 데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지 않아 늘 허기를 느낀 것 같다. 그래서 그 허기에 집중해서 쓰다 보면 나와 나의 가족 전체가 그렇게 여겨질 것 같아 찜찜하다. 그렇다고 내가 받은 것을 위주로 쓰면 내가 받았던 사랑과 유년기의 풍족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글의 방향이 선회하여 늘 깨름찍하다. 내가 받은 사랑과 유복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어떤 결핍을 감출 필요가 있음을 뜻하는 것 같아서다.


그들이 줄 수 있는 그들 나름의 완전한 사랑을 받았지만 내겐 완전하지 못했던 사랑을 받은 그 모순의 시절을 살아내며 얻은 삶의 감각은 나를 늘 혼란스럽게 한다. 글을 쓰면서 고개를 몇 번이나 갸우뚱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어른들에 대해 쓰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당시 상황을 그려내고 그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재해석하는 일. 흐릿한 기억에 의지해 쓰기 시작하면 거짓말처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일들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렇다고 생각나는 이 모든 일들을 써야만 하는 의무도 책임도 없지만 꼭 써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써놓고도 혹시라도 그들의 인생을 내가 너무 쉽게 판단해버린 것은 아닌지. 할머니에 대해서도 분명히 그 안에 존재했을 기쁨과 희열과 행복을 담아내지 못하고 내 시선으로 그 삶을 고단함 혹은 고통으로 규정해버린 것은 아닌지 불안할 때가 있다. 오늘은 그 두려움과 불안함을 이겨내고 글을 마무리지어본다. 나와 나를 둘러싼 어른들에 대해 쓰는 일. 미처 보지 못했던 그들의 그늘과 그들의 행복을 찾아가는 일. 이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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