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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Nov 28. 2024

고사리베개와 개암열매를 챙겨서 가자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쓰는 편지

“엄마가 책 하나를 골라왔어. 오늘은 엄마가 원하는 책을 읽을거야. 너희는 누워있어서 책의 그림이 보이지 않겠지만, 엄마가 읽어주는 거 들으면서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지 상상해보는 거야. 알았지? 내일 아침 엄마는 출근하고 없어. 대신 식탁 위에 이 책을 올려놓을테니까 너희가 오늘 밤에 상상했던 그림과 그림책의 그림이 다른지 비슷한지 한번 비교해봐.”


어젯밤 아이들이 잠들기 전 책 한 권을 읽어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을 재우기 전에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집어든 책이었고, 잘 시간이 늦어 딱 반만 읽어준다고 했는데 결국엔 끝까지 읽었다. 나 혼자만 보기에 아까운 그림들이 많아서 스탠드를 켜고서 누워있는 아이들에게 그림을 들이밀었다. “이것 좀 봐봐, 여기가 세이렌의 물 속이고 이곳은 화산을 내뿜는 땅이래.”



북쪽에 사는 곰은 남쪽에서 날아온 새와 긴 여름을 함께 보냈고 겨울이 되자 새는 다시 남쪽 나라로 떠난다. 새가 보고싶은 곰은 남쪽으로 향하기로 한다. 가늠하기 어려운 일들이 펼쳐질 것을 알면서도 친구들이 행운을 빌며 건넨 개암열매와 고사리 베개, 호수 그림을 털 속에 넣고서 곰은 결국 길을 나선다.



어두컴컴한 숲 게다가 아무도 다니지 않는 숲을 지나오고, 뱃사람이 던진 그물에서 겨우 빠져 나오고, 발이 데일만큼 뜨거운 용암못을 지난다. 그 자체로 보면 무섭기도 하고 가서는 안되는 위험한 곳. 하지만 곰에게는 사랑하는 이가 있는 목적지가 있기에 어두운 숲도, 위험이 도사리는 강가도, 뜨거운 용암못도 그저 거치는 곳에 불과하다. 용기 있는 이 혹은 씩씩한 이가 되려는 목적은 없었지만 사랑하는 이를 찾아나선 여정 속에서 곰은 어느새 험난한 지형과 어려움을 모두 지나온 용감한 곰이 되어있다.


매일 길을 나서며 곰은 새에게 쓴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새에게’로 시작해서 ‘너의 곰이’로 끝나는 편지. 그 편지를 보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그들을 향한 나의 마음을 떠올렸다. 나의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퇴근 길 지하철과 어린이집에서 나를 발견한 아이가 보여주는 시원한 웃음. 자주 만나지는 못 해도 내 마음 속의 큰 지분을 차지한 나의 친구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덜 다치고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으로 더 좋은 세상을 꿈꾸고 행동하고자 하는 마음.



마지막으로 아직은 마주하지 못했지만 나의 생의 끄트머리에서 만나게 될 나의 운명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주어진 운명을 향해 어렵고 험난한 삶의 시간을 지나며 그것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나와 이 길을 함께 걷는 이들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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