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금요일과 토요일은 대체로 일찍 자려고 노력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선 모든 날의 아침이 바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아침에 무엇을 할 수 있는 요일은 토요일과 일요일 뿐. 이 두 날은 아이들 보다 두세 시간 일찍 일어나서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것은 주로 읽고 쓰는 일인데 그 비중은 읽는 것 7 쓰는 것 3 정도.
일어나서 유칼립투스 오일을 디퓨저 스톤에 몇 방울 떨어뜨리고 거실 책상에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 방에서 나는 조그마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그러면 나는 책을 한장 넘기는 것에도 심혈을 기울여 소리를 제거하려 애쓴다. 오늘 아침은 문예지 자음과 모음을 가장 먼저 폈고 집단감정에 대한 글과 거기에 실린 하미나 작가의 글을 읽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을 향한 집단 감정과 여성이 가진 집단감정에 대해 말했다. 여전히 질기게 이어지고 때론 강화되는 여성을 향한 폭력과 범죄. 자꾸만 잊히는 현실과 지워지는 여자들에 대해.
한 큐에 소화할 수 있는 글들이 아니기에 다음 글은 나중을 기약한 채, 독서대 위에 펼쳐놓아 책장잡이로 고정시켜두고 다른 책을 꺼냈다. 김승옥 문학상. 일곱 편 중 세 편을 남겨 놓고 있다. 뜨거운 차를 마셔 몸을 데우고 싶지만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아이들이 깨어나 이 시간이 중단될까봐 어젯밤 끓여놓은 차갑게 식은 보리차를 마신다. 단편을 하나 읽은 뒤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을 폈다. 그가 말하는 에세이에 대한 어떤 태도와 특성.
정확함과 애매함의 결합. 가르치고 유혹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형식. 정확한 찌름과 아픔의 결합. 다중화하는 것, 무한히 파열시키는 것, 상충하는 힘들을 교차시켜 상충하는 구심점들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것. 책을 손에 든 채로 그것들의 자리에 나와 나의 글들을 위치시켜본다.
한 시간 반정도 읽으니 집중력이 흩어진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살에 마음을 빼앗겨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아도 보고, 읽고자 하는 의지는 어느새 쓰고자 하는 욕구로 변형되어 이렇게 지금 나의 상황을 꽤나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도중 나의 둘째 아이는 엄마, 를 두 번이나 불렀고 곧 콩콩콩콩 거리는 발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러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헝클어진 머리로 자기 몸 만한, 자신이 아끼는 베개를 들고서 앉아있는 내 두 다리 사이로 몸을 퐁당 넣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잘잤어? 보고싶었어. 라며 아이를 꼬옥 안고 그 아이의 볼에 나의 볼을 부빌 것이다. 그리고 서둘러 아이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해서, 아이 덕분에 잊고 있던 나의 허기를 상기시키며 밥을 앉힐 것이다. 생각하고 가늠하고 고민하는 사람에게서 땅에 발을 딛고 손을 쓰고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으며 관계를 맺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옮겨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