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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Apr 11. 2021

선유도 좀비 18화. 경이 태어날 것이다

선유도 좀비



400여 년 전. 소녀는 선유도를 홀로 걸어 나오며 생각했다. 반드시, 구원자를 찾아 돌아가리라. 그래서 남아있는 괴물들을 구원하리라.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소녀는 막막했다. 수요일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어 졌다.


"구원자는 사람들의 허상이 만든

소문일 뿐이야.

하지만 네가 구원자의 존재를 믿는다면

난 여기서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릴게."


소녀는 수요일이 준 돈으로 조선 팔도를 돌아다녔다. 가끔은 동지를 만들어 괴물 집단을 처리하기도 했고 자신이 구원자라 주장하는 이에게 가진 돈을 전부 다 주기도 했다. 그중 아무도 구원자는 아니었다. 조선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여긴 후 소녀는 돈을 모아 배를 탔다. 자신이 괴물이 되는 것을 막아줄 식물을 구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갔다. 시간이 흐르자 식물을 보관할 '냉동고'가 생겨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냉장고'라는 물건이 발명되었다. 그로 인해 소녀가 이동할 수 있는 영역은 더 확장되었다.


비슷한 외모이지만 다른 언어를 쓰는 종족, 노란색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종족, 어두운 피부를 가진 종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적이 되기도 했고 친구가 되기도 했고 자식이 되기도 했으며 선생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400년 가까이 선유도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백리 이백리 만리... 먼 곳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소녀는 수요일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쉽게 돌아설 수 없었다. 이 먼 곳에서 반드시 구원자를 찾아 가리라.


"구원자가 나타났어"


영국 엘리펀트 앤 캐슬 지역, 한 대학 부교수 부부의 딸로 지내던 소녀는 이른 새벽 창문 밖으로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었다. 자신이 있던 조선의 말이었다.


"... 누구세요?"


소녀는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대신 창문 옆 창살에 헝겊이 남겨져 있었다.


'그곳으로 가. 네가 있던 곳.

경이 태어날 것이다'


선유도로 가라는 뜻이었다. 소녀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무엇에서? 헝겊의 냄새 아니면 단단함? 글씨 때문이었을까? 소녀는 그것들을 뛰어넘는 그 모든 것 때문에 다시 조선으로 향했다. 확실한 이유 중 하나는 마지막 단어, 경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때는 1980년이었다.


소녀가 조선이라 불렸던 대한민국에 도착했을 때 괴물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 무서운 광경을 목격했다. 수많은 전쟁을 멀리서 지켜봤고 도망치고 싸워왔지만 어느 순간이 오면 평화가 올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소녀가 있던 조선도 그리 된 줄 알았다. 그런데 군인들이 사람들을 죽였고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군인들은 괴물이 아니었는데 괴물처럼 사람들에게 총을 쏴댔다. 그리고 군인들보다 더 높은 이들은 총을 맞은 이들 위로 건물을 세우고 올림픽을 하며 환호했다. 소녀는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래서 참고 참다 수요일을 찾아갔다. 그들이 함께 있던 선유도로 말이다.


"길을 잃었니? 꼬마야?"


선유도 근처 높은 건물, 수요일이 사는 그곳을 올려다보던 소녀에게 주름이 깊은 한 사내가 말을 걸었다. 고작 60년은 살았을까? 소녀는 생각했다.


"아니에요. 친구 기다려요.

감사합니다 헤헤"


소녀는 늘 하던 대로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웃음과 아이 같은 말투를 건넸다. 백이면 백, 사람들은 안도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지나간 그 자리에는 웃음끼 사라진 소녀만이 남는다. 외로운 소녀. 그런 소녀의 뒤로 익숙한 말소리가 들렸다. 분명 수요일이었다.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아직 구원자를 찾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을지 모른다. 아니, 수요일 옆에 누군가가 있어서였다. 소녀에게는 없는 누군가. 그녀의 연인이었다.


1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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