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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Apr 09. 2021

선유도 좀비 17화. 하나의 선택지

선유도 좀비



열린 문 틈으로 괴물들의 손들이 뻗치기 시작하자 케이트의 칼이 바빠졌다. 쉼 없이 뻗는 괴물들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다. 결국 백발이 빽빽한 괴물의 머리에 꽂혀 칼 손잡이와 분리되어 버렸다. 케이트는 분리된 칼 끝을 향해 몸을 던졌지만 칼이 꽂힌 백발의 괴물은 엘리베이터 아래로 추락한 뒤였다.


칼이 사라진 직 후 연구원 S의 흐느낌은 더욱 거세졌다. 무기 하나 없이 발과 손을 이용해 괴물들을 막아야 하는 케이트와 페니, 박경은 연구원 S의 흐느낌까지 견뎌야 했다.


"확 먹어버린다 너!!!"


겁이 많아 웬만하면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박경이 결국 터져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연구원 S의 흐느낌을 오열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 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3029145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연구원 S가 사랑한 괴물, 3029145.


3029145가 나타났음을 알게 된 것은 연구원 S의 오열이 뚝 그치고 나서였다.


"냄새가 나요."


연구원 S가 말했다. 옆에 있던 수요일이 물었다.


"냄새?"

"네.. 우리 애기 냄새..."


순간 엘리베이터에 매달린 괴물들을 타고 한 괴물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긴 머리에 큰 키... 인간이었을 때 분명 배구선수였거나 하이패션 모델이었을 거라 페니는 생각했다. 속도가 너무 독보적이었던 탓에 케이트도 막지 못한 상황. 다 끝났구나 하는 사이, 그 모델 같은 괴물은 엘리베이터에 매달린 괴물들을 추락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구원 S는 또다시 눈물을 보였다. 이번엔 기쁨의 눈물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랑을 만났기 때문이다.


페니와 수요일, 케이트 그리고 박경은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 파악하고 싶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 모델 같은 괴물 즉 3029145가 우리 편처럼 보이는 모양새가 사실이냐 아니냐였다. 다행히 그것은 사실이었다.


3029145는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있던 괴물들을 전부 떼어내고 자신의 힘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조금 힘겨워보이자 페니와 케이트가 도왔다. 굳이 자신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잘 움직이지 않는 박경은 평소대로 가만히 있었다. 물론 그리 미안하지는 않았다.


"3029145!!!"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며 다시 위를 향했다. 연구원 S는 자신이 사랑하는 괴물의 이름을 외치며 그쪽으로 몸을 던졌다. 논리적인 면이 강한 수요일의 입장에서 연구원 S는 자신이 인질이었으므로 붙잡고 있는 것이 맞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를 연인에게 놔주는 것이 논리에 맞았다. 그렇게 연구원 S는 3029145와 포옹하며 입을 맞췄다. 연구원 S가 잘한 것이 있다면 3029145를 사랑한 것, 그것이다.


그들의 입맞춤은 생각보다 진했다. 꼭대기층에 오를 때까지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그들의 입 맞추는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박경의 목 넘기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쾌락도 기쁨도 슬픔도 늘 끝은 있다. 엘리베이터는 꼭대기층에 다다랐고 괴물과 인간의 입맞춤도 끝이 났다. 천천히 문이 열리자 두 명의 경호원이 거대한 문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로보캅처럼 총알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단단한 모습이었다. 페니는 애국가의 가사를 떠올렸다. '철갑을 두른 듯.'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경호원들은 그들에게 총을 겨눴다. 피해야 했다. 어디로든. 수많은 괴물을 물리쳐준 3029145는 총 앞에서는 자신의 연인만을 지켜줄 수 있었기에. 선유도 아파트에서 온 네 명은 대신 총을 맞아줄 사람이 없었다. 원래 인생이 그런 것처럼.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 나를 구원할 수는 없다. 그만큼 나를 위하는 사람 중 가장 나를 위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박경은 총을 피해 구석진 곳을 찾았고 페니 또한 총을 피해 달아났다. 케이트는 빠른 몸짓으로 경호원 한 명의 어깨로 올라타 허벅지로 경호원의 목을 뿌직 하고 부러뜨렸다. 마치 무용수의 몸짓 같다고 페니는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뛰어내려와 나머지 경호원의 총을 걷어찬 후 처리하려고 했으나 철갑을 두른 듯한 경호원은 그 무게로 케이트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철갑도 틈은 있었다. 케이트를 지키기 위해 달려온 수요일이 가지고 있던 주사기 바늘을 경호원 귀 깊숙이 찔렀다.


"악!!!!"


경호원은 비명을 질렀고 그것을 틈타 케이트가 경호원의 목을 비틀었다. 고통은 짧았을 것이다. 그러기를.. 빌어보자.


"근데 저 주사기엔 물약이 있는 거예요? 아님.. 독?"


어느새 다가온 박경이 묻는다. 그러자 수요일은 자신의 외투 안쪽을 보여줬다.


"물약은 여기 있고 저건.. 그냥 물이에요."


이곳에 오는 내내 자신을 위협하던 주사기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벌벌 떨던 연구원 S 한쪽 구석에서 또다시 자신의 연인과 입맞추고 있었다. 우리 모두 결코 자신의 연인을 물지 않는 3029145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기억하자. 문제는 수요일의 외투 안쪽에 있던 물약병들이 전부 깨져있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네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돌아가야할까. 아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제 경호원들이 쓰러진 자리 뒤로 보이는 문에 들어갈 차례다. 혹시 몰라 케이트가 손잡이에 손을 대고 문을 열어봤다. 아무런 보안 없이 열리는 문. 케이트와 수요일, 페니와 박경은 그 문을 향해 발을 디뎠다. 뒤돌아볼 틈은 없었다. 선택지도 어차피 이 곳뿐이었으니까.



1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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