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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Nov 30. 2021

선유도 좀비 19화 400년 만의 재회

선유도 좀비





소녀는 수요일과 그 연인을 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수요일도 친구가 있어야 할 것이고 연인, 가족이 필요할 것이다. 그 누구도 완전히 혼자일 수는 없다.


그러나 소녀는 혼자였다.


소녀는 더더욱 몸을 숨겼다. 만약 지금 수요일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수요일은 연인 앞에서 거짓말을 해야 할 것이다. 아니라면 그 600여 년의 시간을 설명해야 한다. 소녀는 순간, 아주 짧은 기대를 했다. 수요일의 옆에 저 사람도 혹시 우리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럼 우린 온전한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구원자를 쫓는 이 고된 삶을 끝내고 이기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는 없었다. 더더군다나 수요일을 보는 저 연인의 얼굴에는 오랫동안 죽지 않고 산 자들에게서 보이는 슬픔이 없었다. 삶이라는 고통을 그 어떤 선택권 없이 이어가야 하는 그 강제성이, 그의 얼굴에선 보이지 않았던 것다. 소녀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경'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다. 


선유도에서 수요일을 보고 뒤돌아섰단 소녀, 백년이 여섯번 지나는 시간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열 살의 몸으로 구원자를 찾아다녔던 소녀. 그 소녀가 지금 제약회사 꼭대기에서 괴물이 되어 처참하게 묶여있다. 괴물이 된 소녀는 이제 의식을 잃었지만 괴물이 되기 직전까지, 제약회사에 협조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했다. 구원자를 찾아줄 거라 믿었던 제약회사가 괴물을 양산해 치료약을 팔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미친 사람 빈번히 만나봤지만 또 이렇게 속다니. 소녀는 자신을 탓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물약을 먹지 않기 시작했고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택했다. 제약회사 측은 소녀가 괴물이 된 후에도 소녀를 실험체로 활용했다. 그렇게 4년 넘게 소녀는 한 곳이 묶여있다. '경'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수요일과 페니, 케이트와 박경이 큰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한가운데 묶여있던 소녀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회색빛 벽,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천정, 소녀는 외로워 보였다. 소녀는 괴성을 질렀다. 금방이라도 이 방에 들어선 네 사람을 물기라도 할 것처럼.


수요일은 괴물이 되어버린 소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이자 딸과 같았던 소녀를. 수요일은 소녀에게 다가갔다. 케이트가 수요일을 붙잡으려 했지만 수요일은 그런 케이트를 제지하며 소녀에게 다가갔다.


"왜.. 네가 여기에..?

구원자를 찾아서 온다고 했잖아.. 응?"


소녀는 수요일을 잡아먹을 듯 입을 벌리고 괴성을 냈다. 괴물이 된 소녀는 수요일을 알아보지 못했다. 소녀와의 재회를 수요일은 얼마나 수없이 상상했던가. 그런데 긴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이 순간이, 이런 상황이 될 줄은, 수요일은 예상했지만 바라진 않았던 시나리오였다.

그런 예상 따위를 하는 게 아녔는데. 수요일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듯하다. 넘치게 흐르는 눈물이 소녀가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가리고 말았던 것일까. 수요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괴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케이트와 페니는 수요일을 믿었다. 수요일이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리석은 짓을 많이 해본 자가 어리석은 일을 예측하기도 쉬운 것일까. 박경은 수요일이 이성을 잃었고 몸집이 작은 그 괴물을 껴안으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늘 자신의 직감을 의심하는 박경이나,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박경은 수요일과 괴물에게 몸을 던졌다.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수요일이 괴물에게 물릴 모양새였다.


제발...


박경은 빌었다. 신을 믿지 않기로 했지만 200일 넘게 짜파게티를 먹지 못하고 돌체라떼 또한 구경하지 못한 자신에게 누군가를 구하는 기회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신은 편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빌었다. 자신이 수요일을 구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박경이 수요일에게로 몸을 던지는 순간 소녀는 울부짖었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큰 소리로.




1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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