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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Dec 04. 2021

선유도 좀비 20화. 윤하랑의 소원

선유도 좀비




마당에 500  버드나무가 자리를 차지한 윤하앙의 집에는 오랜 시간 아들만 태어났다. 장성이  남자들이  마당을 돌아다니는 것을, 윤하랑은  아쉬워했다.

자신이 낳은 세명의 아들 중에서 딸을 본 자식은 없었다. 막내아들의 부인이 늦둥이를 임신했을 때 윤하랑은 마음을 비운 척하며 기도를 올렸다. 어쩌면 그동안 자신의 기도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으니.


윤하랑은 서울 끝자락 망우산에 자리한 절로 향했다. 슬픔을 잊는다 라는 뜻의 이 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아차산과 용마산으로 이어져 있어 자칫 길을 잃으면 산속에 오랜 시간 갇힐 수 있었다. 그러나 윤하랑은 아들들이 장가를 갈 때마다 그리고 며느리가 임신을 할 때마다 산에 올랐기에 밤에도 낮인 듯 산을 오를 수 있었다. 그날은 새벽부터 서둘러 절로 향했다.


"도와주세요..."


이슬이 내리는 시각, 산을 오르는 윤하랑은 작지만 단호한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람이 걸을 수 있도록 만든 좁은 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구덩이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거기 누구시요? 사람이오?"


윤하랑은 자신이 무언가에 홀렸을지 모른다고 잠시 의심했으나 구덩이 속으로 가까이 다가가 소녀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려왔다는 것을.


"지루하고도 험한 사연을 가진 아이로군요."


탈진한 소녀를 업고 절에 도착한 윤하랑이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그제야 주지스님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스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윤하랑이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스님은 대답 대신 소녀를 지그시 내려보았다.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것.

언제든 인간을 해할 수 있지만 그걸 원하지 않는구나.."


스님은 소녀가 무슨 책인 마냥 소녀를 읽어 내려갔다. 윤하랑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시선을 뗐다가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소녀가 산산이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윤하랑의 눈은 불안했다. 자신이 낳은 것도 아닌, 만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은 이 소녀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너무 오랜 시간 소녀의 몸으로 살았으니. 물도 고이면 썩는 법...

너의 생을 내가 끝내주마."


소녀를 없앤다고? 윤하랑은 순간 스님에게 다가갔다. 그러면 안된다고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힘없이 누워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사람이 일어나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신이라도 받은 듯 기괴한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이 놀랄 새도 없이 소녀는 눈이 벌게지고 얼굴의 핏줄이 모조리 섰다. 우두둑 소리가 나며 소녀의 모든 근육들이 이상하게 꺾이는 듯했다. 그 순간 윤하랑은, 아플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이 놈!!!!!"


스님이 소녀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소녀는 잠시 멈추더니 살짝 미소를 보였다. 일그러진 근육 뒤에 숨겨진, 하찮은 것들을 향한 비웃음이었다. 스님은 당황했으나 굽히지 않았다. 죽더라도 아니 소녀와 같이 기괴한 모습이 될지라도 짐승 앞에서 숙일 수는 없다고 옅은 마음이 이야기했으리라. 그 깊은 속의 목소리는 알 수 없지만. 소녀는 보란 듯이 스님에게 달려들었다.


스님은 눈을 감았다. 죽은 것일까. 눈을 뜨면 부처님이 계신 것일까. 스님도 죽어본 적 없으니 죽음을 알리 없다. 그러나 이것은 죽음이 아니라 산 것이 틀림없다. 스님 앞에서 소녀를 막아선 윤하랑의 뒷모습이 보였으니 말이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아이야.."


윤하랑이 흐느끼며 소녀에게 말했다. 스님의 호통을 비웃던 소녀는 윤하랑의 눈물 앞에서 괴물의 모습이 아닌 열 살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소녀도 당황스러움에 털썩 주저앉았다.



선유도 좀비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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