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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Dec 22. 2021

선유도 좀비 21화. 듣지 못한 대답

선유도 좀비



그때, 윤하랑의 집 마당의 버드나무에 꽃이 지고 바닥에는 낙엽 쓰는 소리가 아침 자장가처럼 공기를 메웠다. 새근대며 자는 소녀의 모습을 윤하랑은 뚫어져라 바라봤다.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기도 했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 상자를 들고 있는 퇴역군인의 눈빛이기도 했다.


"부인, 식사는 안 하시겠소?"


윤하랑의 남편 박홍선은 절에 다녀온 아내가 소녀가 있는 사랑방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조용히 두고만 봤다. 윤하랑을 부인으로 맞이한 이후 그는 늘 윤하랑을 기다렸다. 그 동안에는 그 어떤 조급함이나 불안함 따위는 없었다. 윤하랑이 소녀를 데려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가 볼 때 아내에게는 늘 확실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윤하랑에게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박홍선이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박홍선은 조금 외로웠지만 그것은 자신의 몫이라 여겼다. 이 또한, 소녀를 데려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부인, 어디 아픈 것이오?"


처음보는 작고 마른 소녀가 윤하랑의 품에 안겨 대문을 넘어선 순간부터 몇달이 지난 지금까지, 박홍선에게 밀려드는  감정은 외지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족보에 적힌 아이가 아니라면 노비로 쓰면 그만이다. 박홍선이 느끼는  질투였다. 자신이 의지하는 배우자를 뺏을지도 모르는 연적에 대한 감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박홍선은 생전 하지 않던 쓸데없는 이유를 들어가며 윤하랑의 공간 곁을 맴돌았다.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랑방 문 밖에서 초조하지 않은 척 문을 등지고 서있던 박홍선은 윤하랑의 대답에 대뜸 뒤를 돌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문 안쪽에서도 윤하랑은 박홍선을 보고 있지 않았다. 박홍선은 깨달았다. 윤하랑이 곧 자신을 떠날 것임을.


그날 밤, 짐승의 울부짖음이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하늘에 치솟았다. 사랑방 앞에 서서 미동 없이 숨죽이던 박홍선도 깜짝 놀라 사랑방으로 달려갔다.


"들어오지 마십시오!"


문을 채 열기도 전에 윤하랑이 꾸짖듯 소리 질렀다. 박홍선은 억울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윤하랑의 정혼자가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수절을 결심한 윤하랑에게 청혼을 한 것, 그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윤하랑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그런 티를 너무 내면 윤하랑이 부담스러워 떠날까 봐 티 내지 않았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니다, 아무래도 윤하랑에게 '공간'을 주었던 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


"다 괜찮아졌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윤하랑이 이번엔 차분해진 말투로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부인!!"


박홍선의 질문에 윤하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박홍선은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후 눈을 감을 때까지 그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했다. 영영 들을 수 없을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 윤하랑은 소녀와 길을 떠났고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윤하랑이 떠난 지 182년이 지난 후 그 집안에 아주 오랜만에 딸이 태어났다. 윤하랑과 박홍선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가 되는 이는 자신의 딸 이름을 '경'이라 지었다.


박경이 태어난 그 해는 조선을 떠났던 소녀가 다시 돌아온 해이기도 하다.




선유도 좀비 2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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