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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22. 2021

엄마의 새집

     

  아파트는 엄마의 새집이었다. 남편은 아파트 정문 앞에 차를 세웠다. 사전에 엄마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우리 가족은 조금 일찍 도착했다. 잠시 후 엄마가 배낭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그런데 엄마 혼자뿐이다. 엄마는 차량 뒷좌석에 앉았다.
   “아저씨는요?”
   차량 조수석에 앉은 나는 얼굴을 돌려 물었다. 엄마는 답이 없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재차 물었으나 엄마는 묵묵부답이다. 냉랭한 분위기가 흘렀다. 7인승 차량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려 목적지인 강원도 홍천군 공작산 생태 숲에 도착했다. 홍천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공작산’ 자랑을 유별나게 했다. 우리나라 산이 특별나 봐야 거기서 거기지 라고 생각하다가 공작산(?) 처음 듣는 이름 때문에 나는 호기심을 가졌다. 공작새와 연관이 있는 산인가? 아니면 귀족 신분을 나타낸 그 공작을 뜻하나? 별별 생각을 하다가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홍천 여행을 계획했다. 그 와중에 8월 중순경에 친정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희 휴가 다녀왔니?”
   친정엄마는 평소 성수기 때 내가 여행을 기피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나는 엄마의 의중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도 같이 가고 싶다는 뜻이었다. 엄마는 새아버지도 모시고 가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아저씨를 우리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엄마 입에서 새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도 어색했다. 아저씨가 엄마의 애인, 함께 사는 남자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가 엄마와 함께 산 지도 벌써 육 개월이 지났다.
   이틀 뒤에 나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아저씨와 같이 오세요. 엄마는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두 분이 사전에 분명히 의견이 오갔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엄마와 함께 오기로 한 아저씨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정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두 분이 싸웠거나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저씨가 동행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우리 가족은 여느 때와 다르게 긴장하며 가방을 챙겼다. 그런데 계획했던 일이 무산되고 나니 허탈했다. 남편은 오히려 잘됐다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나는 뭔가 꼬이는 느낌이었다.
   공작산 입구를 지나자 맑고 깨끗한 계곡이 나왔다. 휴가를 즐기러 온 여행객들이 텐트를 펴놓고 여름의 끝자락을 만끽하고 있었다. 공작산은 국립공원의 산처럼 높지도 험하지도 않았다. 입구 표지판에는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이름의 내력을 알렸다. 그러고 보니 강원도의 산들과 어깨동무한 산 능선이 우아하게 내려앉은 공작새처럼 보였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이 주는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공작산 안쪽에는 ‘수타사’라는 절이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안은 것처럼 절과 산은 한 몸이었다. 
   우리 일행은 숲으로 걸어갔다. 잘 가꾼 잔디와 굵지 않은 꽃나무들이 공원을 연상시켰다.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때 창건한 절이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했지만, 숲은 생기발랄한 십 대처럼 풋풋했다. 풀벌레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가벼운 공기 사이로 햇볕이 바삭바삭하게 내려앉았다. 산책로를 걷다가 무더위를 피해가게 한 나무 그네가 눈길을 끌었다. 그 위에는 나무로 만든 새집이 있었다. 새집에 잠시 시선을 두다가 내내 말씀이 없던 엄마가 신경 쓰였다. 서먹서먹한 마음을 풀고자 엄마의 팔을 부여잡고 그네 앞으로 다가갔다. 엄마의 몸은 기우뚱거렸지만, 얼음장 같던 엄마의 얼굴은 금세 녹아내렸다. 어렸을 때 엄마는 나를 그네에 종종 태워주곤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환갑이 넘은 엄마와 마흔이 넘은 딸이 나란히 그네에 앉아 있었다. 남편이 그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 사진을 찍었다. 정말 오랜만에 타보는 그네였다. 이윽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네가 다음에 아버지를 만나거나 같이 가자고 직접 전화를 해 봐. 내가 가자고 해도, 네가 불편할 거라며 한사코 만류하셔. 그 양반 아침 일찍 돈 벌러 갔어. 일부러 자리를 피하는 거지. 누가 뭐라 해도 엄마랑 죽을 때까지 함께 살 남자니까 네가 아버지로 받아들여라.”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아저씨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이다. 이제는 아저씨를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마음이란 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아니었다. 
   친정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엄마는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반년이 지나서 엄마가 남자를 사귄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저씨와 동거하겠다고 통보했다. 나는 반대했다. 엄마랑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랑 다시 연락했을 즈음에 나는 새집에서 그 아저씨를 보았다. 거실에는 낯선 남자 노인 두 명과 아저씨가 화투판을 벌인 채, 종이돈을 주고받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나는 경악하고 그 자리를 떴다. 엄마가 만나겠다는 남자가 고작 화투판을 벌이는 도박꾼이었다는 점에서 실망했다. 나중에야 그 노인들이 아저씨의 친구들이고 집에 놀러 온 손님이었고, 아저씨는 도박꾼이 아니라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요리사라는 것을 엄마의 해명을 통해 알았지만, 나는 새집에 발을 들이기가 싫었다. 새집은 내게 친정집이 아니었다. 나는 둥지를 잃은 새라고 단정 지었다. 숲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나무 새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잔디 조형물이었다. 작품 제목은 ‘새들의 합창’이었다. 나는 새집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 순간 아저씨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날 새집에서 아저씨를 뵙고 도망쳤던 기억은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엄마 딸이라고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다. 엄마에게 전화드렸을 때, 나는 엄마와 아저씨의 관계를 절반은 인정하고 함께 오시라고 했다. 물론 엄마도 연락이 없다가 휴가를 핑계 삼아 연락한 그 마음을 내 모르는 바 아니었다. 나도 엄마와 화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정식으로 가족을 소개하려고 했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다. 
   친정엄마는 조형물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표창처럼 꼿꼿하게 세운 새집에는 한 마리의 새도 없었다. 새집에 새들이 자주 드나든다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았다. 목수가 화려하게 색을 입히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해도 그 안에 새가 없다면 그 집은 빈집일 뿐이었다. 나는 엄마 처지에서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새집에 엄마 혼자 사셔도 괜찮을 거야.라고 착각했다. 엄마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엄마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 새집은 내가 마음 편하게 드나드는 집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엄마는 내 옆에 계셨는데, 마치 엄마가 사라진 것처럼 친정을 빈집처럼 생각했다. 

  목수의 손이 야무지다. 새집 모양이 저마다 달랐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만, 드나드는 문의 방향과 겉모습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 집이 함께 모여 있으니, 어색하지 않고 친근했다.
   나는 피로 맺어진 관계만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의 등장으로 모녀 관계가 나빠지리라 판단했다. 모양과 색, 크기가 달라도 누구나 찾아올 수 있도록 열려 있던 새집처럼 나 또한 마음이 열려야 한다는 걸, 새집을 통해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공작산 안에는 수타사라는 절과 생태 숲이 서로 한 가족이었다. 강원도의 거대한 산도 공작산과 어깨동무하며 잘 어울렸다. 그들은 처음부터 가족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이제 나는 아저씨를 새아버지로 받아들이고, 엄마의 행복을 기원한다. 나는 엄마 옆으로 다가갔다. 나란히 서서 엄마의 팔에 내 손을 슬며시 끼워 넣었다. 엄마가 놀랐는지 눈을 슴벅거렸다. 나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아저씨와 많은 나날 함께 잘 만들어가요. 우리 이제 진짜 가족이에요. 엄마도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눈웃음을 보냈다. 
   가족은 혈연이 전부가 아니다. 삶을 함께 만들어 갈 때 관계가 돈독해진다.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여행이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었다. 물론 새로운 현실이 나는 두렵고 부담스럽다. 그러나 일단 부딪혀 보련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소중하고 특별하다. 다음 여행에서는 새아버지를 모시고 꼭 공작산을 찾으련다. 그 여행이 나는 벌써 설레고 기대된다. 어쩌면 그 여행이야말로 우리 가족이 꿈꾸는 여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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