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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22. 2021

달콤하지 않은 나날

  줄이 그어진 크런키 초콜릿은 바삭하면서도 달콤함이 오래간다. 달콤함이 오래가는 2월을 보내려고 했다. 호주 여행을 다녀와서 맞이한 2월은 크런키 초콜릿을 뚝뚝 끊어먹는 기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 시작 전이었다. 2020년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호주 태즈메이니아섬을 큰아들과 함께 갔다. 큰아들은 현지 지인들과 호주에서 더 머물다 오기로 했다. 나 홀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착륙했다. 호주에서는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다녔는데, 공항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공항을 빠져나온 뒤에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왔다. 해외여행 다녀온 사람은 이 주 동안 자가격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일곱 살 작은 아들까지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었다.

  여행의 즐거움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격리라는 문자는 반갑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호주를 다녀오면 진한 초콜릿 같은 일상을 만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생각조차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자가격리는 주부에게는 가혹한 시간이었다. 한국 사회는 어수선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 세균은 정말 뜬금없는 불청객이었다. 사람들의 목숨을 뺏어가는 악질의 세균, 나의 달콤한 일상을 빼앗은 최강의 원수였다.

  아이랑 집에서 크런키 초콜릿을 먹으며 바이러스를 원망했다. 아주 잘게 부수어서 초콜릿을 먹을 때마다 내 일상도 균열이 보였다. 그 균열은 전혀 극적이지 않고, 단조로운 권태였다. 나는 술과 폭식으로 살이 찌고 있었다. 크런키 초콜릿을 오도독 씹으며 그 권태로운 틈새를 막아 보려 했다. 뱃살이 나오고 체중이 늘었다. 둘째 아이도 벗들과 만나지 못하는 답답함 때문인지 불평이 늘었다. 그 와중에 소통되는 기계는 스마트폰, 나는 아들의 심심함을 달래줄 장난감을 검색하면서 반나절을 보낼 때가 많았다. 

  아들 생일날, 아이에게 레고를 선물하려고 했다. 스타워즈 대형 시리즈를 진즉부터 만들었던 아들은 레고 만들기가 시시했는지 생일날, 건담 로봇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다. 건담 로봇 장난감은 가격이 저렴했고, 만드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엄마로서는 만족스러운 장난감이었다. 아이가 장난감을 조립하는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그래야 권태로부터 달아날 수 있었다. 아이의 야무진 손놀림이 늘어갈 때마다 로봇은 튼튼하게 변신했다. 장난감 부품은 공구를 이용해서 떼어내야 했다. 아이는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잘 만들었다. 아이의 인내는 어디서 나오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나는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무기력했다. 여행 사진을 넘기며 즐거웠던 때를 회상했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럴 때 나는 크런키 초콜릿을 먹었다. 자가격리 이주의 시간이 지나자 준비할 일이 많았다. 큰아들 중학교 입학식. 작은아들 초등학교 입학식까지 신학기 챙기는 일로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큰아들 이주 간 자가격리라는 문자 메시지 앞에서 다시 권태의 늪에 빠졌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나의 권태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저 묵묵히 참고 견디는 일만이 전부였다. 그 와중에 작은아들이 다시 유치원에 나와도 좋다는 전갈을 받았다. 다음날은 바로 유치원 졸업이었다.

 다음 날 아침, 동장군 추위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늘에서는 희끗희끗한 눈발이 날렸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편의점으로 갔다. 두툼한 점퍼 주머니에는 텀블러가 들어 있었다. 원두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크런키 초콜릿을 샀다. 은박지를 걷어내고 크런키를 먹었다. 달콤했다. 그러나 나는 전부 먹지 않았다. 은박지를 봉합했다. 2월은 먹다 남은 초콜릿을 뜸 들이다가 먹고 은박지를 다시 까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함박눈이 창밖으로 내렸다. 눈은 권태로운 나날을 싹 잊게 해주는 보상이었다. 그러나 해가 나왔다. 눈의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거리에서 한참 머물렀다. 눈 녹은 거리는 무너진 나의 일상과 닮았다. 바삭한 크런키 초콜릿 여운은 입안에서 사라졌다. 입이 허전했다. 다시 초콜릿이 필요했다. 3월에는 크런키 초콜릿처럼 일상이 쉽게 부서지는 날이 없기를, 촘촘하고 탄력 있는 일상이 회복되기를 꿈꿔본다. 3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달이다. 그걸 잊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은박지를 까고 와삭 소리가 날 정도로 크런키 초콜릿을 씹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초콜릿. 나의 초콜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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