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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un 28. 2024

넘어질 용기

넘어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싶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깍지 낀 두 손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한다.
두 손에 뒤통수를 받치고 정수리와 이마 사이 어딘가를 바닥에 둔다.
아래팔과 팔꿈치로 바닥을 밀어내는 힘을 주며 양 무릎을 펴 몸을 시옷자로 만든다.
두 발을 머리 쪽으로, 거의 발가락 끝 한 점만 찍혀 다리가 가벼워지는 지점까지 걸어 나온다.
가벼워진 다리를 구부리며 하나씩 들어 올려 버틴다.
고과절을 펴며 중심을 잡고 무릎까지 서서히 펴 자세를 완성한다.

머리서기, 살람바 시르사아사나(Salamba Sirsasana) 동작을 하는 방법이다. 이제 이론은 빠삭하다. 남은 건 실전뿐인데... 벌써 몇 년째 그림의 떡이다.


아마도 근력 부족 탓일 것이다. 팔뚝 힘도 그렇지만 특히 복근의 힘이 약해서 다리를 띄우기 어려운 것 같다. 한때는 이 동작을 완성하는데 집착한 나머지 집에 가서도 벽에 대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연습을 계속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에 와 혼자 요가를 하면 꼭 머리가 어지럽다. 그렇게 어지러움만 얻고 체념한 채 지내고 있다. '한 10년 후엔 하고 있겠지 뭐...'  




그날도 요가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머리서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젠 다리를 들어 올리기 직전까진 너무 수월하게 할 수 있는데, 내 몸은 그 이상 진도를 뺄 생각이 없나 보다. 매번 선생님께서 다가와 다리를 올려주시지만 손을 놓으시는 그 순간 마음속은 패닉이 된다.


'굴러 넘어지면 어떡해? 엄청 아프겠지? 목이라도 다치면 다 마비되는 거 아니야? 안돼!!! 제발 제 다리를 놓지 마세요 선생님!!!' 마음이 요동치니 몸도 요동치는 건 당연한 일. 1초도 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오늘도 그렇게 다른 분들의 올곧은 머리서기를 보며 그저 감탄만 하던 차였다.


"쿵! 아이고 죄송해요."


옆에서 수련하고 계시던 분이 앞으로 넘어지며 내 자리 근처까지 굴러오셨다. 죄송하단 말을 남기시고는 황급히 제 자리로 돌아가시는데 그 순간이었다. 머리로 설 수 없는 진짜 이유를 발견한 건. 단지 근력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절대로 넘어지고 싶지 않았구나.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동작을 완성시키고 싶었구나. 넘어지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구나!'




그랬다. 넘어지지 못하니 거꾸로 설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스키를 배울 때도 제일 처음엔 넘어지는 방법을 알려준다. 작은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서 한쪽 옆으로 털썩! 하고 엉덩방아 찧는 연습을 수차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그게 우습고 빨리 스키 타는 법이나 배우고 싶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넘어질 모르는 사람은 스키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처음이었다. 어떻게 하면 머리로 설 수 있을지만 고민하던 내가, 어떻게 하면 용기 내 넘어질 수 있을지를 궁리한 게 말이다. 이젠 나도 넘어져 보고 싶다. 쿵 하고 굴러가 멋쩍게 웃으며 죄송하단 말을 해보고 싶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또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요가원 밖에서도 비로소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지 혹시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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