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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ug 05. 2023

넷플릭스 대신 영화관에 가보니

일상 속 보물찾기

“영화표 값이 이렇게 올랐어? 어릴 땐 조조로 영화 보러 가면 5,000원 돈이면 봤던 것 같은데….” 우리 부부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여름에 만났다. 영화관은커녕 카페에도 앉지 못하게 통제하던 시기라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 가는 평범한 데이트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결혼에 골인했다. 그 사이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같은 ott 플랫폼이 성행했고, 집의 TV가 커졌으며, 사운드바 성능도 좋아져서 어느새 집에서 영활 보는 게 당연해져 버렸다.


그래도 간만에 디즈니 영화가 개봉한다니까 영화관에 가고 싶었다. (엘리멘탈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코스가 낯설게 설렜다.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영화관에 들어섰을 때 우릴 가장 먼저 반겨준 건 역시 냄새였다. 팝콘과 나초, 버터 냄새와 그 공간에서만 나는 특유의 향이 뒤섞여 영화관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한참을 웃고 울다가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나왔을 때 그동안 달라진 건 영화표 가격만이 아니란 걸 알았다.


코로나로 거리두기 강도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던 발길을 끊었고, 영화 산업계에서도 신작 개봉을 무기한 미루는 일이 흔했다. 영화광도 아니요, 시·청각에 그다지 예민한 감각도 타고나지 않았던 나는 점점 영화관에 갈 이유를 잃어버렸다. 집에서도 영화를 즐길 환경이 충분히 만들어졌고, 잠옷을 입은 채 누워서도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돈도 안 들고, 상영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게 너무 편했으니까.


영화관에선 그 모든 걸 할 수 없었다. 의자에 앉으니 제일 먼저 화면에서는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라는 말이 나왔다. 혹시나 중간에 화장실에 가게 될까 봐 영화 시작 전 화장실도 미리 다녀와야 했다. 내가 선택한 영화가 설령 재미없더라도 쉽게 정지 버튼을 누를 수도 없고, 나가겠다 결심하지 않는 한 꼼짝없이 한 영화를 끝까지 봐야 한다는 사실도 문득 압박감으로 느껴졌다. 잠옷을 입고 영화관에 온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왠지 모르게 안 입던 원피스를 꺼내 차려입게 됐다. 기분을 내고 싶었달까. 가져간 과자 봉지 하나를 뜯을 때도 사람들에게 들릴까 행동이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사람들이 입장할 때마다 다리를 요리조리 피해 줘야 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편함은 몰입으로 변했다. 핸드폰 세상에서 해방됐고, 영화랑 관련 없는 딴생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난 어떻게든 눈앞에 펼쳐진 세상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그것밖엔 할 게 없었으니까) 그런 환경은 영화 속에서 재미를 더 빨리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비록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한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보면서 함께 웃고, 울고 있다는 사실이 영화에 더 푹 빠져들게 했다. 영화 하나를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본 게 얼마 만이었는지. 거기에 데이트하는 기분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어쩌면 비싸다고 느꼈던 영화표 값이 제값 이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아프면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영화관에 ‘못’ 가보고 나서야 이제야 영화관이 얼마나 좋은 문화 공간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편안함 뒤엔 산만함이, 불편함 뒤엔 몰입이 있었다는 것, 그게 영화관과의 거리 두기가 알려준 그동안은 몰랐던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새로 개봉하는 영화도 넷플릭스에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꼭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다. 앞으로 한동안 굳이 영화관에 가는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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