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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담쟁이 Jan 24. 2016

강원도 기행

청각장애 학생들의 스키훈련 동행기


첫째 날


그놈은 콧방귀를 뀌며 돌아와서는

사방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하더니

실종된 놈을 한달음에 잡아왔고

흐르는 모든 것들을 멈추게 했다


실종된 겨울은 내가 강원도로 떠나는 날 되돌아왔다. 시베리아 북풍은 전국을 뒤덮었다. 우여곡절은 울산을 출발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왜 추호의 의심도 해보지 않았을까. 버스가 그곳을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시간이 꽤 흐른 후였다. 차를 재촉하여 터미널로 달려갔다. 이번 버스를 놓치게 되면 어떤 방법으로 그곳까지 가야 하나. 왜 기차는 운행을 않는단 말인가. 가까운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나을까? 포항에 가면 차편이 더 많겠지? 머릿속에 온갖 방법들을 생각해내며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출발이 채 1분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결국은 강릉에 도착. 강릉에서 횡계로 횡계에서 다시 용평으로 왔다. 주변은 평창 올림픽 준비로 여기저기 공사중이었다. 아직 아이들이 도착하려면 좀 이른 시간. 카페에 들어가 따끈한 음료를 한 잔 마시며 정선에서 올 아이들을 기다렸다. 좀 있으니 비장애인들과 겨룬 대회에서 선수 전원이 메달을 획득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대관령의 체감기온은 영하 32도를 기록했다. 하천은 얼어붙었고 콧속의 점액질도 얼어붙었다.


아이들과의 반가운 만남도 잠시, 저녁 식사  후 한 녀석이 구토를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복통을 호소하였다. 프런트에 가서 간단한 소화제를 받아와 먹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복통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이 있는 강릉까지 달려가야 했다. 병원에서 숙소로 되돌아온 시간은 새벽 네 시. 우리들의 상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둘째 날

    

이제 막 잠이 든 것 같은데 금방 알람이 울렸다. 서둘러 일어나 아이들을 깨웠다. 밤새 산발이 된 머리를 모자로 눌러 써 주기만 하면 외출 준비 끝. 아침 식사를 위해 횡계로 출발한 시간은 7시. 밖은 캄캄하고 여전히 날씨는 예사롭지 않다. 새벽에 병원 다녀오느라 차를 한 번 운행해서인지 다행히도 한 번만에 시동이 걸렸다.


버스들이 줄지어 설 정도로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엄청난 규모의 식당이다. 아직 이른 시간 이어선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키 훈련 중인 단체 손님으로 보인다. 다들 무표정한 얼굴로 밥을 먹고 있다. 잠이 덜 깬 탓일까 피곤에 지친 탓일까. 괜히 또 안쓰러운 엄마 마음이 되었다.


우리는 황태 미역국을 주문하였다. 황태 전문 식당답게 메뉴는 황태구이, 황태 찜, 황태 전골... 온통 황태 일색이다. 아침식사로 늘 밥 세 공기를 비운다는 아이 앞에 앉았다. 미역은 잘 끓여졌다. 출산 후 먹었던 국이 생각났다. 맛이 있어서인지 맞은편에 앉아 맛있게 먹는 녀석 때문인지 꽤 많은 양이었지만 금세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먹는 밥인데 왜 이렇게 맛이 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가족들 생각이 났다. 오늘 아침밥은 챙겨 먹을까? 몸은 이곳에 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집에 갈 때 황태포 몇 마리라도 사 가지고 가서 볶아 주어야겠다.


이곳 대관령 일대는 황태가 많다. 곳곳에서 황태를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키장 올라가는 길에도 황태 덕장이 있다. 그동안 날씨가 포근해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야 하는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던 탓이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은 곳은 스키장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선수들은 상급자 코스에서 연습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포근한 기온 탓에 인공 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탓이다. 용평 스키장과 알펜시아 스키장이 있는 평창 일대는 대기 중에 습기가 많아 눈을 만들려면 기온이 영하 10도는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도 이번 겨울처럼 따뜻하면 어떻게 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들 한 목소리로 날씨가 포근해서 스키 타기에는 딱 좋겠다고 했다. 스키장에 돌아와 전광판을 보니 영하 17도. 어제보다 많이 풀렸고 바람도 잠잠해졌다. 아열대 지방인 울산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날씨일 텐데 포근하다니, 말해 놓고도 웃음이 나왔다. 적응하는 데는 하루면 족하다.


숙소로 돌아온 아이들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스키를 타러 올라갔다. 나는 혼자 남아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면서 모처럼 주어진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오후에는 스키장 부근을 산책하면서 보냈다.




째 날


오늘은 바깥 구경을 하기로 했다. 울산을 대표하는 스키 선수들이지만 아직은 우리 아이들이 학생 신분. 그렇게 하여 보호자의 역할로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 3년.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스키에 있어서는 왕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란 말이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스피드에 대한 두려움과 고소공포증 역시 세월이 흘러도 전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강원도까지 와서 방안에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비록 잠깐 머물렀다 가는 보호자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스키장을 즐겨야겠다.


이곳은 발왕산. 해발 1,459m. 등산을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곤돌라를 타고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스키장이 800m 고도에 위치하고 있고 산은 비교적 평탄하니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날씨는 춥고 혹시 모를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우리 스키팀도 이곳에서 시작되는 상급자 코스를 타기로 했다. 추워진 날씨 덕분에 슬로프는 이미 눈으로 덮였을 테니까.


곤돌라 탑승시간은 왕복 40분. 슬로프의 경사는 무려 57도, 길이는 5,700m이다. 엄청난 경사에 엄청난 길이이다. 올라가면서 보니 키 큰 자작나무와 주목나무가 많이 보였다. 옆에 앉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 일대의 주목나무 군락지는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했다. 겨울나무 꼭대기에 드문드문 겨우살이들이 초록빛을 띠면서 매달려 있다.


정상에 도착하여 아이들은 바로 스키를 타며 내려갔고 나는 주변 경치를 감상했다. 동쪽으로는 두타산과 그 너머로 동해가 있고 서쪽으로는 오대산, 북쪽으로는 양떼목장이 보인다. 태백산맥의 등줄기에 서서 바라보는 봉우리들과 골짜기들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멋진 풍경에 압도되어 정상을 한 바퀴 빙 돌면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다른 높은 산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정상에도 고사목이 많았다. 대부분 주목나무로 보였다.


역시 나처럼 스키에는 관심이 없는 아가씨들한테 다가가 사진을 부탁했다. 한 장만 찍어달라고 했는데 온갖 포즈를 요구하며 여러 장 찍어줬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진을 들여다보니 이런! 어색한 포즈에 뒤따르는 어색한 웃음. 웃음이 만들어내는 세월의 깊이! 지울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보관하기로 했다. 슬로프 쪽으로 발을 옮겨 사진 몇 장을 더 담고 산을 내려왔다.


저녁에 전 국가대표 감독이 플레이트 몇개를 싣고 우리 숙소로 왔다. 어느 분이 기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누가 식사 대접을 한다고 해서 감독을 따라나섰다. 우리를 맞이하는 나이 지긋한 식당 주인 역시 전 국가대표 출신이라고 했다.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곳곳에서 이렇게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주는 분들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 세상은 삭막하다고 하지만 아직은 온기가 식지 않았다.


그들은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는지 몹시 궁금해하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도 수화가 서툰 코치 선생님의 지도를 용케 이해하고 찰떡같이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신기했다. 오랫동안 함께 하다 보니 나름의 신호가 그들만의 수화로 굳어진 것 같았다.


식사시간 내내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함은 식당 전체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오랜 훈련 동안 지쳤을 법도 한데 아이들은 늘 생기와 웃음이 넘친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지도코치의 인성 덕분일 것이다. 지금에야 장애인 동계 스포츠는 물론 비장애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초창기의 고생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었다. 코치는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고 와서 아이들을 희생적으로 지도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향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갑자기 울산을 출발하기 전의 갈등이 떠올랐다. 2년 연거푸 자원했으니 올해에는 쉬고 싶었다. 이번 겨울 방학은 짧은데다가 둘째가 군 입대를 코앞에 두고 있기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교사들의 자원이 없다면 스키팀의 운영도 어려울 것이었다. 아이들의 전지훈련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고 12월의 대회는 결국 포기해야 했었다. 그런 어려움을 마다할 수 없어 또 신청하면서도 마음속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 찼던 것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도와준 분들의 고마움을 생각하니 그동안의 모든 갈등이 눈 녹듯 사라졌다.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도 저렇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데 잠시나마 갈등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여러 사람들의 자원으로 아이들은 2월에 있을 대회까지는 훈련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 또 갈등을 하게 될 지는 모르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곳에  잘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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