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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담쟁이 Jan 15. 2016

여보, 바이런 좀 들려 줘

글쓰기에 대하여


여보, 바이런 좀 들려 줘


세 번째 만남에서 남편과 나는 결혼을 하기로 암묵적인 의견 일치를 보았다. 두 사람 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었다. 첫 만남이 있던 부산의 금강공원에서 남편은 영국 시인 바이런의 'I saw thee weep'을, 나는 유치환의 '행복'을 읊었다. 지금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몇 작품을 더 읊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혼 이후 당연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맺어준 시에서 점차 멀어졌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맞벌이를 하는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삶을 위하여 낭만은 포기해야 했다. 오늘 아침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남편에게 주문을 했다.

"여보, 우리 처음 만났던 날 당신이 읊었던 바이런 좀 들려줘."

남편은 별 무리 없이 그의 기억에 저장되어 있던 바이런을 꺼내어 읊어 주었다. 오! 아직 감각 살아있네.


나에게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었다. 문학 소녀였지만 남이 쓴 글을 읽기에 급급했지 내 글을 창작해 낸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 흔한 백일장에도 나가본 적이 없다. 나는 늘 화가나 조각가가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서 내가 쓴 글은 이런 것들이었다. 목표가 있고 결과가 도출되어야 하는 것들, 이를테면 교내외 높은 분들을 위한 각종 기념사, 교내외 행사의 시나리오, 교육 계획서, 학위논문, 연구 보고서. 방송국에 보낼 보도자료, 탄원서 대충 이런 것들이 30여 년의 교직생활 동안 내가 써온 것들이다.


생각해보면 남들보다는 많은 글을 썼다. 글쓰기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글을 잘 써서도 아니며 전공하고도 무관했지만 한 번 쓰고 나니 으레 '저 사람이 하는 일'로 굳어버린 탓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은 '나'라는 존재가 빠진 것들, 지극히 가치중립적이고도 감정의 소모 없이 쓰면 되는 글들이었다.


이런 내가 시도 쓰고 수필도 쓴다. 나는 지금 문학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무턱대고 쓴 결과 꽤 많은 작품이 모였다. 꾸준하게 쓰다 보니 조금씩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봐주지 않는 글이라 해도 상관없다. 글은 메모장에 저장되어 있다가 지속적인 퇴고 과정을 거쳐 언젠가는 멋진 작으로 재탄생할 테니까.


나의 감정을 정확히 포착해 내는 것, 주변 사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나의 개인사를 드러내는 일에 좀 더 솔직할 수 있다면 훨씬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볕 좋은 날에는 뜰에 세워져 있는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비 내리는 날에는 빗소리에 귀 기울이며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노년의 내 모습. 상상하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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