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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Nov 15. 2022

먹고사는 이야기

먹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것도 요즘처럼 물가인상이 무서운 세상에서 잘 먹고산다는 건 이제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스웨덴도 물가 상승세가 무섭다. 옆 나라 덴마크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인데, 버터는 거진 2배 가까이 올라가고 고깃값도 많이 올랐다. 예전엔 킬로당 70 크로나했던 삼겹살이 지금은 90크로나가 넘는다. 제일 저렴한 부위 중 하나인 삼겹살이 여긴 싸다고 좋아핬던 시절은 지나가고 없다. 그럼에도 한국보다는 고깃값이 싸다고 생각된다. 특히 소고기는 한국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오늘은 스웨덴에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김장을 위해 배추를 8포기 심었는데, 다 자라서 누군가 1개를 훔쳐갔다. 처음엔 없어진 줄도 모르고 왜 공간이 비었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 몰래 정원에 들어와 배추를 훔쳐갔다. 배추는 스웨덴 사람들이 자주 먹는 채소가 아님에도 가져간 걸 보고, 신기할 뿐이었다. 텃밭에는 이렇게 가끔 좀도둑이 찾아온다. 잠긴 오두막 문의 열쇠를 부수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서, 1년에 3-4번은 새로운 열쇠를 바꿔 달아야 한다. 그렇다고 좀도둑이 물건을 크게 훔쳐가는 것도 아니다. 오두막 안에는 아주 고가의 물건은 없지만 그래도 돈이 되는 물건이 꽤나 있음에도 절대 그런 걸 들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동안 신발이 없어졌고, 배추 한 포기가 없어졌을 뿐이다. 아, 농기구를 닦느라 두었던 알코올 한 병도 없어졌는데, 마시지 않았길 바란다. (식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좀도둑이 들어와도, 경찰이 뭘 해주는 건 없다. 신고를 해도, 나중에 아무런 결과 없이 사건이 종결되었다는 레터만 날아올 뿐이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요즘은 '에이.. 또 자물쇠 사야겠네.'라는 생각만 들뿐이다. 지난번 큰 마트에 가서 묶음으로 파는 자물쇠를 사 와서 아예 오두막 안의 서랍 속에다 두었다. 사람은 늘 준비를 해야 한다.


소고기 등심을 사다가 바비큐를 했다. 여름날 텃밭은 푸르고 아름답다. 지금은 흐리고 비가 오고 어둡기 그지없지만.

스테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말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가끔 결혼식장에서 먹어본 스테이크는 맛이 별로 없었다. 질기기만 했다. 그런데 여기서 먹은 등심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난 한국에서 싸구려 스테이크만 먹었던 게 아닐까 싶다. 겉은 조금 바짝 구워도, 고기 중간에는 피가 약간 흘러내리는 레어가 내 입맛에 맞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기를 구우면서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 친구는 어떻게 비건이랑 살까?'

'난 못 살아.' 

라고 말이다. 육식이 지구 온난화에 나쁜 건 알지만, 나는 차도 없으니 고기 먹는 거와 비슷하게 상쇄되지 않을까 싶다.


외국에서 비빔밥을 만드는 건 참 쉽다. 고기와 야채, 고추장만 있으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비빔밥을 집에서 자주 만들어 먹지는 않았는데,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 이게 그나마 만들기 쉬운 요리가 되었다. 비빔밥은 또 외국인들에게 대접하기에도 용이한 한국음식이다. 고추장이 매우면 간장으로 대신해서 간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야채와 고기가 골고루 섞여있어서 한국 음식이지만 누구나 먹기 쉬운 음식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보통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여기 음식은 짜고 단 음식이 많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애들을 본 적이 없기에, 스웨덴인을 초대하게 되면 조금이라도 매운 음식은 권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 음식의 대부분이 맵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 손님을 접대할 한국음식 많지 않다. 그럴 땐, 간장소스를 곁들인 비빔밥, 김밥, 돈가스, 만둣국, 전 종류 등이 적당하다. 


한국인이기에 삼겹살 파티는 정기적으로 개최를 해줘야 한다. 그나마 삼겹살이 여기서는 제일 저렴한 부위 중 하나라 부담 없이 즐기던 음식이었다. 삼겹살 값보다 곁들이는 채소값이 더 나가곤 했는데, 요즘은 삼겹살 값까지 올라서 조금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삼겹살을 판에 구우면 연기와 기름으로 집안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발코니에 먹는 게 아니라면, 프라이팬에 구우면서 뚜껑을 열심히 닫고 열어가면 뒤집어서 구워준다. 같이 양파, 버섯, 김치를 볶아주고, 가끔은 소시지까지 구워서 곁들여 주면 식탁이 그나마 풍성해진다. 


비싼 소고기를 먹는 날은 아주 아주 특별한 날이다. 특히 구워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연한 부위는 알뜰하게 유통기간이 다가오는 등심이 가격 할인에 들어가면 냅다 업어 온다. 그래도 여전히 비싸지만 말이다. 700 그람을 샀는데, 이게 순식간에 없어졌다. 

한국인에게 짜장면은 더 이상 중국음식이 아니고, 한국 음식으로 대우받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짜장면을 먹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한 달에 한 번은 빠지지 않고 먹어야 하지 않나? 싶지만, 처음엔 이 짜장을 만들 방법이 없었다. 처음 스웨덴에 왔을 때 짜장 소스를 구하려면 멀리 말모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법을 찾았다. 굳이 한국식 짜장 소스가 없어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건 중국에서 들여오는 발효 검은콩을 사용하면 된다. 이걸 정종(? 비슷한 걸로)과 밀가루, 물로 담가서 불린 다음, 믹서기로 곱게 갈아주면 비슷한 맛이 나는 춘장이 된다. 돼지기름으로 이 집에서 만든 춘장을 볶고, 고기를 볶고 양파와 양배추를 볶고, 해산물까지 넣어주면 아주 맛있는 짜장면이 탄생한다. 저렴한 가격에 며칠을 먹을 수 있는 양을 만들 수 있기에, 한 이틀을 먹고 나면, 다음 달까지 짜장면이 그립지 않게 된다.


탕수육은 조금 어렵다. 탕수육 소스에 그렇게 많은 설탕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설탕 반 물 반을 도저히 넣을 수가 없어서 늘 조금만 넣다 보니, 맹맹한 탕수육 소스가 되고 만다. 그러다 라수육을 대신 만들어 봤는데, 탕수육보다 나았다. 여전히 탕수육은 진행 중이다. 


요즘은 건강상 이유와 식용유 가격의 상승으로 잘 만들지 않지만, 주말에는 그래도 조금 느슨해줘도 되니까, 하는 심정으로 가끔 만드는 통닭. 한국식 통닭은 세계 어딜 가도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기름진 음식을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통닭은 달콤한 간장소스로 만들기도 하고, 그냥 후라이드로 만들기도 한다. 


메밀국수는 의외로 만들기가 쉽다. 메밀로 만든 국수만 구하면 요리하기가 쉽다. 소스는 무를 갈고 간장과 고추냉이로 맛을 내면 되는데, 한국에서 메밀국수를 제대로 만드는 식당을 찾기가 왜 그렇게 어렸는지 모를 정도로 만들기 쉬운 음식이다.


평일 아침은 주로 무슬리와 주스, 커피를 마시지만, 주말 아침은 조금 살이 쪄도 좋을 음식을 만든다. 베이컨은 특별하기에 자주 먹진 못하지만 주말에 가끔 식탁에 올라온다. 


칠리는 미국인에게 대중적인 음식이다. 만들기도 제법 쉽고, 대량으로 만들기도 쉬워서 파티를 열면 꼭 등장하는 음식이 칠리라고 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인데, 치즈와 콘브레드 사워크림을 같이 곁들이면 풍성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텃밭에서 가꾼 옥수수와 콩류의 야채는 여름에 자주 식탁에 올라온다. 조그만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는 다 먹기가 버거울 정도로 많다. 가끔은 주변 이웃에게 나눠주고도 넉넉할 채소가 수확된다.


미국식 바비큐 소스로 오븐에 구워낸 돼지갈비는 여름에 감자 샐러드와 함께 먹기에 좋다. 이렇게 뼈가 있고 손으로 들어서 먹어야 하는 음식은 대부분 소위 가난한 서민 음식이다. 먹는 과정에서 교양을 갖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덴마크 음식은 주로 샌드위치처럼 빵 위에 여러 가지 음식을 얹어서 먹는다. 다만 오픈 샌드위치라 하여, 빵을 위에는 덮지 않는다. 연어, 새우, 양파, 채소 등을 얹어서 먹는데 먹는 음식의 순서도 정해져 있고 같이 먹지 않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새우와 계란을 동시에 올려서 먹었더니, 덴마크 사람들이 웃으며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고 한다. 새우와 계란을 같이 먹으면 안 될 이유가 뭐 있나 싶은데, 그렇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또 다른 덴마크 음식 중에 우리나라 수육 같은 것이 있다. 돼지고기를 통으로 오븐에 구워내는 것인데. 윗에 소금만 뿌려서 구워낸다. 야채와 함께 먹는데,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질감이 좋다. 덴마크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참 좋아하는 편이다.


7월에는 블루베리를 따는데, 경쟁이 정말 심하다. 주로 태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 블루베리를 따는데 많이 동원된다. 코로나로 이들이 스웨덴에 오지 못하니, 작년과 올해는 블루베리를 따는 경쟁이 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블루베리 나무를 들여다 보면 늘 누군가가 먼저 지나가고 남아 있는 블루베리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이웃 할머니가 알려준 비밀 장소에 가면 블루베리를 딸 수 있다는 팁을 듣고 그곳에 가서 처음으로 파이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양을 따는 데 성공했다. 블루베리가 잔뜩 들어가 파이는 처음 먹어봤는데, 블루베리가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블루베리 즙이 넘쳐나는 신선한 맛이 좋다.


가끔 사라진 레시피들이 있다. 할머니 세대에 만들어진 레시피인데 너무 올드한 맛이 있어 사라진 레시피 중에는 옛날 할머니 집을 찾았을 때 먹는 정감 가는 맛이 담겨있다. 할머니의 파인애플 파이는 사라진 레시피 중 하나인데, 오래된 책에서 찾아낸 레시피이다. 생각보다 만들기도 쉽고 파인애플이 동그랗게 들어가고 체리가 중간중간 장식적 요소를 더해준다. 모양만 딱 봐도 아주 할머니가 만든 것만 같아, 보고 있으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맛은 뭐.. 설탕이 그렇게 들어가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열심히 조깅도 하고 헬스장을 가는데도 왜 이리 뱃살이 있을까 싶은 의문이 사라진다. 스웨덴은 밖에서 먹어봐야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맛도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경우가 많다. 음식을 집에서 만든다는 건, 단순히 요리를 한다는 행위를 넘어서는 요소가 있음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건 요리를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저녁을 집에서 만들어서 먹을 여유가 없었다. 또한 재료값도 만만치 않다. 때론 사서 먹는 것이 더 싼 경우가 많기도 했다. 

스웨덴은 한국보다는 음식재료 값이 그래도 저렴한 편이고, 밖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싸다. 그리고 맛도 좋고, 저녁을 만들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기도 하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문제를 넘어사는 일이다. 그렇기에 먹고사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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