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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Dec 20. 2022

크리스마스트리 구입기

매년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에 격년제로 꾸미기로 했다.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현재도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크리스마스를 챙길 이유는 없다. 그러나 유럽을 비롯 다른 서양 국가도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행사이기보다는 가족들 간의 포근한 행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처음 스웨덴에 와서 겨울의 지독한 날씨와 짧은 낮의 길이에 놀라고 적응하고 있을 때, 이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는 꼭 생나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는 신기한 인상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기후변화를 그렇게 신경 쓰며 자연을 챙기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나기 위해 저렇게 많이 잘린 소나무를 뭉태기로 판매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생나무보다는 보통 플라스틱 소나무를 사용하지 않은가?

한 번은 이런 내 생각을 현지인에게 전했더니 이런 대답을 들었다.

"플라스틱 나무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친화적이지!"

그런가? 여전히 나는 어느 편이 환경에 나은지 모르겠다. 


여하튼 작년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지 않았고, 격년제 시행이기에 이번 연도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기로 했다. 엄청난 물가상승과 경제난, 에너지난으로 어려움이 가득한 겨울이기에 조금이라도 집안 분위기를 살려보자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었다.

그래 이번 연도는 꼭 크리스마스 트리를 멋지게 장식하자!


크리스마스 트리는 주로 큰 슈퍼마켓의 주차장이나, 동네에서 규모가 있는 꽃집에서 시즌이 되면 판매를 하는데, 조금 늦게 찾았더니 풀이 죽어 슬퍼 보이는 나무나 모양이 영 어설픈 나무만 남겨져 있었다. 조금 늦게 찾아왔더니 좋은 나무들은 이미 주인을 찾아 떠나버린 것이다.

잠시, 모양이 그렇더라도 이거라도 사야 할까? 그럴 바에야 그냥 이번 연도도 그냥 넘길까?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값이 약 6-7만 원이니 이래저래 돈이 들어가는 것도 나를 망설이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이번 연도는 장식을 하고 싶었기에, 포기를 하더라도 조금 멀리 있는 꽃집을 한번 더 찾아가 보고 거기서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면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옆 타운에 있는 더 규모가 있는 꽃집을 찾았다. 이 꽃집은 수목원과 큰 비닐하우스, 크리스마스 나무가 대규모로 자라는 큰 텃밭까지 갖춘 곳이다.


이렇게 많은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중에서 골라서 톱으로 직접 자르면 된다는 게 주인장의 설명이었다. 잘라진 것을 사면 450 크로나, 직접 자르면 400 크로나이기에 50 크로나 (약 7천 원)를 절약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러나 그게 내 노동의 착취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눈이 내린 텃밭에는 정말 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너무 큰 나무는 힘들고 그렇다고 너무 작은 나무는 볼품이 없으니 천장에 닿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크기를 찾고 있었다. 물론 삼각형으로 떨어지는 모양이 잘 잡힌 나무를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거기에 더해 여러 가지 장식물의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조금씩 만져보면서 가지가 튼튼한 지를 검토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나무를 찾았다.


바로 이 나무다. 총 3가지 후보 중에서 가장 튼튼하고 가장 삼각형에 가까우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나무였다. 저 튼튼하고 생생한 생김새를 보라. 감격에 젖은 나는 톱을 들고 이 놈을 자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젠장! 너무 튼튼한 나무를 골랐나 보다. 밑동이 너무 굵었고 단단했다. 나무 밑부분까지 나뭇가지가 무성했고, 땅은 눈이 내려 꽁꽁 얼어 있었다. 나무가 다치지 않게 밑동만 살짝 잘라내야 했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30분 정도 헉헉거리며 톱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또 젠장! 너무 무거운 게 아닌가? 텃밭에서 꽃집 계산대가 있는 곳으로 끌고 가는 것도 일이었다. 순간 이게 오래된 아파트의 마룻바닥을 견뎌낼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의 트라우마를 가진 민족이 아닌가? 

어찌어찌 나무를 끌고 꽃집 앞마당으로 끌고 왔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장식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나뭇가지를 가진 나무를 고르느라 이것이 망 안으로 쏙 들어가지 않는 게 아닌가? 게다가 날씨가 추워 나무도 약간 얼어 있어서 벌어진 나뭇가지들이 오므라들지도 않았다. 결국 기계로 걸어서 잡아당겨 망 속에 겨우 집어넣었다.


망까지 집어넣고 작은 차에다 앞뒤로 꼭꼭 겨우 넣었다. 

얼마 전 새로 산 바지의 무릎에는 흙과 눈이 섞여서 묻어 엉망이었고, 장갑은 송진으로 또한 엉망이었다. 50 크로나 아끼려 했던 것이 진정 현명한 선택이었나 현타가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값을 지불하고 집 앞에 무사히 도착해 아파트 현관에다 두었다. 이리 보니 우리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쌈해 온 것처럼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자연에서 잘 자라고 있던 나무는 우리 집 거실에 놓이게 되었다. 나무를 세우고 며칠 동안 물을 주었는데 이 녀석은 아직도 자기가 잘려나가 죽은 줄도 모르고 물을 어마 무시하게 들이켜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장식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내년에는 다시 크리스마스 트리의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역시 격년제가 나은 제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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