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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Sep 03. 2024

Life is Miserable

내가 가꾸는 컬렉티브 텃밭


얼마 전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는데, 혹시 농부로 먹고사는 거냐고 조금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어보았다. 가끔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텃밭 사진이 있는데 그걸 보고 내가 스웨덴에서 농부로 정착한 것으로 오해를 한 모양이다. 이 친구를 제외하고도 비슷한 질문을 한 친구가 더 있다.

스웨덴에 유학 가더니 농부가 된 애. 

친구에겐 그런 내 모습도 이상할 게 없는가 보다. 


한국에 있을 때 잠시 삼성전자에 일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연락온 친구가 삼성전자에서 뭐 하냐고 물었다. 궁금할 만도 하다. 건축학과를 나와서는 삼성전자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 삼성전자에서 폰 만들지 뭐 하겠냐?"라고 장난으로 대답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그럼 공장에서 일하는 거야?"라고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그 친구는 안부로 "공장 일은 힘들지 않고 다닐만하냐?"라고 물었다. 친구에게 장난으로 말한 것을 고쳐주지 않고 그냥 잊고 지냈던 것이다.

건축학과 학사를 마치고, 도시공학 석사를 마친 놈이 공장에서 일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게 친구들이 바라보는 나인가 보다.


워낙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잘 안 하는 성격이다. 그렇게 연락이 끊어진 듯이 지내다, 또 다른 친구는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카톡이 있음에도 왜 이메일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친구의 설명에 의하면, 책장을 정리하다 내가 쓴 책을 발견했고 표지 날개에 작가 소개와 함께 적힌 이메일 주소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 친구는 이메일 속 안부에서 "우리 친구들 중 너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사는 너"라고 나를 묘사했다.

친구에게 나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가고 싶은 나라나 여행하면서 살더니 이제는 스웨덴에 정착해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참고로 나는 스웨덴에서 농부가 되지도 않았고,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한 적도 없다. 스웨덴에서 농부가 되려면 관련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냥 막 농장으로 뛰어 들어가, '농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서는 농부가 될 수가 없다. 우연히 본 딸기수확 아르바이트도 관련 학과나 경험을 요했다. 이처럼 스웨덴에서 농부가 되려면 관련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또한 공장에서 일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욱이 자유롭게 사는 인생을 누리고 있지도 않다. 


엘지전자는 'Life is Good!'라고 말했지만, 나는 늘 'Life is miserable!'이라고 말한다. 물론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면 상황도 덩달아 심각해지기에 늘 약간의 농담조로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삶이란, '견디어 내는 것'이다. 노력을 했다면 견디면서 기다려야 한다. 결과가 나왔다면 순응해야 한다. 그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다. 오직 죽음만이 그 과정을 끊어낼 수 있다. 그중에 절망도 있고, 기쁨도 잠시 있다. 그렇지만 삶은 행복의 연속은 절대 아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인데, 왜 이 쉽지 않은 인생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손으로 죽음을 택하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영화, 절대로 봐서는 안될 영화, 10선을 모두 골라서 본 적이 있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그중 한 영화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죽음을 궁금해하는 여러 지식인과 부자들이 한 여자를 납치해 살가죽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 나가며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만드는 실험을 한다는 게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끔찍하게 살겹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기가 상당히 어려운 영화인데, 결말은 이렇다. 가혹한 실험으로 결국 죽음의 문턱을 살짝 넘어 경험한 여자가 겨우 희미한 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때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물었다.

"죽음을 봤는가?"

여자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영화에서는 그 대답이 무엇이었는지 들려주진 않았다.

그 여자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저마다 총을 꺼내서 자신의 머리를 날리면서 끝이 났다. 아주 큰 기쁨의 미소와 함께 말이다. 마치 죽음 뒤의 상황을 기다릴 수 없는 행복이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그 여자는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스웨덴에서 농부가 되어 목가적인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내 멋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Life is miserable!'이라며 툴툴거리며 오늘도 견뎌내는 삶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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