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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해도 벌써 5번이 넘게 채소 서리범이 우리 정원을 찾았다. 젠장할... 경기침체에 물가상승으로 우리도 먹고살기 어려운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과 야채를 나눠먹으려니 가슴이 쓰려왔다. 그분이 찾아올 때마다 오두막 문을 잠글 때 사용하던 열쇠를 부숴버리는 바람에 그 교체 비용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이제는 아예 자물쇠를 묶음으로 사다가 오두막 서랍에 쟁여 놓았다. 매번 열쇠를 망가트려 열어 놓고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더 화나게 만든다. 도대체 이들이 오두막에서 찾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문 앞에다 '오두막 안에는 농사도구만 있지 당신들이 원하는 특별한 것이 없어요!'라고 적힌 포스트잇이라도 붙여놔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게 더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된 요즘은 점점 해가 짧아지고 있다. 요즘은 7시가 되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여름철 푸르게 웃자라던 텃밭의 시즌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어제의 일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텃밭으로 향했다. 요즘 뭐가 바빴는지 한 며칠 텃밭에 못 갔기 때문이다. 콜로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날씨도 좋지 않았고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기에 다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테다.
텃밭을 서둘러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과나무에서 잘 익은 사과를 땄고, 이젠 막바지인 것 같은 깻잎을 땄다. 주황색으로 익은 방울토마토는 소중하기에 조심스레 따서 작은 용기에 담았다. 잎이 거대하게 무성한 이탈리아 주키니는 그동안 웃자라 내 손목같이 커져 있었다. 이 주키니만 따서 이제 집에 가야겠다 생각하던 찰나, 내 앞에 한 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덩치가 산만한 경찰관 아저씨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여기서 뭐 하니?"
혼자인 줄 알았던 곳에서 그것도 예상치 못한 경찰관을 만나 당황한 나는 대답했다.
"주키니 따는데요..."
경찰관 앞에는 괜히 지은 죄가 없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너 여기 주인이야?"
"그럼요. 여기 텃밭은 제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경찰관은 뭔가 못 미더워 보였다. 발걸음을 옮겨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어디에 사니? 이름이 뭐니? 여기 텃밭 주인이 정말 맞니?' 등등 길게 늘어지는 여러 질문들에 조용히 내 짧은 스웨덴어로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네가 여기 주인이라면 오두막 열쇠가 있겠네?"라고 물었고, "열쇠는 없어요. 번호로 여는 거라서요."라고 답했다. 경찰관은 그럼 오두막을 한번 열어보라고 했고, 나는 그의 요청에 따랐다. 아니, 내 오두막에 내 자물쇠가 잠겨있는데 나는 왜 열쇠 번호를 맞추면서 긴장하고 있을까?
오두막을 열었다. 그리고 경찰관이 대답했다.
"요즘 좀도둑이 콜로니에 많이 출몰한다는 신고가 계속 들어와서 가끔 이렇게 살펴보는 중입니다. 그나저나 손에 든 것은 뭐요?"
그제야 난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작지 않은 크기의 뭉툭한 몽둥이 같은 것을 말이다.
"주키니요."
"아.. 그것 참 크고 이쁘네요."라고 경찰관은 답했다.
그렇게 경찰관에게 목례를 하고 텃밭을 떠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상당히 복잡한 감정이 휩싸였다. 우리는 늘 채소 서리를 당하면, 경찰에 신고한다. 그렇지만 경찰은 한 번도 순찰을 보낸 적이 없다. 늘 편지로 이 사건은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만 받았다. 그랬기에 콜로니 회원들은 모두 경찰의 무성의에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세금이 아깝다고들 말했다. (난 딱히 스웨덴에 많은 세금을 내고 있진 않기에 이 말에 크게 동조하진 않았다.)
그랬는데 경찰이 진짜 순찰을 왔다. 이건 경찰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하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난 채소 서리범으로 오인을 받았던 것이다. 왜? 스웨덴어가 어색한 이민자라서?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날따라 면도도 하지 않아 더 도둑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끔하게 잘 차려입은 내가 어딜 봐서 도둑처럼 보인단 말인가? 이렇게 멀쩡하게 잘 생긴 도둑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할머니가 아니라서 오해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 노인들이 텃밭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 인종차별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순찰 나온 경찰관이 자신의 업무를 다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경찰관의 조금은 과한 질문에는 '내가 스웨덴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대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스웨덴어를 조금이라도 못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혹은 오두막 자물쇠가 열쇠로 여는 것인데 마침 열쇠를 안 가져온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꼼짝없이 경찰서로 연행될뻔한 일이었다.
애써 키운 채소를 도둑맞은 것도 서러운데, 내 텃밭에서 주인인 내가 도둑으로 오인을 받다니. 역시 남의 나라에서 이민자로 그리고 소수인으로 사는 건 때론 서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