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여름의 시간이 되었다. 북쪽의 대지는 새로운 시작 앞에 선 신부처럼 수줍게 빛났다. 땅은 기쁨의 색으로 넘쳤고, 샘물은 끝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쉼 없이 흘렀다. 야생화가 꼿꼿이 피어난 초원 위를 날아가는 새들은 노래를 부르며 여름의 귀향을 찬양했다. 그때, 숲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오두막 앞에 앉았다. 그 오두막 안에는 아흔 살 노모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노모는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몸져누워 지냈다. 방에는 농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문이 있었다. 그 창문을 통해 바라보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농장을 정성껏 가꾸는 두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노모는 세상을 독특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재주가 있었다. 예를 들면, 그녀가 바라보면 평범한 유리창도 무지갯빛으로 변하곤 했다. 그리고 고개만 살짝 돌려도,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가 차례차례 붉은 장밋빛으로, 노란 황금빛으로, 푸른 하늘빛으로, 보라색 종꽃빛으로 빛났다. 어느 겨울날 서리가 하얗게 내려 모든 나뭇잎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에도, 노모가 고개를 돌리자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나무가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들판은 노랗게, 하늘은 파랗게 물들었다. 물론 실제 하늘은 잿빛 가득한 평범한 겨울날이었다.
마법을 부릴 수 있다고 믿는 노모는, 지루함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또한 그녀에겐 마술 창문도 있었다. 볼록 렌즈 같은 유리창은 밖의 풍경을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보여주었다.
어느 날이었다. 노모의 큰아들이 집에 돌아와 마당에서 버릇없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큰아들이 작고 착하던 시절로 돌아가길 바랐다. 그러자 순식간에 정말로 큰아들이 작아졌다.
다른 날은 손자들이 마당에서 아장아장 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이 작고 소중한 아이들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모는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걱정과 슬픔으로 눈물이 글썽였다. 그러자, 하나, 둘, 셋 – 유리창은 마법을 부렸다. 순식간에 손자들이 키가 큰 어른으로 자라 있었다.
여름이 깊어졌다. 노모는 아들에게 창문을 활짝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뜨거운 절정으로 치닫는 한여름은 마법의 도움이 없어도 아름다웠다. 한여름 내내 온 세상이 아름다웠지만, 미드썸머(하지) 전날은 그 싱그러운 푸름이 절정에 달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로 저 멀리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았다.
그때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창가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하얀 비둘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천국의 기쁨과 영광에 대해 노래했다. 그리고 이 고난의 삶 속에서 지치고 억압받는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환영했다.
노래를 들은 노모는 마음 깊이 감사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날의 대지는 푸르게 빛나는 하늘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주님,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어서 다행입니다.” 노모는 비둘기에게 속삭였다.
노모의 오두막을 떠난 비둘기는 들판을 가로질러 산속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그곳에는 한 농부가 우물을 파고 있었다. 그는 땅속으로 들어가 삽질하고 있었고, 구덩이 옆에는 건장한 사내의 키를 훌쩍 넘어서는 흙이 쌓여 있었다. 마치 자신의 무덤 속으로 들어간 사람처럼 보였다.
비둘기는 전나무 가지에 앉아, 천국의 기쁨에 대해 노래했다. 그가 일하고 있는 땅속 깊은 곳에선 하늘도, 바다도, 들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외로이 일하는 그가 땅 위의 세상을 그리워하리라 비둘기는 짐작했다.
“어휴, 지금은 아니야.” 농부가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이 우물부터 빨리 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여름을 맞아 찾아올 손님들에게 물도 대접 못할 처지가 될 게 뻔하거든. 그럼, 어떻게 되냐고? 뻔하지, 뭐. 아내는 남부끄러워서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 버리고 말겠지…”
비둘기는 다시 허공을 날아 해변가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한 어부가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비둘기는 갈대숲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휴, 지금 그럴 때가 아냐.” 어부가 말했다. “집안 식구들이 먹을 음식부터 마련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배고픈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닐 거야. 나중에, 나중에 하자고! 하늘나라에 갈 날은 한참이나 남았는 걸. 먹고사는 게 먼저지, 당장 죽을 것도 아닌데.”
비둘기는 근처 큰 오두막집으로 날아갔다. 그곳에는 슬픔에 잠긴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베란다에 앉아 재봉틀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양귀비꽃처럼 새빨간 펠트 모자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백합처럼 창백했고, 머리카락은 상복의 베일처럼 검었다. 그녀는 작은 딸아이를 위해 미드썸머 전야에 입힐 예쁜 앞치마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발꿈치 아래, 바닥에 앉아 있는 딸은 떨어진 천 조각들을 가지고 놀이에 빠져 있었다.
“엄마, 왜 아빠는 집으로 안 돌아와요?” 딸아이가 물었다.
불쌍한 여인이 대답하기엔 어려운 질문이었다. 아이의 아빠조차도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먼 타국 땅으로 떠난 그는 슬픔의 바다를 떠돌고 있었다. 그의 절망은 아내보다 훨씬 깊었다.
말썽이 잦은 재봉틀이었지만, 바늘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천을 찔렀다. 마치 한 인간의 심장 속 피를 모조리 쏟아내려고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바늘은 수없이 많은 작은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바느질 하나하나가 천을 더 단단히 묶어 놓았다.
“엄마! 오늘은 마을에 가고 싶어요.” 작은딸이 말했다. “해가 보고 싶어요. 여긴 너무 어두워요.”
“오늘 오후에 나가자꾸나, 아가야!” 엄마가 말했다.
섬의 해변을 따라 높이 솟은 바위들 사이로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오두막은 검푸른 전나무 숲 한가운데 있어서, 바다로 향하는 시선도 울창한 숲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 장난감도 아주 많이 사주세요. 오늘은…”
“아가야. 지금은 우리가 살 수 있는 게 많이 없단다.” 젊은 여인이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때의 풍요는 고난의 얼굴로 바뀌었다. 이번 여름에는 집에서 일할 일꾼도 둘 수 없어, 모든 일을 혼자 해야만 했다. 여인은 딸의 슬픈 표정을 보았다. 그녀는 아이를 들어 올려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꼭 껴안아 줘.” 그녀가 말했다.
작은 딸아이는 그렇게 했다.
“자, 그리고 엄마에게 키스해 주는 것도 잊으면 안 되지.”
마치 작은 아기 새가 엄마를 향하듯, 조그마한 입술이 엄마의 뺨에 닿았다. 수국처럼 푸른 아이의 눈을 바라보자,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은 아이의 순수함을 반사하듯 빛났다. 여인은 햇살 속에서 행복한 아이처럼 보였다.
‘여기선 하늘나라를 노래할 필요가 없겠군.’ 비둘기는 생각했다. ‘그들을 도울 방법이 뭐 없을까?’ 그리고 비둘기는 태양의 마을로 날아갔다.
작가 소개: August Strindberg (1849-1912)
스웨덴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근대 연극과 자연주의 문학을 이끈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강렬한 심리 묘사, 인간 내면의 갈등, 사회 비판을 핵심으로 한 작품들이 특징이며, 미스 줄리와 붉은 방 같은 대표작으로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남겼다. 그의 글은 거칠고 솔직하며,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알림:
원작 SAGOR(1903년 작품)에서 발췌되어 번역되었습니다. 원작과 다르게 번역된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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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