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2부

by 안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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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초를 소중히 품속에 숨겼다. 밤이 되자, 흰 곰이 그녀를 데리러 왔다. 멀리 가지도 않아, 흰 곰은 자신이 당부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차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고, 에둘러서 말했다.


“자, 이제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곰이 말했다. “만약 네 어머니가 어떤 조언을 너에게 건넸고, 그걸 네가 따른다면, 넌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가져오게 될 거야. 그동안 우리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산산조각나고 말 거야.”

“아네요.” 그녀가 말했다. “어머니는 어떤 조언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그들은 성으로 돌아왔고, 침실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불이 꺼지자 다시 그 낯선 남자가 찾아와 그녀의 옆에 누웠다. 밤이 깊어지자 남자는 곤히 잠에 빠져들었고, 그녀는 살며시 일어나 초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초를 그 남자의 얼굴 근처로 가져갔다. 그러자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자가 눈앞에 보이는 게 아닌가. 그녀는 한눈에 깊은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만약 지금 이 순간, 그에게 키스하지 않는다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결국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그 순간! 뜨거운 촛농 세 방울이 왕자의 셔츠 위에 떨어지고 말았고, 그는 눈을 떴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그가 울부짖었다. “이제 우리 모두 불행해질 거야. 딱 일 년만 더 참아주었더라면, 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는데… 계모는 나에게 저주를 걸었어. 낮에는 곰으로, 밤에는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말이야. 그 저주가 딱 일 년이 지나면, 풀리게 될 텐데, 이제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어. 이젠 난 계모가 살고 있는 태양의 동쪽과 달의 서쪽에 있는 성으로 가야 돼. 그곳에서 코가 2미터나 되는 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어. 이제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겠냐고!”


그녀는 깊은 후회에 휩싸였다. 울며 애원하며 왕자에게 매달렸지만, 이 상황을 되돌리기엔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왕자는 떠나야 했다.

“정 떠나야 한다면, 당신과 함께 갈 수는 없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 그건 안 돼.” 왕자가 단호히 거절했다.


“그렇다면, 그쪽으로 가는 길이라도 제발 알려주세요.” 그녀가 애원했다. “같이 갈 수 없다면, 저 혼자서라도 당신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제발 그것까지 막지는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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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가 정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그 성으로 가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 태양의 동쪽과 달의 서쪽에 있는 곳을 어떻게 찾겠다는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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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말 못하는 생명과 오래된 도시와 물건을 좋아합니다. 때론 사진을 찍고, 게으르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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