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옛날 옛적에, 자식이 많은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어찌나 가난했던지, 아들과 딸들에게 먹을 음식도 입을 옷도 넉넉히 마련해 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모든 아이가 예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예쁜 자식은 막내딸로, 너무 사랑스러워서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을 받았다.
어느 늦가을의 목요일 저녁이었다. 오두막 밖의 날씨는 거칠고 사나웠으며, 칠흑같이 어두웠다. 비바람도 강하게 불어닥쳐, 오두막의 벽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농부의 가족은 모두 난로 근처에 둘러앉아, 저마다 바쁘게 소일거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창문을 ‘툭-툭-툭’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농부가 나가 보니, 문밖에는 커다란 흰 곰이 서 있었다.
“좋은 저녁입니다!” 흰 곰이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농부가 대답했다.
“당신의 막내딸을 제게 주시렵니까? 그렇게만 해준다면, 당신을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 줄게요.” 곰이 말했다.
물론 부자가 되는 상상에 기분이 나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농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기 전에 막내딸의 생각을 우선 들어봐야 했다.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간 뒤, 가족들에게 지금 밖에 아주 거대한 흰 곰 하나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막내딸을 얻는다면, 우리 가족을 아주 큰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은 들은 막내딸은 단번에 “싫어요!”라고 소리쳤다. 완강히 거부하는 딸 앞에서, 농부는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했다. 농부는 밖으로 다시 나가 아마도 다음 주 목요일 저녁에 다시 찾아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흰 곰은 그러겠다고 말한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을 벌게 된 농부는 막내딸을 계속 설득했다.
“딸아. 흰 곰과 결혼만 한다면,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만 되면, 우리 가족 전체가 이제 더는 굶주릴 필요가 없게 되지 않겠니? 그게 또 우리 가족만 좋자고 하는 일은 절대 아니란 걸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생각해 보렴, 너도 이 끝없는 가난이 지긋지긋하지도 않니? 너도 남들 부러움을 살 정도로 부유하게 잘살게 될 것이 아니냐.”
아버지의 끈질긴 설득에 막내딸은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고 누더기 옷을 씻고 꿰매어 최대한 단정하게 옷을 입고, 집 떠날 준비를 마쳤다. 그녀가 가져갈 짐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다음 목요일 저녁이 되자, 흰 곰이 막내딸을 데리러 다시 오두막을 찾아왔다. 소녀는 짐 보따리를 챙겨 곰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들은 길을 떠났다. 얼마쯤 가자 흰 곰이 말했다.
“두렵니?”
“아니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다면 참 다행이군! 내 목덜미를 꼭 붙잡고 있으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단다.” 곰이 말했다.
그렇게 소녀는 곰 등에 업혀서 멀고 먼 길을 떠났고, 아주 가파른 언덕에 이르렀다. 곰이 언덕의 표면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고, 그들은 거대한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환하게 불이 밝혀진 수없이 많은 방이 있었다. 심지어 은과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빛나는 방들도 있었다. 또한 식탁 위에는 그녀가 이제껏 보지도 듣지도 못한 진수성찬이 정성껏 차려져 있었다.
흰 곰은 그녀에게 은으로 만든 작은 종을 건네며 말했다.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이 종만 울리면 돼. 그럼 네가 원하는 모든 게 눈앞에 바로 나타날 테니까…”
소녀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음료를 마셨다. 그리고 저녁이 깊어지자, 긴 여정으로 인한 피곤이 몰려왔다. 그만 잠자리에 들고 싶었던 그녀는 종을 울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눈부시게 화려한 방으로 이동하는 게 아닌가! 방 안에는, 누구라도 이곳에서 한 번이라도 자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할 정도로 아름다운 침대가 놓여 있었다. 포근하고 아름다운 흰색 리넨으로 만들어진 침대에는 비단 베개와 커튼이 있었고, 섬세하게 가공된 금빛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방 안의 모든 것은 금과 은으로 빛났다.
소녀는 불을 끄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러자 한 남자가 그녀 곁으로 다가와 누웠다. 그는 바로 흰 곰이었다. 밤이 되면 짐승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인간이 되어 그녀의 침대에 같이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늘 불이 꺼진 깜깜한 밤에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새벽이 밝기 전에 아무런 기척도 없이 일어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동안은 소녀도 만족한 삶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말수가 급격히 줄었고 슬픔을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성은 화려했지만, 소녀는 완벽하게 혼자였다. 화려한 삶을 함께 할 사람도, 사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었다. 어느 날, 소녀는 집이 너무 그리웠다. 아빠와 엄마, 오빠와 언니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어느 날, 흰 곰이 무엇이 부족해서 그러냐고 물었다. 그녀는 성에서의 삶이 너무 쓸쓸하고 외롭다고 대답했다. 고향집도 너무 그립고, 가족들의 소식도 너무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을 만날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슬프고 괴롭기만 하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그리고 어떤 생각인지 잘 알겠어!” 곰이 말했다.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그 정도 소원은 들어줄 수 있어. 그러나 한 가지 약속을 해줘야겠어. 네 어머니를 만나 단둘이 있을 때는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돼! 다른 사람들이 옆에 함께 있을 때만 말해야 해!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가 방에 들어가서 단둘이서만 이야기 좀 하자고 할 거야. 하지만 절대 그 말을 따르면 안 돼. 이걸 어기면, 넌 우리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오게 될 테니까!”
그녀는 흰 곰과 약속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맹세했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흰 곰이 돌아와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 곰의 등에 올라타고 머나먼 길을 떠났다. 곰은 그녀를 웅장한 저택 앞으로 데려갔다. 그녀의 오빠들과 언니들은 아름다운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가족은 너무도 아름답고 훌륭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쳤다.
“이곳이 이제 너희 가족들이 사는 곳이야.” 흰 곰이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경고했던 말, 절대로 잊어선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넌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흰 곰은 그녀를 내려주고 방향을 틀어 사라졌다.
그녀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오랜만에 본 가족들 덕에 끝없는 행복을 만끽했다. 가족 또한 그녀의 결혼 덕에 모두가 풍요롭게 잘살게 되었으니, 무척이나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갖게 된 가족들은, 막내딸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자신은 아주 좋은 곳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 또한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막내딸의 삶이 어떠한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특히 소녀의 어머니는 이 말을 꺼내는 막내딸의 어투가 상당히 어색하고, 표정도 약간 어둡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에게 말 못할 속상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모든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식사를 했다. 그리고 흰 곰이 예언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잠시 침실로 가서 단둘이서만 이야기 좀 하자고 권했다. 그렇지만 곰의 당부를 잊지 않은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오, 어머니! 우리끼리의 이야기는 나중에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녀가 말하며 어머니를 애써 피했다.
그러나 결국 끈질긴 설득에 넘어간 그녀는 마침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매일 밤마다 불을 끄면 웬 낯선 남자가 제 침대로 와서 누워요. 그렇지만 그 사람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다음 날 새벽이 밝아오기 전에 일어나서 사라져 버리거든요. 그런데 이젠 그 사람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에요. 하루 종일 그 생각에만 푹 빠져 있는 저 자신도 너무 슬프고 괴롭고요. 해가 뜬 낮은 또 어떻고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혼자서 산책하는 일도 이젠 지치고 지겨워요. 일상이 그냥 황량하고 외로운 날의 연속일 뿐이에요.”
“오, 세상에나! 내 딸아!”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매일 밤 너의 침대로 찾아오는 건 아마 요정 트롤일 거야. 그렇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그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게. 이 작은 양초 한 자루를 줄 테니, 성으로 돌아갈 때 품에 잘 숨겨서 가져 가거라. 그리고 그가 잠이 들면 이 초에 불을 밝히면 된다. 하지만 주의할 게 있어! 절대로 촛농을 트롤에게 떨어뜨려서는 안 돼.”
작가 소개: Peter Christen Asbjørnsen(1812–1885)
페텔 크리스텐 아스비욘센은 노르웨이의 민속학자이자 작가로, 노르웨이 민담과 전통 구전문학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인물이다. 아스비욘센은 농촌을 직접 여행하며 설화, 전설, 동화를 수집했고, 이를 생생한 언어감각과 문학적 감수성으로 정리해 큰 호평을 받았다. 그가 정리한 이야기들은 노르웨이의 자연, 농촌 문화, 전통적 가치관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며, 이후 세대의 문학가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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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East of the Sun and West of the Moon에서 번역되었습니다. 원작과 다르게 번역된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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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