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이 한편이길.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직 결혼하지 않은 세이모들이랑 사시던 외할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아빠는 기꺼이 강원도에 있던 외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갔다. 아빠는 총각 때 외할머니댁에서 하숙을 하셨었고 하숙집 큰 딸과 결혼을 하신 거였다. 이미 오래전에 하숙은 그만두셨지만 할머니 댁은 작은 방들이 골목골목 빼곡히 들어차 있던 신기한 집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손수 지으셨다는 그 집은 마루에 방들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신을 신고 돌아다니는 골목으로 방문이 나 있었고 방들은 쪽마루 등으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훨씬 더 독립적인 분위기였다. 집을 빙 둘러서 연결되어 있던 골목은 낮동안에도 조용했고 아무 방문이나 열어보면 텅 빈 방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그중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빈방에 가만히 누워있어보곤 했다.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 큰방으로 이사를 들어가서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알고 있던 세상에서 가장 트렌디했던 이모들을 동경했다. 처음으로 식빵으로 아침을 먹었고 유니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그중에서도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내어준 적이 없었다는 이모는 내 마음속 워너비였다. 그러다가 결국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우리는 다시 예전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모들은 차례로 결혼을 해서 다른 지방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멀어졌고 어른이 되어서는 만나본 적이 거의 없어서 먼 친적 정도로 여기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1등 이모가 어느 날인가부터 연락을 시작했고 아마 인터넷 주문을 하면서 잘 안 되는 부분을 내가 해결해 주면서 엮이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거의 매일 연락을 한다. 나는 주로 듣는 편이고 이모가 특히 이모부와의 실랑이를 털어놓는 편이다. 여태껏 내가 남편과의 관계를 잘 건사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모가 하는 걸 보니 웬걸 나는 베테랑이었다. 이모는 나보다 족히 10년 이상 결혼 생활을 더 해오는 중인데도 왜 이렇게 어설픈지. 그래서 생각해봤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어떤 걸 주고받아야 하는가? 에 대해서. 그 둘은 과연 어떤 상태일 때가 이상적인가? 또 어떻게 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등에 대해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 스스로 24년 동안 한 남자와 지지고 볶다 보니 깨우친 게 있다. 당연히 어떤 남자가 남편인지 어떤 여자가 아내인지에 따라서 많이 다를 것이다. 내가 아는 남편은 내 남편뿐이고 내가 아는 아내는 나뿐이니까 우리 부부에 한정된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나는 선봐서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6개월도 빠르다고들 하지만 약혼식은 겨우 한 달 만에 했다. 그 약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남편은 정말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 너 왜 나랑 결혼하려고 그래? 진짜 그러고 싶은 거 맞아?' 그냥 시큰둥해 보였는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내가 답답했던지 남편은 불안해했다. 나는 그 질문에 이렇다 하고 확답을 주지 못했다. '응 하고 싶어. 그냥.' 그게 내 대답이었다. 남편은 결국 ' 후회해도 나는 몰라. 나는 하고 싶으니까 그냥 할래'. 그렇게 우리는 약혼식을 치렀고 남편 시험이 끝나는 때까지 기다려서 결혼식을 올렸다. 남들이 모두 입을 모아 남편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거기에서 오해가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편이 엄청 똑똑한 사람이니 아마도 나를 훤히 내려다보면서 조종하고 있을 거라고 남편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방향으로 오해를 했고, 남편은 복잡 미묘한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자주 혼자서 서운했고 서운하면 베란다에 나가서 엄마가 보내준 쌀자루 위에 앉아서 울었다. 남편은 어서 들어오라고 손을 저으면서 불렀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5살 아이 달래듯 나를 어르고 달래더니 어느 날부터는 포기를 했는지 그냥 내버려 뒀다. 어휴.. 한숨 한번 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이 잘못한 결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절망적인 기분으로 훌쩍이면서 쌀자루 위에 앉아 있다가 이제 남편은 들어오라고 불러주지도 않으니 대체 어느 시점에 털고 들어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아이가 생겨서 바빠졌다. 그 사이 우리는 원수로 살았던 것 같다. 매사에 촉을 곤두세우고 와다다다 해댔다. 내가 해대는 동안 남편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묵묵부답이었고 나는 애들을 재우고 못 마시는 맥주를 들이켜고 혼자서 취해 울곤 했다. 이혼 얘기도 나왔고 별거 얘기도 나왔다. 그러다가 잘 나가던 남편이 사업에 실패했다. 믿었던 친구한테 배신당하고 입안에 혀처럼 굴던 거래처는 한순간에 조폭처럼 협박을 해댔다. 그동안 남편은 말라갔고 나는 그런 남편이 너무 안쓰러워서 매일 남편을 위해 기도했다. 이 남자를 제발 악에서 건져주세요. 시간이 흘러 복잡한 상황에서 놓여났지만 지금도 남편은 그때를 떠올리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때 절교한 친구 이름을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 상처가 어찌나 큰지 아직도 그 주변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한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내 마음속에서 남편은 항상 상대방이었다. 언제나 나에게 고난을 주는 사람이었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고 엄청 머리가 좋아서 나를 가지고 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뒤로 남편은 더 이상 상대방이 아니었다. 나는 철저히 남편을 위하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몸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한 박자 쉬고 대답하게 되었고 그 한 박자 동안 일단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결국 남편이 원하지 않는 대답을 해야만 하는 경우에도 화를 내는 대신 그 대답을 못해줘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진심이었다. 생각해보면 남편과 매일 싸우고 있던 시절에도 한 번도 남편이 못되기를 바란 적이 없었고 남편을 힘들게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다만 그런 내 부드러운 속마음은 꽁꽁 감춰두고 악악 대기만 했다. 마치 네가 힘들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보이도록.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가 된다. 내 말랑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줬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남편을 적으로 생각하고 남편을 대할 때면 갑옷 입고 투구 쓰고 강한 척했다. 네가 나를 상처 줄 수 있을 것 같아? 웃기시네. 나는 말발로 무장을 하고 남편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었다. 그런데 내가 말랑한 마음을 내보이고 항복했더니 남편도 그제야 나와의 싸움을 멈췄다. 나를 같은 편으로 삼아줬고 한편 먹은 우리들은 이제 별로 싸울 일이 없다. 아예 서운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운 할 때는 그냥 서운하더라고 짧게 말한다. 절대 공격적인 말투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한다. 그러면 남편은 그 말을 그대로 알아들어준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런 아픔을 그런 서운함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준다. 오히려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더 솔직한 기분이 든다. 싸우지 않으니 힘도 덜 든다. 사는 게 훨씬 단순해졌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것만 듣고 내 마음도 그대로 표현을 하니 내가 착해진 기분도 든다.
그 와중에 내가 읽은 책이 한 권 있다. '아내여 항복하라' 그 책에서 하는 말은 이거다. 모든 남편은 아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아내가 그걸 믿지 못하고 미리 잔소리하고 공격하는 바람에 남편들은 방어적이 되고 수동적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이 어느 날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을 한다. 아내는 근사한 저녁은 좋으면서도 어설픈 남편은 대체 믿을 수가 없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짜잔 하고 보여주면 여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기대하던 남편은 자기를 믿지 못하고 어느 식당으로 갈 거냐 예약은 했느냐 등등으로 잔소리를 해대면 풀이 죽고 다시는 이런 걸 하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결심을 한단다. 그러니 남편이 혹시 저런 마음으로 저런 기대를 갖고 제안을 하면 그냥 주는 대로 받고 고맙다고 말해주면 된단다. 그러면 처음에는 어설프던 남편도 나중에는 그 누구보다 좋은 식당을 잘 찾게 되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단다. 그때가 되면 나는 잔소리 안 해서 좋고 남편은 나랑 좋은 시간 보내서 행복해진단다. 남편을 믿고 항복한 아내는 행복해진단다. 기필코. 저자는 이게 안 통하는 남자는 절대로 없다고 확신을 한다.
내 남편의 경우도 확실히 통했다. 내가 잔소리 대신에 기대한다는 말을 하면 훨씬 더 열심히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혼초부터 우리 부부싸움의 대부분은 시댁문제였다. 그런데 내가 자기편이 된 후로 남편은 시댁으로부터 나를 철저히 보호한다. 이제는 자기가 기꺼이 방패가 되어준다. 나도 덮어놓고 따지고 역정만 내던 과거의 내가 아니다. 내가 힘든 부분은 말랑한 언어로 힘들다고 얘기하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기꺼이 웃으면서 해준다. 며칠 전에 남편이 아버님한테 간다고 하길래 전 날 저녁에 된장찌개용 야채를 다 썰어서 대야에 담아 뒤섞으면서 혼잣말로 김치 담는 거 같아...라고 했는데 남편이 지나가다가 듣고 맞아.. 당신 김치 담는 것 같네..라고 웃으면서 맞장구치더니 내가 진공포장기를 내놓고 포장하는 동안 옆에 앉아서 한가하게 웃고 얘기하는 동안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게 열댓 개의 야채 뭉치를 만들어냈다. 시댁과 관련된 일에는 서로 예민해져서 굳은 얼굴로 모른 척하던 남편이 아니었고 과하게 힘든 척하던 내가 아니었다. 전에는 해주면서도 힘들다고 공평하지 않다고 싫은 소리를 했었다. 그런 소리를 듣는 남편은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이제 나는 하나도 힘든 내색 없이 착착 준비해주고 오히려 남편이 부탁하기도 전에 미리 '해줄까?' 물어본다. 그러니 남편이 얼마나 마음이 가벼울 것이며 내가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말이다. 말랑해진 나는 한없이 여성 여성 하다. 전사로 살았던 시절에는 내 여성성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내가 여성 여성 할수록 남편은 애인 애인스럽다. 연애할 때처럼 보호하려고 하고 나를 즐겁게 해주고 싶어 한다.
이모는 카톡을 하면 이모부는 댓 구도 안 하신단다. 어느 날은 화가 나서.이라도 찍으라고 했더니 몇 번은. 을 찍으시더니 요즘은 다시 댓 구도 없단다. 이모부가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카톡창에 보면 오른쪽에서만 길게 쓰여있단다. 그래서 이모부가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뭐하러 자꾸 설명을 하냐고 하니까, 모르겠다고 그냥 자꾸 설명을 하고 싶단다. 아마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은 거 같다. 자기는 설명인데 이모부는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를 자꾸 해대면 뭔가를 해내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모부가 궁금해서 물어볼 때만 대답하고 미스터리 한 채로 살라고 했다. 이모부 탓하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고 그냥 이모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즐겁게 살고 하기 싫은 일을 시켜도 싸우지 말고 그냥 할 수 있는지 없는지만 말랑하게 얘기하고, 하기 싫어도 하라고 하면 되도록이면 해주라고 했다. 그러면 몇 번쯤 지나면 미안한 생각이 들 텐데 이모가 싸우고 잔소리하면서 해주면 미안한 마음조차 안 들기 때문에 꼭 말랑한 마음으로 하기 힘들다고 얘기하라고 했다. 이 때도 되도록이면 이유는 장황하게 설명하지 말고 그냥 힘들어서 하고 싶지 않다고 간단하게. 내가 보기에 이모는 너무나 남편한테 서운한 게 많아서 매일 곱씹으면서 억울해하는데 그런 마음이면 이모부 쪽에서는 내가 더 잘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보다는 또 시작이네. 피하자.라는 마음이 먼저 들 것 같다. 부부 사이는 법정에서 처럼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려내는 게 목적이 아니다. 누구의 잘못이든 깨우치고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게 목적인 거다. 그 물꼬를 누가 틀 것인가? 내가 해야 한다. 상대방이 해주길 기다리면 끝내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긴 프로젝트를 맡았다... 생각하고 물꼬를 트고 물줄기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나 혼자서라도 비밀스럽게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해 나가면 결국 남편도 물줄기를 따라온다.
어떤 남편이 상담사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자기 아내가 순종적이고 자기 말에 다 따라줘서 부부 사이에 트러블이 전혀 없는데 너무 불행하다고 했단다. 왜 그렇냐고 물으니, 자신의 아내가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단다. 나는 이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남편은 자기를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가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랄 것이다. 행복한 아내를 둔 남편은 자신감이 충만할 것이다. 세상에 나가서 당당하게 맞설 힘이 있을 것이다. 또한 모든 아내는 내 남편이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 당당하게 제 역할을 해 나가길 바랄 것이다. 잠깐 얽혀 있는 매듭이 있다면 쑹덩 잘라내 버리고 숲을 보자. 사사건건 따지면 내가 백번 천 번 옳고 맞지만 내가 아무리 옳아도 관계가 좋지 않으면 그 옳음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매듭이 심하게 얽혔더라도 잘라내고 다시 잘 엮어내면 된다. 처음에 사랑했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