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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Feb 23. 2020

이사 ​

새로운 시작

십 년 넘게 살던 곳을 떠나왔다. 애들이 초중고등학교를 다 마친 동네다. 이제 애들 학교 다니던 시절 얘기를 할 때마다 생각나는 곳이 되겠지. 그곳에서 나의 인간관계는 모두  애들로 인해  생긴 것이었다. 학교에서 같은 반이라서, 학원에서 같은 반이라서 , 혹은 같은 스포츠팀이라서 엄마들은 서로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다. 만날 때는 그렇게 만나서 애들이 다른 반이 되면 멀어지기도 하지만 계속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애들이 같은 동네 같은 초 중 고를 다니고 있으니 엄마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친목도 다지면서 지내왔다. 정보라는 것이 좋은 과외 모임에 끼우기나 학교 성적에 들어가는 수행평가 준비시키기 같은 것도 있지만 집에 와서 얘기하지 않는 우리 아이의 사생활에 관한 것도 있었다. 중학교 때 우리 아들이 여자 친구가 생긴 사실도 엄마들 모임에 가보니 나만 모르고 있었다. 또 우리 딸이 친하다면서 매일 붙어 다니던 친구한테 사실은 괴롭힘 당하는 것도 알게 됐었다. 딸이 초등 2학년 때였는데 애가 어려서 그러는지 지가 괴롭힘 당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니 모임이 있다고 하기만 하면 90% 참석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애들이 뿔뿔이 각자 대학에 가면서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제 더 이상 공유할  정보가 없어졌고 공통의 관심사도 없어졌다. 애들 키우는 임무가 완수되었으니 엄마들은 나름대로의 인생사를 다시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고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이사 온 곳은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니 자연스럽게 멀어질 사람들은 멀어졌고 자주 보는 사람들은 간출해졌다. 이 정도 거리는 굳이 안 만날 사람은 핑계 대고 안 만날 거리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오고 가며 만날 수 있는 만큼의 거리인 거다.


이사를 하면서 아파트 평수가 많이 줄었다. 그만큼 살림살이도 미니멀해졌다. 애들이 둘 다 대학을 가면서 대부분의 책들은 버려졌고 덩달아 네댓 개의 책꽂이도 버려졌다. 버리는 김에 남편 책도 나의 소중한 오래된 소설책들도 모두 버려졌다. 그동안 애들 키우면서 서점에서 보낼 시간도 없었고 시내에 나갈 일도 없어서 서점 문 앞에 꽂혀 있는 베스트셀러 책들은 모르는 채로 살아온 지 오래됐다. 그 대신 애들 공부하러 가는 도서관에서 책을 끊임없이 빌려다 읽었고 그중에 두고 보고 싶은 책은 읽고 나서 인터넷으로 구입해 놓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네 식구 책을 모두 모아도 책장 두 개가 헐렁하게 채워졌다. 책장 두 개 가지고 이사 왔다.


우리가 오래 살던 집은 1993년에 입주한 아파트라서 구조가 구식이었다. 거실은 특별히 크지 않아도 방 5개가 모두 큰 편이었다. 그래서 집에 식구들이 있어도 구석에 처박힐 수 있었다. 아들방은 거실 끝 화장실을 꺾어져 들어가야 나왔고 내가 자는 방은 안방을 거쳐 드레스룸을 지나야 있는 방이었다. 그 방은 환한 대낮에도 암막커튼 치고 촛불 켜면 한밤중 같은 분위기여서 언제든지 곤히 잘 수도 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한 권 다 읽고 나와도 아무 상관이 없는 방이었다. 이사를 오니 방 3개 가전부 해를 향해 큰 창을 벌리고 있었다. 대체 해를 피할 수가 없어서 너무나 피곤했다. 오죽하면 어느 날은 드레스룸 바닥에 매트를 깔고 낮잠을 잤다. 하루 종일 해가 넘치게 들이치는 집은 정말 피곤했다. 지금은 방방마다 암막커튼을 장착했다. 나는 이 곳으로 이사를 와서 참 좋다. 새 아파트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곳이라는 점이 좋다. 무려 국립도서관이 있는 이 곳은 나에게 꿈의 도시다. 펼친 책 모양의 도서관은 여태 다녀본 어떤 도서관보다 세련되고 편하다. 그래서 몇 달 전에는 도서관 앞에 있는 오피스텔을 하나 샀다. 분양한 지 5년이 지났지만 현재 시세가 분양가보다도 저렴하다. 나는 내 기준에서 그렇게 맘에 드는 오피스텔을 여태 보지를 못했고 그 가격이라는 게 믿기지도 않았다.(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남들이 뭐라던 나는 좋다고 냉큼 사버렸다. 지금은 월세를 받고 있지만 나중에는 내가 살고 싶다. 시골에 상추 키우는 집이 있고  그러다가 며칠쯤은 여행 오듯이 여기 와서 책도 빌려 읽고 밥도 사 먹는 도시의 공간으로 쓰면 참 좋을 것 같아서다. 남편은 코딱지만 한 방에서 도저히 둘이 살 수가 없다고 하고 시골에서 살기도 싫다고 하니 혼자만의 꿈으로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남편이 은퇴하기 전까지 계속 꼬셔볼 생각이다.  여행 가면 하루 이틀 코딱지만 한 호텔방에서 잘도 지내다가 오지 않냐고.. 우리가 오피스텔로 여행 오는 동안 시골집에는 아이들이 지식 구들과 함께 와서 주말을 보내고 가면 좋지 않겠냐... 고


이 글을 읽다가 혹시 뭐가 이렇게 풍족해?라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울과 지방은 부동산 가격이 정말 다르다. 반의반의 반값도 안된다. 얼마 전 지방 사람과 서울 사람이 서로  집에 차가 몇 대냐? 는질문에 놀란다는 기사를 읽었다. 맞다. 여기 지방 사는 사람들은 식구수대로 차를 가지고 산다. 아파트에서는 기본 2대는 무료 주차가 되고 3대부터 한 달에 1-2만 원 정도 추가 요금을 낸다. 가는 곳마다 주차하기가 어렵지 않고 차종이야 형편껏 마련하면 되니 차를 몇 대를 소유하든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 곳연구소에서 서울출장소(본원이 지방이다)로 전근 가고 싶은 사람 신청을 받았는데 아무도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이 좋은데 당연히 서울로 오고 싶어 하고 지방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 하지만 성향에 따라서 혹은 형편에 따라서 지방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로 가면 당연히 집도 줄이고 차도 줄여야 하기 때문에 그저 여유로운 지방을 선호하기도 하는 거다. 나도 십 년도 더 전에 서울에서 이사를 와보니 여기는  어딜 가도 사람이 없어서 한동안은 나만 모르는 좋은 곳이 있나 보다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지난 주말에 뭐 했는지를 묻고 다녔다. 아무리 물어도 뾰족한 대답 없었다. 그러다 한 번씩 서울가면 밥 한번 먹을래도 식당마다 전쟁터나 마찬가지고 길은 복잡해서 우리가 지방에 살아서 참 좋다.. 고 만족했었다. 하여튼 지방 집값은 서울과는 많이 다르다. 내가 아무리 넓은 집에 살고 오피스텔까지 샀다고 해도 다 합쳐도 서울 보통 집 전셋값도 안된다.


어쩌다 결론이 부동산 얘기가 돼버려서 당황스럽지만 나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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