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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Apr 20. 2020

내 친구

가벼운 삶  vs 간단한 삶 

친구가 그랬다.

자기는 가볍게 살고 싶다고.. 

그래서 나도 나도.... 어찌 저찌한 가벼운 삶을 살고 싶어..라고 했더니

아.. 넌 간단한 삶을 살고 싶은 거야..라고 했다.

그랬다.

나는 친구가 말해주기 전까지 가벼운 삶과 간단한 삶을 구분하지 못했다.


내 친구는 속이 복잡한 스타일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뭔가 말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대학 다닐 때는 어느 더운 여름날 창백한 얼굴에 긴 팔 옷을 입고 나와서는 손목을 그었었다면서 붕대 붙인 손목을 보여줬다. 왜냐고 물어도 끝내 대답하지 않아서 나는 이유는 몰랐지만 걔가 그렇게 힘들다는 게 속상해서 엉엉 울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자신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친구는 그 이유를 말해줬는데 아버지랑 관련된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부정당하고 엄마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가 보다. 그래서일까? 아직 어린 나이였던 고등학교 때부터 그 친구가 하던 말이  '나는 가는 사람 안 잡고 오는 사람 안 막아'였다.  내가 친한 친구랑 짝꿍이 못되면 쉬는 시간마다 그쪽으로 달려가고 아쉬워하는 편이라면 그 친구는 어느 누구랑 짝꿍이 되어도 금세 그 친구한테 정을 주고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아서 서운했고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의아했다. 그래서 나도 오랫동안 그 친구한테 좋아한다거나 너야말로 내 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하지 못했다. 친구가 아버지 얘기를 털어놓을 때쯤부터 나도 맘 편히 내 애정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사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고 애들이 아직 어릴 때에는 자주 보지도 연락하지도 못하고 지낼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우울증으로 죽다 살았다고 했다. 왜 그랬냐고 하니.. 잘은 모르지만 치질 수술이 시초였던 거 같다고 했다. 알고 보니 친구는 나랑 비슷한 시기에 같은 수술을 했더라. 치질 수술이라는 게 경우에 따라서 좀 다를 수는 있지만, 대체로 회복하는데 굉장히 고통스러운 2-3주, 신경 쓰이는 2-3주 정도가 필요하다. 친구는 갑자기 발병을 하고 수술을 하게 된 경우라고 하는데 수술을 하고 나니 갑자기 외출도 불가능하고 먹은 대로 화장실을 가야 하니 먹는 것도 조심스러워져서 혼자서 앓느라고 힘들었다고 했다. 내 경우에는 치질 수술을 하고 나서 남편에게 방귀를 텄다. 그 전에는 남편이 아무리 붕붕 뀌어대도 나는 잠깐 나가서 뀌던지 참던지 했었는데 수술한 후로는 가스를 참고 있으면 더 통증이 심해서 방귀 뀌어야 한다고 남편이 티브이 보고 있는 앞을 뱅뱅 돌다 성공하면 함께 기뻐했다. 남편은 퇴근하면 오늘은 방귀는 뀌었냐 화장실은 다녀왔냐 안부를 물었고 한 달 동안은 거의 화장실과 똥꼬 얘기만 하면서 보냈다. 반면, 친구는 자기가 아픈 걸로 식구들이 불편해지는 게 싫어서 하나도 안 아프다 견딜만하다 먹었다... 는 대답만 하면서 지냈단다. 사실 모든 통증이 그러하지만 특히 치질의 고통은 안 겪어본 사람은 감히 상상이 안 되는 통증이라서 다른 식구 중에 경험이 없다면 당연히 괜찮다는 친구 말만 믿고 괜찮은 줄로만 알았을 거다. 친구가 밥을 못 먹어 빼빼 마르니 남편은 한의원에서 보약을 지어 먹였다고 한다. 다행히 친구 아버지가 알아보시고 아버지 자신이 치료받았던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 치료받게 한 후에야 밥을 다시 먹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되돌아보니 그 친구는 자주 가볍게 살고 싶다고 했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이번에 친구가 간단한 삶과 가벼운 삶을 비교해 주는 걸 듣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 친구는 자기가 언제든 사라져도 괜찮은 삶을 바라는 것 같다. 자식에게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면서 전혀 휘 두리지 않았고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결정은 본인들에게 맡겼다. 자식에게는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제철 음식 해 먹이는 것에 공을 들였다.  동시에 자기도 자식들에게 피해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들 때문에 내가 뭐를 못했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퇴근 후 매일같이 골프를 치고 늦게 들어와도, 무슨 차로 바꾸고 싶다고 해도, 퇴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할 때도 친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맘이 아팠는지 속으로 궁금했는지 모르지만 지독하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가족들에게 전혀 티 내지 않았다. 친구에게 너무나 많은 재능이 있다는 걸 알기에 내가 몇 번이나 공부를 더해봐라 글을 써봐라 해도 자기는 알려지는 게 싫다거나 뭐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맨날 혼자서 어려운 책을 쌓아놓고 읽으면서도 사람들 만나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도인 같은 소리만 할 뿐이다. 사람들 앞에서 우스워지고 놀림감이 되는 걸 즐겨하기도 한다. 절대로 누구에게 중요한 사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인생... 아마 그게 그녀가 바라는 가벼운 삶인가 보다.

 

나는 전혀 반대다. 나는 식구들과 한 몸처럼 얽혀 들고, 그들이 아플까 봐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쫄아서 산다. 모든 가능성을 철저히 찾아서 걱정하는 편이라서 식구들이 넌더리를 낼 때도 많다. 그 모든 사소한 걱정거리들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나는 그 걱정의 대상을 줄이고 싶은가 보다. 살림은 간출해서 건사하는 일이 적기를, 식구들은 일을 벌이지 않아 걱정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내가 그들에게 그런 걸 강요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말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나의 불안한 눈빛만으로도 이미 강요받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불안과 상관없이 그들이 맘껏 한껏 재량을 펼치고 살기를 바라지만 내 살림살이만큼은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사이즈이길 바란다. 사람들은 종종 우리 집이 모델하우스 같다고 한다. 건사하기에 적은 갯수. 그거에 집착하는 것 같다. 요즘 미니멀 라이프가 인기다. 많은 사람들이 그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한다.  그들도 나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완벽주의자들. 염려주의자들. 재미없는 스타일이다. 


사사건건 설명하고 이해받으려는 나에 비해 친구는 설명이 없는 편이다. 지금도 말하지 않는 많은 부분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매일 만나서 시간을 보내던 대학 시절에는 친구가 부러 설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게 많았다. 친구는 많은 걸 시도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런 친구를 보면서 참 바보 같다고 했고 친구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고, 하기 싫어져서 그만두는 게 뭐가 나쁘냐고 했다. 댓구할 말이 없을지라도 나는 그 친구가 말발이 세서 그렇지 내가 옳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오히려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못하는 나에게 바보라고 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다. 대신 내가 끈덕지게 뭔가를 놓지 못하는 게 신기하다고 했었다. 나는 투덜대면서도 동아리를 그만 두지도,  맘에 안 드는 친구를 끊어내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서 다른 인생을 배워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나는 버릇처럼 문득문득 친구 걱정을 하고 친구는 오늘도 현자 같은 말을 한다. 너는 간단한 삶을 살고 싶은 거고 네 아들이 예민한 건 몸이 약한 사람들의 특성이라고.  20년 넘게 키운 내 아들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실을 젊을 때부터 몸이 약했던 친구가 알려준다. 몸이 약한 적이 없던 나는 친구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놀지 못한다고 하면 거짓말인 줄 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미스터리 했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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