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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Aug 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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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남편이 직장에서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못 들어서 큰 일  날뻔 했던 얘기를 했다. 그 사람이 자기한테 분명히 말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듣던 순간에 자기는 대체 무슨 생각에 빠져서 못 들었는지 정말 궁금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건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나는 옆자리에 앉아서 운전하는 남편을 보면서 사람이 그럴 때도 있겠지 뭐. 큰일 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고 말하면서 남편 눈썹이 길었다느니 와이셔츠가 구겨졌다느니 하는 소리를 했더니 남편이 왜 그런 거를 신경 쓰느냐? 아무도 내 눈썹이나 와이셔츠 같은 건 관심 두지 않는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친구와 나눈 얘기를 했다. 요사이 나는 좀 걱정되는 병에 걸렸는데 친구한테 푸념을 했더니 친구는 내가 너무 애쓰면서 살아서 그런 병도 걸리는 거라면서 자기는 요새 이미 버려버렸다는 생각으로 산다고 했다. 이미 다 틀렸으니 더 이상 애쓰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 우습게 보거나 말거나 나는 더 이상 잘 보이려고 애쓰지 말자. 뭐 그런 심정으로 지하철에 타도 빈자리를 향해 돌진하는 아줌마가 됐다면서 나한테도 다 포기해버리라는 말을 했었고 나는 바로 그 말을 남편에게 옮기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아까 당신이 아무도 당신 와이셔츠 신경 안 쓴다는 게 그런 거지? 자기 외모는 이제 버려버렸으니 애쓰지 않겠다는 말 맞지? 하면서 낄낄댔더니 남편은 미안하지만 그런 거 아니라고 했다. 자기가 그렇게 말한 건 그게 팩트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방금 전에 우리가 같이 만난 사람이 무슨 와이셔츠 입었었는지 기억하냐고 물었다. 내가 무슨 와이셔츠를 입었고 무슨 안경을 썼고 게다가 한쪽 눈이 빨개서 결막염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남편은 깜짝 놀라면서 자기는 그중 단 한 가지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아무도 남의 와이셔츠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남편 혼자만의 팩트인 걸로 판명이 났다. 내가 그 방면에는 보통 이하의 사람인데도 그 정도이면 보통 이상의 사람들은 자기 와이셔츠의 티끌까지도 찾아서 혀를 찰 거라고 말해줬더니 상상도 못 한 일이라고 깜짝 놀랐다.


남편에게 다른 사람이 하는 말도 안 듣고 그 사람이 뭘 입었는지도 안 보고 당신은 뭘 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궁금한 것만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고 했다. 남편은 나한테 왜 그런 거를 보고 기억하냐고 물었다. 글쎄 눈을 뜨고 있었으니 보였던 거고 딱히 외우지는 않았는데?!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자기중심형이라서 모든 질문과 기억이 자기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나는 상대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형이라서 나의 질문과 기억은  그 사람의 어떤 말이나 모습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남편이 나보다 훨씬 에너지 절약형 인간인 건 분명하지만 인간관계란 꼭 에너지 효율로만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내 mbti유형은 infj다. 타인에게 공감을 아주 잘하는 유형이다. 반면에 자기 자신의 욕구에는 굉장히 둔감한 편이고 그건 육체적 물리적 불편감도 잘 못 느낀다는 말이란다. 나는 무슨 일을 하다가 배가 고파서 중간에 밥을 먹고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빨리 끝내려고 일부러 그런다기보다는 배고픈걸 잘 못 느끼는 편인 거 같다. 어디가 아파도 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한참이 지나야 알고 몸이나 상황이나 사람이 불편한 것도 바로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편이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좀처럼 포기를 안 하고 그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편이고 그 사람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면 더군다나 포기하지 못하고 애쓰는 편이다. 친구의 조언대로 이미 버렸다고 생각하고 나는 꼴찌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누구한테 자랑질할게 1도 없다고 애초에 다 포기하고 아무 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실실 웃기나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왜냐면 안 그러면 자꾸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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