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음식과 엮은 도공의 이야기

진묵 김상곤의 작업 이야기를 한풍루가 풀어놓습니다





그렇다,


그는 내년에 있을 큰 일을 위해

올 11월에 본 불을 때야겠다고 맘먹었다.


가마에는 오로지 이도다완만을 넣기로 했고

전시장 한 벽을 천장 끝까지 

이도다완으로 채우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조금 더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어딘가 다른 세상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그의 단단한 등을 두드리면서

야식을 준비하고 

아침까지 작업할 그가 돌아와 먹을 과일을 준비해둔다.


작업실이라 해도

아래층에 있지만 이런 때는 전화 한 통 하기

머뭇거리게 된다.


그저 그가 배고파서 올라왔을 때

따뜻하게 웃으며

속이 편한 국을 끓여 주고

갓 지은 밥을 내놓는 것이

내가 할 몫이다.







사람은 그냥 가만히 내버려 뒀을 때

기량을 가장 잘 발휘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적극적인 케어는 모두 잠재우고

내 자아와 의지는 그와 상관없는 일에만

쏟아붓고 있다.


그래 봐야 '일상'이지만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것이

축복이고 기쁨인 것을 알게 되는 요즘이다.


그리고 작은 변화가 나를 기쁘게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을 좋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베란다와 집을 깔끔하게 정리정돈하고

샘플 사진과 블로그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바로 설거지와 정리, 쓰레기 처리를 한다.





지난여름의 폭염 속에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한나절의 평화도 누리지 못하고


기염을 토해내는 폭염보다 더한 기세로

가마를 지은 그는,


첫 불을 때고 나서야 비로소

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마음에 쌓인 모든 것들이

낚시에 대한 몰입과 몰두로

비워지기를 바라면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고등어와 전갱이

그리고 각종 돔을 가져왔고

내장을 현장에서 제거하고

염장을 적절히 해서 


우리 두 사람이 한 번씩 먹을 수 있게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그래서 덕분에 비린내가 나지 않는

고소한 고등어를 굽게 되었다.






생선에 어울리는 '딜'이라는 

허브를 뿌려서 기름에 구워낸 후


사프란과 달걀노른자 그리고 오일로

마요네즈를 만들어서 

살짝살짝 올려주었다.


그는 기쁘게 잘 먹어주었다.


자신이 잡아온 고기를 맛나게 먹는 아내의 모습을

그는 좋아한다.





9월 말,


이제 11월 말까지 어떤 시간이

내게 주어져 있는지 알고 있다.


지난여름이 그러했듯이

올 가을도 특별하고 고되고 

환희에 가득 찰 것이다.


나쁜 것은 무념이라는 이름 하에

묻어 두고 

정신과 육체가 조화롭고 건강한 상태가 되도록

노력할 듯하다.






그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작은 임무 일지 모르나

이미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망이 쳐져 있고


그는 그 안에서 마음껏 몰두하고 있다.

그를 방해할 것은 없을 듯 하다.


700여 점으로 계획했던 다완은

오로지 이도다완으로 작업하기로 하고 

그리고 다른 작품을 넣지 않기로 하였으니

두 배로 들어가게 될 듯 하다.


생활식기를 만들면서

다완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 

쉽지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늘 그러했듯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해낼 것이다.






음식 담는 한풍루


그릇 만드는 진묵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봄' 피자 만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