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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엔진 Jan 06. 2020

아빠육아휴직 110일차

나만의 저울을 가져야만 상대적 육아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

 많은 나라의 법원에는 그리스 신화의 디케, 로마 신화의 유스티티아를 모델로 하는 정의의 여신상을 인공물로 설치하여 법의 공정함과 엄정함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을 보면 무언가 차이가 나지 않는가? 왼쪽이 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고 오른쪽이 일반적인 서양의 정의의 여신상의 모습이다.


 둘 다 저울은 들고 있지만 한쪽은 눈을 뜨고 법전을 들고 있으며 다른 한쪽은 눈을 가리고 칼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법의 중립성과 공정함은 동일하게 추구하나 우리나라는 법을 기반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법의 안정성을, 서양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강력한 의지로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가치의 차이라고 해석한다. 

작은 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인공물이 가지는 상징적 가치는 매우 크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110일이 지나간다. 아빠 육아휴직에서 4개월 차를 지나가는 이 지점이 갖는 매우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육아휴직 급여가 줄어든다는 것. 자본주의를 살아감에 있어 "경제적 능력" 은 생활 자체를 바꿔버릴 만큼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법시행령 제95조의2)에 의하여 첫째를 주로 어머니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해당 아이에 대하여 아빠가 휴직을 이어서 하게 되는 경우 첫 3개월 간 최대 상한 250만원에서 통상임금 기준 100% 까지 수령이 가능하다. 내가 휴직 이전에 착각하고 있던 부분은 우리 회사의 급여체계가 복잡해서 내 통상임금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 기본급 + 수당 등을 계산했을 경우 당연히 250만원을 수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첫 번째 육아휴직급여 수령일에 담당자와 통화한 결과 각종 수당 등은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아서 인정받는 금액이 218만원으로 확정되었다. 

 이렇게 확정된 통상임금 급여는 3개월 동안은 무탈하게 잘 지급되나 4개월 차부터는 육아휴직 급여액에 대하여 법 시행령 제95조의 2에 의거 통상임금 50%로 줄어들고, 법 제70조 제3항, 법 시행령 제95조에 의거하여 육아휴직 급여의 25% 에 해당하는 금액은 직장 복귀 후 6개월 이상 계속 근무한 경우에 일시불로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얘기는 쉽게 얘기하면 4개월 차부터는 최초 인정받은 육아휴직 통상임금 100% 를 50% 로 나누고, 해당 금액의 75% 가 된다는 얘기. 내가 받는 금액을 예로 들자면, 최초 3개월은 인정받은 100% 219만원을 지급받고, 4개월 차부터는 219만원 X 50% X 75% = 약 82만원을 수령하게 된다는 것이다. 

(통상임금 250만원 전체를 인정받았다고 해도 통상임금 50%의 상한액이 120만원이고, 이 금액의 75% 인 90만원을 4개월 차부터 받게 된다) 


 이 계산 미스로 인하여 전체 예산 계획에서 약 192만의 차질이 발생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보고 통상임금 50% 다 나온다고 빡빡하게 설계하면 아주 사소하게나마 예산 계획에 구멍이 생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참고해야 하는 사항은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 등 회사가 50% 부담하던 것을 근로자가 급여가 없어 부담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납금 명목으로 근로자 몫 50% 까지 납부" 하게 되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대납이고 복직 후 근로자는 이를 갚아야 한다.  


 즉 육아휴직급여를 가지고 생활 계획을 수립할 때는 아래 사항을 판단해야 한다. 

2020년 기준, 엄마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빠가 해당 아이에 대하여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 

1~3개월차 실수령액 : 최초 인정받은 통상임금 100% (상한액 250만원)
4~12개월차 실수령액 : 최초 인정받은 통상임금의 50% 의 75% (상한 120만원이지만 실제로 90만원)
복직 후 1개월차 : 1~12개월까지 납부된 회사 대납금 차감 이후 지급 - (-)가 될 수도 있음
복직 후 6개월차 : 9개월치 25% 금액이 일시금으로 지급 (상한액 최대 시 360만원)

 육아휴직급여 수령의 변곡점에서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는 것은 육아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육아하기 좋은 곳을 찾아서 다니는 것도, 육아 아이템을 구입하는 것도, 그런 것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이 살기 위해 들어가는 기본 비용은 당연하게 지출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차츰 비어 가는 통장을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은 아이들 앞에서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기분이라고 하면 대충 맞지 않을까?

슈퍼맨이 돌아왔다만 보면 AI 스피커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답지만, 11번가를 같이 보면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

 

 일을 할 때는 당장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을 같이 있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보상 심리로라도 적정한 선이라면 지갑을 열어서 사주던 것조차도 이제는 내일을 걱정하며 조심스러워진다. 아이들을 하원 하는 동선에 은근히 두려운(?) 경우가 야구르트 아주머니에게 비슷한 연배의 아이들이 조부모님이나 부모의 손을 잡고 무언가를 사 먹고 있을 때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다가도 그 장면을 목격하면 "아빠, 나도 사줘" 가 나온다. 


 보통 아이들이 먹는 요구르트가 1개에 700원~1000원 정도 하는데 이걸 사주는 것에 부담감이 밀려오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 복직 이후에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먼 나라 얘기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존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갑자기 요구르트가 아니라 젤리랑 얼려먹는 요구르트까지 겨울왕국2 캐릭터 콜라보레이션으로 나와있으면... 엘사가 미워진다...

다른 사람은 초코크림도너츠 사가는데, 왜 안 사주냐고 생떼를 쓰는 아들... 너 이빨 썩어서 그런 거잖아...

 이런 쪼잔한(?) 걱정을 하다 보면 내 마음의 모서리들이 아름답게 풍화되는 것이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되는 충격 때문에 잘 다듬어져 가던 것까지 뾰족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불현듯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뾰족 함들은 오히려 남편 몫까지 열심히 일하는 와이프나 많은 시간 아빠와 붙어 있어야 하는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만의 명확한 육아의 저울을 가져야 한다. 그 저울의 목적은 오직 하나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와의 추억을 만드는 시간 속에서 아이와 나와의 인생에서의 현실적인 균형감. 그것이 어떤 재질로 되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그 저울은 자신의 목적을 다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누군가의 저울은 그 사람의 노력이던 그 사람의 조상의 노력이던 어떤 요인에 의해서 조금 더 화려하고 멋진 황금이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져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저울은 내가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허술해 보이는 말도 안 되는 재질로 만들어진 저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 목적 자체에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육아휴직 급여가 줄어들 것이 뻔하고 남은 9개월도 모아놓은 돈을 조금씩 소진하며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 아이들과 적절한 타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멀리 놀러가기보다는 가까운 곳을 가거나 횟수를 조금씩은 줄여본다. 화려한 장난감을 사주기보다는 간단한 재료들을 활용하거나 집에 있는 장난감들을 조합해서 노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있다. 그리고 또 참 많은 발견을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함께하고 공감하며 놀아주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길뿐이라는 것과 함께 놀이에 대해서만은 부모보다 아이들이 훨씬 고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일 저녁에 하기로 한 재활용 박스 조립 놀이 준비물인 박스 테이프를 가지고서 양팔에 끼워보기, 저울이라면서 2개씩 끼워보기, 색깔별로 끼워보기, 테이프 여러 모양으로 쌓아보기를 시도한다. 씻고 나와서 다시 엘사 드레스를 착장 하신 사랑스러운 둘째는 겨울왕국2 퍼즐 맞추기를 또 꺼내서 하고 있다. 엄마가 둘째 취저템으로 퍼즐을 사주고 나서 어림 잡아 1세트 4개 기준 50번은 했다... 근데 또 한다... 안 지루한가....?

 정형화된 틀이 없으면 놀 수도 없는 이제는 놀이에 너무 형식화된 어른들이 반성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힙하게 놀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인싸가 되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하고 있는 SNS 나르시시즘 시대에 아이들은 언제나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들이다. 어쩌면 아이는 부모에게 스스로 잃어버린 가치들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며 상호 간에 다른 방식으로 양육을 주고받는 관계인 것은 아닐까.  

내일 하기로 한 재활용 박스 조립 놀이가 기대된다며 박스 테이프 가지고 놀아주는 착한 첫째

 정의의 여신이 눈을 뜨고 있을 수도 있고, 가리고 있을 수도 있다. 칼을 들고 있을 수도 있고 법전을 들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저울을 들고 있다. 그 저울의 모양이 다르고 재질이 다를지언정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공정성이라는 가치는 감히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이제 자기만의 육아의 저울을 만들어보자. 그 목적은 오직 하나다. 부모와 아이의 인생의 균형. 육아를 함에 있어 타인과의 비교나 굳이 내가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나 스스로를 비하해야 하는 감정 따위는 끼어들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과의 행복한 마지막 시간에 대한 배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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