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달리라고 할 때 걸으라고 할 수 있는 용기
박노해 시인의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지난 37년의 인생을 돌아보면 과연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는가에 대해서 반문하게 된다. 초등학교(나는 국민학교 세대...)에서 학급 반장 선거를 하고 시험이라는 평가로 순위가 정해지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꽃" 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구조적으로 남보다 더 빨리 뛰어야만 위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겪게 된다. 내 인생의 대학입시가 그랬고, 학사장교 임관이 그랬고, 회사 입사 역시 그런 길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다. 인사고과, 승진...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 걸까?
사회 속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탄탄하게 물려받을 무언가가 있는 입장이 아니라면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결코 "자기만의 리듬" 으로 걸어갈 수만은 없다. 그리고 나 혼자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책임지는 입장이 되었을 때, 아직은 혼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없는 존재들과 함께 할 때 이런 글귀는 때로는 돌아갈 수 없는 노스탤지어와 같이 결코 내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허상인 것 같아 공허해질 때가 있다.
지금 2020년 오늘을 살아가는 누군가들도 모두 박노해 시인의 "꽃" 과 같은 이상향의 삶을 꿈꾸며 "오직 나의 경쟁자는 어제의 나일 뿐!" 이라는 다음 날 다시 생각하면 이불킥 할 것 같은 말을 하지만 결국 이런 굴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걷고 싶지만 모두가 뛰라고 말하는 세상. 뛰는 것이 평범하기에 걷는 것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세상.
손석희 앵커의 마지막 진행인 JTBC 신년 토론회가 끝날 때까지 잠들지 않고 끝까지 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51개월 차 아들은 결국 채널을 돌리다가 얻어걸린 MBC 특별기획 <펭이와 솜이>까지 끝까지 같이 시청했다.
하필이면 채널이 돌아간 시점이 거의 마지막 부분이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엄마 펭귄을 찾아 나선 아빠 펭귄과 홀로 남겨진 솜이가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장면이었다. 천적을 피해서 남극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는 황제펭귄의 특이한 육아 생태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새끼 혼자 남겨져 펭귄 생태계에서 가혹한 대접을 받는 것은 작은 충격이었다.
너무 추워서 눈에 보이는 어른 펭귄의 뱃속으로 끼여 들어가 보려고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기 새끼 돌보기도 바빠서 발로 차고, 부리로 쪼으는 홀대... 심지어 같은 또래로 보이는 새끼마저도 펭이를 발로 찬다. 이 다큐멘터리의 전후 맥락을 전혀 몰랐던 나로서는 펭귄들의 세상도 인간들이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를 바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나중에 알게 된 솜이의 절친 펭이가 자신을 돌봐주는 부모를 설득하여 그 부모는 솜이를 품어주고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솜이는 위기를 넘긴다. 돌아온 아빠에게서 들은 소식은 엄마가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이었을지라도...
그 장면에서 아무리 모두가 뛰라고 지금 뛰지 않으면 죽는다고 해도, 내 옆에 누군가가 넘어져있다면 때로는 잠시 멈추고 손잡아줄 수 있는 용기. 내 옆에 누군가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걸어갈 수 있는 용기. 나에게는 펭이가 솜이에게 손 내밀어줌이 그렇게 보였다.
나의 아이들이 나에게 주말에만 들어오는 아빠라고 말하며... 아빠가 나갈 때는 뛰어나와서 대성통곡하고, 창가에 매달려 계속 아빠를 부르고 쳐다보고 있는 행동을 통해... 혹시라도 깨어있을 때 집에 들어오면 빛의 속도로 뛰어와 반기는 모습을 통해... 아빠가 필요하다고 계속 손 내밀던 순간.
그것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깨닫고 타인의 기준에서의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오직 나의 리듬으로 내가 뿌리내린 곳에서 향기를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 선택은 지금 좌충우돌의 시간으로 느린 듯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고 나 역시 언제쯤 나 스스로에게 "진실한 자기다움" 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선택하고 지나온 100일의 시간이 내가 뿌리내린 자리에서 내가 타고난 빛깔과 향기로... 나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아이들이 나에게 모두가 뛰어가라고 하는 세상에 의문을 품고 물어볼 때 박노해 시인의 시를 함께 읽으며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하루하루 켭켭이, 그리고 더욱 탄탄하게 쌓여가고 있다.
"아빠가 너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경제적으로 절대 많지 않기 때문에, 너 역시 한참 동안은 달려가야 할지도 몰라. 아빠도 어릴 때부터 벗어나고 싶던 가정환경과 주변의 많은 것들로부터의 자유라는 지점에 도착하기 위해 달린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었지만 너희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힘들면 힘들다고, 싫으면 싫다고, 그건 내 속도가 아니라고, 나에게는 더 소중한 것이 있고 그것에 대해 공감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오히려 아빠의 인생의 올바른 속도를 찾게 해 주었고 그게 더 나은 삶을 향한 더 빠른 속도라는 것을 이제는 알아.
너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해주는 아빠가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모두가 뛰라고 하는 세상에서 너희들에게 걸어도 된다고 항상 응원하고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줄게"
<펭이와 솜이> 마지막 장면에서 아기 펭귄들이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후 털갈이를 마치고 독립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장면에서 잠들지 않고 있던 첫째와 오늘의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나 : 지섭아, 너도 나중에 크면 아빠랑 엄마를 떠나서 혼자서 살아야 해
(잠시 생각하더니...)
지섭 : 어른되면 혼자 살아야 하는 거 알거든요!! (하면서 와서 안긴다)
나 : 그래. 우리 지섭이가 어른되서 아빠랑 엄마를 떠나갈 때까지 매일 재밌고 행복하게 지내보자!
내일 눈썰매장부터!! 그러니... 빨리 들어가서 자라... 안자면 안간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가족 나들이도 계획되어 있고, 펭이와 솜이라는 작품을 처음부터 같이 시청하는 의미 있는 인생의 또 한 지점이 될 것 같다.
혹시라도 용기를 내고 있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과감히 지금 도전해보시라고 약 100여 일의 시간을 지난 38세의 한 아빠가 감히 응원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