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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Feb 13. 2024

우리가 고작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만큼의 관계인가?


A라는 친구 ㅁ

나와는 12년 전, 첫 발령이 난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는 교직원의 관계로 시작되었다. A와는 청렴과는 거리도 멀거니와 기분에 따라 쌍욕과 친절이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는 정신 나간 관리자 밑에서 서러움을 견디서 1년 반을 함께 버틴 동갑내기이다.

 어느 순간부터 사회에서 친구를 만드는 게 힘들기도 했고, 생각보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게 쉽지 않은 내 성향을 보더라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직장생활에서의 어려움 등을 그 어떤 필터링 없이 마구 쏟아부어도 항상 내편을 들어주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해 빡빡해진 사회적 거리 두기가 2~3년간 지속되었고, 그 기간 중 결혼을 하게 되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전보다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하게 되었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A를 만나면서 늘상 고민해 오던 인간관계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A는 항상 남들에게 친절하다.

친절하다 못해 겸손한 말투와 배려를 지나치게 신경 쓴다. 누군가의 결재공문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실수를 찾아 친절히 알려주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오지랖일지라도 세심하게 잘 가르쳐준다. 본인도 남들에게 엄청 친절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극히 I일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E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전근무지의 사람들과 연락도 자주 하고 회식도 참석하며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걸 보면 분명 A에게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부서나 지역이 바뀌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새로운 사람들과 일할 기회가 빈번한데 그때마다 A와 문제가 생기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다. A의 친절함과 조금은 소심해 보이는 말투와 배려 섞인 행동을 이용하거나 A를 하대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개성 있는 독특한 성향을 어느 조직 사회에서는 조금 거부감 있게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normal'과 'average'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선 캐릭터이긴 하다. 하지만 결코 그런 친절함과 낯섦이 누군가에겐 웃음거리가 되거나 이용가치로 판단될 수 없다는 면에서 난 항상 A의 편이었다. 자신을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후배 X의 험담에는 소리를 높여가며 함께 쌍욕을 해주기도 했다.  

A는 절약과 인색을 오고 간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A를 만날 약속을 하고 A의 근무지 근처로 약속장소를 잡았다. 이른 아침 출근을 하며 내게 온 문자,

'이따 저녁에 만날 때 지하철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커피나 한잔 하자.'

본인을 만나러 왕복 100km를 운전하고 가는 나에게 본인이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니 가장 가까운 커피숍에서 저녁식사도 아닌 커피 한잔을 마시자고 하는 A.

평소에도 만나면 항상 더치페이를, 그리고 조금 비싼 가격대보다는 김밥천국에 가서 분식류를 먹자고 하는 A의 소비습관을 알기에 웬만하면 나도 거기에 맞춰주는 편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공무원 임용시험, 검정고시, 선거개표 알바를 하며 용돈을 벌고, 남편의 용돈을 10년째 한 달 15만원으로 유지하는 걸 보더라도 웬만큼 돈을 아끼는 A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 역시 그런 생활력은 존경스럽기도 해서 존중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은 좀 무례하다 싶었다. 그 문자를 보자 화가 나기도 했다. 나와의 관계가 고작 커피 한 잔을 마시러 구걸하며 만나야 하는 그쯤의 가벼움인가? 이제 4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 나이에 그래도 친구를 만나 여유 있게 밥 한번 먹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 물론 오래 봐온 A를 알기에 나에게 그렇게 계산적이지 않을 거라 믿는다. A의 진심을 돈의 가치로 따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올 설날에도 2만원짜리 쿠키 세트를 시댁 선물로 사간다는 말에 속으로 '뜨악~'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A의 인색함이 조금 아쉬울 때가 있다. 물론 그날의 저녁은 농담 섞인 내 핀잔으로 커피 한잔이 아닌 식사와 커피로 마무리했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막연한 약속이 서로에게 피곤해진 어쩔 없겠지만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육아와 직장생활에 바쁜 시기쯤 나와 일상을 끊임없이 공유하고, 업무적인 일로 직접적 대화를 자주 주고받지 않는 관계일수록 점점 관계의 바운더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를 너무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느 순간 입버릇처럼 나오는 '언제 한 번 밥이라도 먹자.'라는 영혼 없는 소리가 상대에게 무례할까 봐 오히려 조심하는 편이고, 한 번 입에서 내뱉은 약속은 가급적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만날까 말까 고민이 되는 어정쩡한 관계는 처음부터 약속을 정하지 않으려고 정확히 맺고 끊는 편이다. 사회성이 뛰어나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잘하는 수더분한 성격이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태생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로서는 정말 친밀한 관계에 있는 친구나 지인들만 소수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서 훨씬 더 편안함을 느끼기에 사회생활 20년 차 정도는 '편안함'을 주는 관계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단, 그 전제는 상대방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 때 가능한 것이겠지만.

사실 친구 A의 이야기를 시작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상대도 나와 그런 비슷한 '편안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 비록 직장에서 만났지만 개인가정사를 서로 공유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1시간 넘게 전화통화를 수다를 떠는 사이임에도 최대한 짧고 빠르게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장소와 조건을 아무 거리낌 없이 부탁하는 게 과연 진짜 가까운 친구사이라 볼 수 있는지. 매번 그 친구의 부탁에 호응하는 게 괜히 손해 보는 일이라 느껴지면 그 감정은 또 무엇인지..


 나 역시 남들 눈에는 모가 난 그저 그런 인간일 것이다. 남의 눈에 비친 내가 어떤 인간인지 객관화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겁나 재수 없고, 무뚝뚝하고, 차갑고 예의 없는 인간이라고 평가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겠거니.

세상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간 부류가 있으며 다른 환경과 조건 속에서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 다가도

적을 지지 않고 스무스하게 그들과 관계 맺는 법을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실 가족이든, 친구 사이든, 사회생활이든 난 이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접촉과 정서적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필요한 약간 냉냉한 거ㆍ니 두기를 쇼펜하우어는 '정중함과 예의'라고 말한다.

'친밀함'과 '적당한 거리감' 사이의 균형은 마음만큼 여전히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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