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Ep.02_매주 토요일, 우리 가족은 글을 쓴다

by 정병진

"아빠 우리 다음 주제는 풍선으로 할까?"


생각 외로 딸아이가 글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주제는 자기가 선정하고 싶다며 여러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죠. "Warum nicht?(왜 안 되겠어)" 당연히 그러라고 했습니다. 딸은 몇 주치 주제를 미리 쭉 정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글쓰기 놀이 두 번째 주제는 그렇게 '풍선'으로 결정됐습니다. "왜 풍선이야?" "음? 풍선은 재밌으니까!"


먼저 간식을 먹으며 주제에 대해 궁리합니다. 풍선을 설명할까? 풍선 갖고 재밌게 놀았던 기억을 쓸까? 우리는 우선 5분 남짓한 시간에 이야기를 구상합니다. 그 사이 아들 설은 그림을 그립니다.




글을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귓동냥으로 몇몇 단어를 쓸 줄 아는 설. '고'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뉘른베르크에 살 때 아이들이 유독 풍선을 자주 갖고 놀았던 것 같아요. 팬데믹이 우리의 활동 범위를 좁혀버린 뒤 아이들은 늘상 집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때 아이들이 갖고 놀 수 있게 풍선을 자주 불어줬는데, 그게 아이들 기억에 많이 남았나봅니다.


딸아이는 여러 방식으로 풍선을 갖고 놀았습니다. 풍선이 부풀듯 딸아이 흥도 몸피를 키웠습니다.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결. 결이가 큰 눈망울을 반뜩이며 풍선으로 놀던 순간을 묘사했습니다. 결의 에피소드에 남동생 설이는 단골손님입니다.








주제: 풍선

나는 풍선이 좋다.
왜냐하면 풍선으로 할 수 있는 놀이가 많아서.
1는(하나는) 풍선을 불어서
안떠러트리기 놀이를 하는 거랑,

2는 풍선을 불고 안 묶은 다음애
로캐트처럼 날아다니개 하는거다.
그런대 풍선이 먼지가 많은 곳으로 갔다.

3은 물폭탄!
풍선애 물을 너어서
설이한테 발사하는 거다. 끝!











풍선이란 소재를 접하는 순간 저는 '애드벌룬'을 떠올렸습니다. 잊을 수 없는 바로 그 장면. 어릴적 아버지는 틈날 때마다 나와 동생을 차에 태우고 대천해수욕장에 드라이브를 가셨습니다. 늘상 보는 풍경인지라 지루했지만 탁 트인 바다를 내려다보는 건 좋았습니다.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날은 아버지가 코스를 평소와 다르게 밟으셨습니다. 대천해수욕장 구광장을 찍고 즐비한 횟집 앞을 따라 신광장쪽으로 쭉 내려오는 게 아니라 사이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는 변화를 꾀하셨습니다. 심드렁하게 뒷좌석에 앉아 있던 저는 '음.. 평소랑 다른 길인데' 하는 생각에 자세를 고쳐잡았습니다. 창문을 내려 바깥바람도 쐬고 각 횟집 앞 어항에 전시된 우럭이나 광어 따위를 훑어봤습니다.


'왜 사람들이 나와 있지?' 어느 횟집 앞에 7~8명 정도가 나와 일제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도 하늘을 올려다봤죠. 사람들의 시선은 저 하늘 높은 곳을 날아가는 ‘끈 떨어진 애드벌룬’에 닿아 있었습니다.




풍선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태우고
드라이브하길 즐기셨다. 그날도 우린 드라이브를 떠났다.
아빠와 나, 동생은 대천해수욕장을 한 바퀴 쭉 돌았다.

구광장을 찍고 신광장으로 돌아올 무렵이었다.
한 횟집 앞에 일고여덟 명의 어른들이
하늘을 뚫러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더러는 손으로 하늘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버지가 횟집 골목길을 서행 중이었기에 찬찬히 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저 하늘 멀리 끈 떨어진 애드벌룬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애드벌룬 주위에 하얀 뭔가가 비행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십수개로 나뉘었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역동적인 비행이었다.
새라고 하기에는 움직이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빛처럼 움직였다.

나중에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그 하얀 물체들이 UFO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방송에 소개된 UFO와 내가 본 하얀 물체들의 움직임이 똑같았다.
아버지도 동생도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내 2.0 시력으로 명징하게 목격했다.

아직도 내 눈에 선한 그 장면!
풍선 속 주위를 빠르게 맴돌던 빛들.
그것들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아내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듯 했습니다. 생일 파티 등을 열면 과하지 않으면서도 예쁜 포인트를 살리는 게 아내의 데코레이션 센스인데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이런 센스를 부모님으로부터 물여받았구나 싶었습니다. 두 분이 어린 아내를 위해 풍선을 묶고 정갈하게 식기를 준비하는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더라고요. 한국에 살 때는 방송일에 직장 생활까지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의 생일을 정성껏 준비하지 않았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풍선
변진경

부모님은 내 생일이 되면 매년 집안 가득 풍선을 불어
매달아 주었다. 놀라온 친구들이 집에 가져갈 풍선엔
하나하나 리본도 묶으셨다.
각각의 아이들이 앉을 자리,
사용할 접시 위에 이름표를 두는 일도
잊지 않았다.

집이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 집에서의 파티는
늘 정성스럽고 아름다웠다.

삶의 한 순간을 소중하게 대하고
기록하는 습관은
부모님의 풍선 이벤트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글을 쓰기 위해선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둘러싼 생각의 파편을 수집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같이 글을 쓰려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의 공통 분모, 즉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게 되더라고요. 그렇데고 굳이 어릴적 이야기 일변도로만 가지도 않습니다. 5주차 글쓰기 놀이를 2월 첫 주 토요일에 마쳤는데, 이때 아내는 첫 아이 임신 당시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더라고요. 5주차 글쓰기 주제를 미리 알려드리면 ‘기쁨’인데, 이때부터는 오디오로도 녹음해 함께 게시할 예정입니다. 소감이나 질문 있으신 분은 댓글로 남겨주세요 : )


by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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