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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Nov 04. 2023

염치 없는 자에게

염치는 '염조'와 '지치'가 하나된 표현입니다. 뜻은 청렴과 지조를 지키고 수치심을 아는 것. 맹자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염치를 몰라선 안 된다"고 일갈합니다. 염치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염치 없는 인간의 말로는 어떨까요. 최근 연예인에 대한 근거 없는 원색적 소문을 유튜브로 퍼뜨리며 돈을 벌던 모 인사가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잘 됐다', '속 시원하다'는 인격 모독적 반응이 쏟아졌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생전에 그가 염치 없는 짓을 너무 많이 벌였기 때문일 겁니다.


염치 없음의 궁극의 사례로 영화 '밀양'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들을 죽인 살인마를 찾아 신애(전도연 분)는 교도소로 갑니다. 고통스런 번뇌 끝에, 예수의 사랑으로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살인범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궤변이었습니다. 피해자와 상관 없이 말이죠. 관객의 피를 거꾸로 펌프질하는 역대급 장면으로 꼽힙니다. 그냥 저 생명체(살인범)는 싸이코패스죠. 염치가 없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싸이코패스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감 능력이 마이너스고 도덕 개념은 상식의 범주를 현저히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염치가 있는 사람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압니다. 공자는 '중용'에서 "수치를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죄를 지은 대상에게 고개를 숙이고 천번이고 만번이고 뉘우치는 건 용기입니다. 독일 정치권의 끝없는 홀로코스트 반성은 그런 면에서 꽤 큰 용기입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귀책에 대해 국제 사회가 지적을 하더라도 독일이 일관되게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건 굉장한 용기입니다. 독일이 지속해온 과거사 반성의 노력을 알기에 국제 사회도 독일의 이스라엘 지지를 강하게 비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어떤가요? 돈 좀 내고 과거사 청산 끝났다는 태도입니다. 수치를 아는 자의 용기라기 보단 염치 없는 인간의 객기에 더 가깝습니다. 염치 없이 굴더라도 일본은 잘 삽니다. 전범 피해국과 당사자들의 상처만 벌겋게 곪을 뿐입니다.


살다보면 염치 없는 생명체를 실제 접하게 됩니다. 그들은 권위 의식에 갇혀 있거나 하루바삐 수치스러움을 벗어나고 싶은 이기심에 현혹된 자들입니다.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사리판단을 못하는 우둔한 자이거나 처음부터 사이코패스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영화 '밀양'처럼 신을 운운하며 염치없는 궤변을 일삼는다면,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A라고 말하고, 저기서 B라고 말하는 교활한 자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순자는 "염치를 모르면서 음식만 축내는 사람은 아주 악질적"이라며 "이들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도 가능하다"고 일갈했습니다. 죄는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사람이라면 염치를 견지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무한한 수치심과 지조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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