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과정에서 커피챗의 목적과 실전
저희 면접 프로세스는 “서류 전형 - 커피챗 - (사전과제) - 직무면접 - 임원면접”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중 커피챗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전담해서 진행했던 커피챗을 이제 넘겨드려야 할 때가 왔거든요.
커피챗은 말 그대로 "커피 한잔하면서 이야기해요."입니다. 채용 과정에서의 커피챗은 “서로(지원자와 회사)를 좀 더 알아봐요.”입니다. 지원자는 면접관을 통해서 회사의 첫인상을 확인하고, 면접관 또한 지원자의 첫인상을 경험합니다.
지금까지 8퍼센트 플랫폼 본부에 들어오신 분들은 모두 직무면접 전에 저를 만나셨습니다. 최근에 들어오신 분들은 코로나의 영향으로 줌으로 만났습니다. 조금 오래되신 분들은 회사에 오셔서 진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계신 곳까지 찾아간 분도 있고, 첫날부터 산책을 하거나 맥주를 마신 분도 있네요. 형식은 다양했지만 결국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였습니다.
저도 몇 번의 커피 챗을 통해 지금의 회사에 조인하게 되었습니다. 스타트업의 대표가 구성원을 뽑기 위해 저를 직접 찾아와 회사의 비전, 사업모델, 팀을 소개했던 것이죠.
지원자가 “와! 이 회사 멋지다. 꼭 입사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겁니다.
채용 프로세스의 다른 모든 과정과 달리 커피챗의 목적은 지원자의 검증이 아닙니다. 회사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이 회사가 지원자와 핏이 잘 맞을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부담스러운 채용 프로세스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특히 좋은 분일 수록) 다른 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시간을 써야만 하는 사전 과제, 부담스러운 기술 면접 등을 넘어서고, 수많은 회사 중 우리 회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대단한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채용과정은 빨리 끝날수록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꼭 커피챗이라는 과정을 두고자 합니다.
초두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 제시된 정보가 맥락을 형성하고, 맥락 속에서 나중에 제시된 정보를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 제시된 정보가 긍정적이면 이후에 입력된 정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나중에 부정적인 정보가 들어오더라도, 뇌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정보를 왜곡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야! 그 회사 CTO가 좀 괴팍하다고 들었는데?"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흠.. 그 회사 CTO가 주관이 뚜렷해서 그렇게 소문이 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는 식입니다.
또한 후광효과라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사물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그 일부의 긍정적, 부정적 특성이 전체적인 평가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면접관이 친절하고, 역량이 높아 보였다면 그 팀도 그럴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게 됩니다.
두 가지 효과 모두 첫인상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커피챗을 통해 첫인상을 나누게 되며, 첫인상은 입사 결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커피챗이 중요합니다.
커피챗의 진행에 앞서 한번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커피챗은 지원자를 위한 자리입니다.
커피챗은 지원자의 검증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커피챗을 진행하는 면접관은 회사의 도슨트가 되었다고 생각해 주세요. 회사에 관심 있는 방문자에게 회사를 친절히 소개하는 겁니다.
지원자를 주니어 개발자 정섭님으로 가정하고 진행해 보겠습니다.
1. 간단한 소개 (2분)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소개를 합니다. 면접관의 소개를 먼저 하세요.
"안녕하세요? 정섭님. 저는 에잇퍼센트 CTO 이호성입니다. 저회 회사에 관심 갖고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2. 커피챗의 목적 소개와 아이스 브레이킹 (2분)
커피챗의 목적을 설명합니다.
“이렇게 본격적인 면접 과정 전에 커피챗을 요청드린 것은 저희 회사에 대한 소개를 직접 드리고, 정섭님이 회사에 궁금하신 것에 대해 답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대화 중에 언제든 편하게 질문을 주셔도 좋습니다. 저도 몇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오늘은 기술적인 이야기를 나누진 않을 테니 편하게 생각해 주세요."
필수적이진 않지만 면접관이 간단한 질문을 이용해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 주셔도 좋습니다. 이때 이력서상에 있는 것과 연관 지어 주시면 더 좋습니다.
“와. 그러고 보니 최근에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셨더라고요. 이쪽 기술에 관심이 있으신가 봐요?”
3. 회사에 대한 소개 (10분)
커피챗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시 한번 도슨트가 된다는 생각을 가집시다! 장표를 미리 준비해 두고, 그 장표를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저희 장표에는 다음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회사 소개
개발 스택, 프로세스, 문화
근무환경, 복지, 보상
채용 프로세스
첫 번째, 개발자라 하더라도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설명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부분은 제일 중요합니다. 이 부분을 잘 설명할 수 있도록 미리 충분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타깃팅 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분의 지원서류를 커피챗 전에 살펴보고 원하는 바를 파악해 둡시다. 보통 이런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면 좋겠다.
함께 일할 동료가 훌륭하면 좋겠다.
내가 커리어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회사에 재미있는 도전과제가 있으면 좋겠다.
유연한 근무 형태이면 좋겠다.
이전 직장보다 보상이 개선되면 좋겠다.
그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다른 회사와 달리 거의 파이썬만 이용해서 금융 시스템을 만들고 있어요.”
“제가 원하는 조직은 함께 학습하고 성장하는 조직입니다.”
“제가 이 회사에서 좋아하는 것은 코드 리뷰를 빡빡하게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재택근무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면접관이 회사와 팀을 좋아하고,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가 저를 대신해서 커피챗에 참여하는 것을 요청드린 분이라면 이 역할을 충분히 잘해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4. 질문받기 (10분)
지원자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욕구를 회사가 채워 줄 수 있다면 해당 부분을 효과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정섭님. 회사, 팀, 혹은 저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물어봐 주시겠어요?"
질문에는 솔직하게 답변을 해주셔야 합니다. 회사의 정확한 상황을 알려주시고, 부족한 부분은 인정해 주세요. 그래야 다른 부분이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큰 트래픽을 다루기 위해서 어떤 구조를 갖추고 있나요? 혹시 오토 스케일링을 하고 있나요?
"저희 서비스가 큰 트래픽을 다루진 않습니다. 그래서 오토 스케일링을 하고 있지 않고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저희는 복잡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결함 없이 다루는 부분에 대한 도전과제가 있습니다."
5. 질문 하기 (5분)
지원동기를 여쭤 봅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입니다.
"어떻게 저희 회사에 지원하시게 되셨나요?"
"새로운 회사를 찾고 계신데, 그 기준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업에 대한 진정성을 여쭤 봅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입니다.
"언제 개발을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개발자로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지금 개발자로 일하는 삶은 어떠세요?"
"앞으로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으세요?"
마지막으로 서류에서 명확하지 않아 꼭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물어봅니다.
"이 기간이 경력상으로 비어 있는데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병특으로 지원하셨는데, 현재 4급이 맞으신가요?"
6. 마무리 하기 (1분)
지원에 대한 감사함을 표시하고, 다음 단계를 안내합니다.
"오늘 커피챗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이후에는 사전과제를 메일로 안내드립니다. 사전과제를 진행해 주시면 기술면접으로 이어집니다."
간혹 꼭 잡고 싶은 분이 있으시면, 내부에 있는 분과 커피챗을 한번 더 연결하기도 합니다.
"저희 팀에 유사한 커리어를 경험하고 입사하신 분이 계세요. 한번 만나 보시겠어요?"
"저희 팀에 학교 선배님이 이미 병역특례를 하고 계세요. 한번 만나 보시겠어요?"
제가 커피챗 이후 다음 프로세스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A를 물어봤을 때 A를 듣지 못했다. =>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
커피챗에 집중할 수 없었고, 빨리 마치고 싶었다. => 매력적인 분이 아니다.
본인의 업에 대한 진지함이 없다. => 성장 가능성이 낮다.
부정적인 감정(우울감, 좌절감 등)이 드러난다. => 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함께 하고 싶은 분이라면 이후 면접 과정을 위해 커피챗의 질문과 답변들을 정리해 둡니다.
제가 위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커피챗이 마쳤을 때 서로 "즐거운 대화였다" 또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라는 생각만 들어도 성공일 겁니다. 박물관을 신나게 구경시켜 드리고, 관람자가 만족해서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도슨트는 성공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