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3이 된 첫째 조카가 꼬꼬마였을 때
바쁜 시즌이라 계속 야근하던 언니를 대신하여
하원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에
조카를 데리러 갔던 날들이 있었다.
문 앞에서 언니가 아닌 나를 처음 발견한 후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며 세상 무너진 듯
실망한 표정을 짓다가
애써 웃어보이며 끝내 울음을 삼키던
조카가 안쓰러웠던...
15년이 지났지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리다.
요즘 나는 그때의 조카처럼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잘 되지 않아
툴툴거리며 나를 따라 나선다.
누구를 그토록 바랐던 것인지
이제 그 누구도 찾아 오지 않는 내 곁에
아무 말 없이 외롭게 서 있는 유일한 사람
병든 강아지처럼 곧 죽을 것 같은
아무 힘도 되어 줄 수 없는 나약한 모습이지만
친구가 되어주겠다던 약속을 지키려고
근직하고 곡진하게
어김없이 매일 나를 마중나오는 그녀를
언제쯤 한달음에 달려가
반갑게 끌어안을 수 있을까
지금 내 원하는 모습이 아니어도
기다리고 그리워했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음을 모르지 않고
분명히 아는 한가지
나는 비록 자주 보지 못하나 그녀안에
빛나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숨겨두셨으니
신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줄 존재를 경축하고
평생 누구보다 잘 지내며 사귐을 누리어야 할
그녀를 철석같이 믿고
손잡고 길을 나서야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하뭇하게(마음에 흡족하여 만족스럽게)
더 험한 오르막길도
한 소망으로 함께 오를 수 있기를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어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