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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플 Oct 14. 2023

각자의 늑대와 살아가는 사람들

늑대물린여자 에필로그



퇴사 후 예약해 놨던 대학병원의 외래 진료실을 찾은 날이었다. 점점 심해지는 관절통으로 나는 양손목에 부목을 대고 있었다. 


“제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고요. 진짜로 관절들이 아파서요.”


진짜예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언제나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녀였던 나는 이번에도 의사가 내 말을 반은 믿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나 보다. 힘없이 두 손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은 일어나 뒤의 침대에 누우라고 하더니 내가 제일 아프다고 말한 손 관절을 포함해 골반, 허리, 쇄골, 무릎, 발목 등을 꼼꼼하게 만져보며 촉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세하게 직접 만져보며 진단하는 것이 처음이라 당황했다. 그가 만져보는 곳이 모두 평소에 아프다고 생각하는 곳이라서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이 모든 곳을 아프다고 해도 믿는 사람이 없어 가장 아프다고 생각하는 곳만 말해오고 다른 곳은 그냥 근육통이겠거니, 원래 뻐근한 곳이겠거니 생각하고 살아왔다.

당황해 나오는 대답이란 “아프지만 참을만해요.”, “아, 아픈데 그래도 괜찮아요.” 같은 종류였다.


얼마나 우스운 대답이었을지. 

의사는 내게 긴 설명을 해주거나 굉장히 친절하지는 않았으나 꼭 필요한 설명은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환자분이 아픈 부분들은 루푸스 때문이 맞아요. 루푸스 환자들이 많이들 겪는 증상들입니다. 약으로 조절해 보죠.”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나만 유난인 게 아니고, 루푸스 환자들이 엄살인 게 아니야. 정신적 문제도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욱신거리는 손가락의 통증이 심장을 건드렸다. 엄살이 아니라는 말이 어떤 약보다 더 안심이 되어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무던한 의사의 말이 그 어떤 말보다 더한 공감이 되었다.

입술을 꽉 물었다가 앞으로 바꿀 약물을 설명하는 의사의 앞에서 뚝뚝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루푸스라는 진단을 받았던 날 진료실에서도 덤덤했는데, 간호사와 레지던트가 함께 앉아있는 민망한 진료실 안에서 참 새삼스럽게 울었다.


공감받는다는 감정은 알아준다, 혹은 알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느낀다. 거기에는 엄청난 미사여구가 필요하지 않고 유려한 심리 묘사가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진료실은 루푸스 전문가가 있으니 그렇지 않느냐고는 하나, 상대방의 힘듦을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 아픔을 해석하려 들지 않는 태도는 일반인들도 모두 견지할 수 있는 태도 아닐까.






많은 루푸스 환자들은 경증만 앓는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증이란 장기부전, 정신질환 등 2 차성 질환이 따라오지 않는 정도를 의미한다. 

나는 대학병원으로 옮긴 후 몇 개월 간 원인 모르고 끙끙 앓았던 가슴통증의 원인을 알아냈다. 심장과 폐 주변에 물이 찼기 때문이란다. 심장에는 염증이 꽤 많이 퍼졌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경증이다. 입원이나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니까. 요즘은 신장에 염증이 생겼다. 그래도 경증이다. 피검사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는 작용만큼 부작용도 심하기 때문에 오래 먹을 수가 없지만 나에게는 그 뚜렷한 경계선이 느껴진다. 한알 반. 

한알 반 이하로 스테로이드 용량을 줄이면 관절염이 귀신처럼 따라붙는다. 혈액검사로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경증이다.


의사가 내 관절염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약을 줄여나가는 사실이 예전처럼 무섭지만은 않다. 의사 선생님은 예비약을 넣어준다. 못 견딜 만큼 아플 때에는 스테로이드를 증량해 먹으라는 의미이다.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여기며 나는 딱 하루, 스테로이드 한알을 더 먹었다. 의사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고 싶었다. 공감에서 오는 힘이란 이렇듯 참 크다.



나는 여전히 늑대에게 물린 여자다. 조금만 무리하면 다음날 어김없이 뺨에 발긋하게 홍반이 올라오고 햇빛에는 나날이 예민해진다. 루푸스를 마주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 아직 짧은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이 든다. 수용하지 않았을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가끔은 우울해진다. 

언젠가는 루푸스를 받아들였노라 여러분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날이 올까. 나는 계속 늑대와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글도 계속되리라. 


이 조각글들의 모음이 당신이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양치기 소녀가 실은 진짜 늑대를 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만 한다면 좋겠다. 

그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통증과 싸우고 햇빛도 보지 못하는 나날 속에서 그런 당신의 존재가 햇살보다 따뜻할 테니까.


그리고 혹시, 당신이 아무도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을 겪고 있다면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신에게 관심이 없고,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는 '아, 몰랐어.'라고 하니까. 


서로 기대고, 기대어주자. 늑대를 봤다는 말을 믿어주고, 서로의 아픔을 상대적으로 비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자.

우리는 모두 각자의 늑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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