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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플 Nov 20. 2023

소음이 원수? 이웃이 원수?

편두통의 시작 2



(전편 : 편두통의 시작 1. 층간소음이 걱정이다.)

https://brunch.co.kr/@papagena10/37




아, 택배기사님의 전화를 받으며 일어났습니다. 이를 어쩌지요. 실수투성이 제가 이번에는 주소를 잘못 적었답니다.


"17층이시라면서요. 이 건물은 5층까지밖에 없는데요?"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주소를 확인해 보니 잘못 적은 게 맞습니다. 


"다른 구에 가있는 물품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잔뜩 기가 죽은 저에게 일단 다시 주소를 불러보라던 기사님. 감사하고 또 미리 죄송합니다. 줄줄이 콩떡으로 다른 배송물품들도 차례차례 그곳으로 갈 예정이거든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몇몇 개의 물품이 그쪽으로 또 가고 있다고 말씀드린 후 멍하게 침대에 앉아있다가 부엌으로 가 아침약을 먹습니다.






제가 먹는 아침 약에는 '토파맥스'가 있습니다. 뇌전증 치료제로도 쓰이는 토파맥스는 혈관을 확장시켜 피가 원활하게 돌게 해 편두통을 예방하는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어요.


이 토파맥스의 부작용 중에 인지기능장애가 있는데 사람이 참 멍해집니다. 행동과 말이 어눌해져요.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 정도로요.


저는 대화를 할 때 단어선택이 잘 되지 않습니다. 타인과 대화할 때 언어 선택을 잘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거리게 되기도 하고, 머릿속이 예전처럼 빠릿빠릿하게 전기가 돌지 않습니다. 물 위의 해초처럼 느릿하게 유영하는 기분일까요. 성격도 따라서 좋게 말하면 차분하게, 나쁘게 말하면 멍하게 바뀌더랍니다.


지금 정도의 수준으로 오기까지 혼자 꽤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전화 하나, 상담 한 번을 하기 전에도 할 말을 정리해 노트에 적어 정리해 연습해 왔습니다. 상담을 하는 직업이라 더더욱이요. 


누군가는 그렇게 부작용이 많은데 왜 그 약을 계속 먹냐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동안 전조성 편두통을 한 번도 겪지 않았으므로 약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했습니다. 약을 먹지 않았을 때의 결과는 이미 겪어보았기도 하고요. (브런치북 늑대물린여자 - 10화 멀리서 보면 뻔한 결말 https://brunch.co.kr/@papagena10/14)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두통약을 달고 살게 한 시작으로 가봅시다. 그 집 부부는 악다구니를 쓰며 어머니에게 화를 냈습니다. 공부를 하는 재수생 딸에게 층간소음보다 저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은데, 그런 건 개의치 않는 듯했습니다. 


"내가 내 집에서 청소기도 돌리지 말고, 빨래도 하지 말고, 이제는 설거지도 하지 말라고?"

"그래! 집안일하지 마! 하지 말고 살아!"

"이 여자가 정신이 나갔나, 지금 뭐라는 거야!"


남편 쪽이 문을 쾅쾅 발로 차며 화를 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불만이면 나가라고! 우리 딸 대학 떨어지면 네 집 자식들 가만 안 둘 줄 알아!"


자식은 저희 어머니의 역린입니다. 어머니의 스위치가 켜진 순간, 셋의 말다툼에 욕이 섞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물에 잠겨드는 것처럼 웽웽거렸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마구 숟가락으로 범벅이 되어 비벼졌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바늘이 되어 뇌를 찔렀습니다. 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다들 시끄러워요!"


중학생의 고함에 복도가 조용해졌습니다. 이윽고 버릇이 없다느니, 애미나 딸이나 똑같다느니 고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머리를 부여잡고 나가 시끄러우니 내려가라고, 당신들 목소리가 제일 시끄럽다고 외쳤습니다. 


"아줌마 아저씨 때문에 딸내미 대학 떨어지겠어요!"


지금의 저도 할 수 없는 말을 그때의 저는 어떻게 했는지. 그러자, 일층에서 머리를 질끈 묶은 젊은 여자가 씩씩거리며 올라왔습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큰딸이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계단 아래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듯했습니다.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제 앞으로 다가와 욕설을 하며 어디 학교냐, 몇 살이냐 물어대더군요. 손가락으로 어깨를 툭툭 밀자 어머니가 화가 나 상대방의 손을 쳐냈고, 그에 화가 난 상대 쪽도 저를 다시 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는 점점 더 웽웽 울리고, 정신을 잃을 것 같은데 윗집과 옆집 이웃들이 하나 둘 나왔습니다.


"거 듣다 듣다 너무하네, 진짜. 이게 몇 번째예요?"

"저번 집 때는 경찰까지 불러가면서 그랬잖아요. 그만하고 삽시다."

"배려 좀 하세요. 애들만 있는 집에 너무하잖아요. 예?"


1층집이 일으킨 소란이 하도 많다 보니 이웃집들은 그 사람들에게 모두 한 마디씩 던졌습니다. 옆집 할머니는 머리를 부여잡은 저를 껴안고는 "저번엔 집에 사람도 없는데 시끄럽다고 했잖아요!"라며 역성을 들어주었습니다. 아저씨는 억울하다는 듯 "이웃끼리 정이 없어, 정이!" 그러면서 당신들이 아랫집에 사는 설움을 아냐고 화를 내었고 아줌마는 화가 난 큰딸을 달래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저희 집 또한 집 안으로 들어갔고, 이렇게 일단락되나 했으나 평화는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저의 두통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저녁밥을 모두 토하고 잠든 저는 다음날, 그다음 날에도 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찾아온 편두통이 두세 시간 간격으로 찾아왔다가 돌아가기를 반복했거든요. 결국 사흘 째 되는 날, 어머니는 눈을 뜨지 못하는 저를 데리고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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