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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마담 Dec 24. 2020

Oh Paris

넷플릭스 인기작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았다. 바삭하고 달콤한 과자를 집어 먹을 때 으레 그렇듯, 가볍게 시작한 그것은 나도 모르는 새 착실히 진행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벌써?라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빈 껍질만 남기며 끝이 나 있었다. 과자만큼이나 가볍고 맛있는, 아주 오랜만에 본 로맨틱 코미디물이었다.

     

미국 시카고 출신의 주인공 에밀리가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배경으로 선택한 곳은 프랑스 파리다. 나는 이 문장 전에 왜 하필 파리였을까.라는 문장을 썼다가 수정했다. ‘왜 하필’이라는 말은 적절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파리’라는 도시는 ‘그럴 만하니까.’ 파리는 대표적인 ‘낭만의 도시’이니까. <미드나잇 인 파리>, <비포 선셋>, <비포 선라이즈>, 그리고 <파리의 연인>까지. 어마어마하게 인기를 끌었던 로맨스물들이 그것을 명명백백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낭만. 내게도 파리의 낭만이 있다. 그 낭만은 내 몸속 어딘가에 희미하게 붙어있다가 눈을 감고 그 시간을 떠올리면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했던 스물한 살, 그 겨울의 차고 낯선 공기의 촉감과 그 시절 설렘의 감정에 숨을 후, 불어넣고 되살리고는 나를 간지럽히고야 마는 것이다.


방문해본 사람들이라면 십분 공감하겠지만 실제로 파리는 내 생각만큼, 영화에서 보았던 만큼 아름다운 도시만은 아니었다. 냄새는 실로 고약했고, 낡았으며, 사람들은 불친절했고, 나는 명백한 인종차별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 뚜렷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파리를 여전히 낭만적이라고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이유는 에펠탑도, 루브르도, 그리고 센 강 도 아니요, 다만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 인연―그것도 단 이틀 동안―의 덕이 가장 크다 하겠다.  


한인 민박에서 만난 오 씨 성을 지닌 대학생 여자아이. 나와 동갑내기라며 반가이 다가와 인사하는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참 ‘반듯하다’라고 생각했다. 동그랗고 뽀얀 얼굴에 정갈한 이목구비가 그랬고 나완 다르게 지적이고 차분한 말투가 그랬다. 자신의 것으로 배정된 침대에 몸을 기대 무언가를 열심히, 열중하며 쓰고 그리고 있던 첫 모습도 그랬다. 그날, 타지에서의 만남이 늘 그렇듯 민박에 묵고 있던 여럿이 단숨에 친구가 되어 여행 얘기로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썩 가까워졌다 싶었을 때도 그녀의 정갈함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경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단 그녀가 나와 퍽 다른 명문대생이라는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다음날 인원 대부분이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움을 미처 감추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을 때, 하루를 더 머무른다며 오 양은 내게 불쑥 동행을 제안했다. 잠깐 어색하지 않을까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어차피 홀로 하던 여행, 딱히 정해둔 일정도 없었기에 나 역시 그녀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다.      


육 개월 넘게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떠나온 유럽 여행이었다. 체코부터 시작해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에 이르면서 벌써 한 달 가까이 흐른 시간은 여행을 일상으로 환치하곤 어깨를 짓누르는 지겨움과 힘듦, 짜증마저 건네 오기 시작했고, 여행의 설렘을 더욱 부풀게 하던, 낯설고 신선했던 공기는 마뜩잖은 서먹한 공기로 변해갔다. 나라마다 붕어빵처럼 꼭 닮은 크리스마스 마켓은 싫증이 났고, 눈 쌓인 겨울 풍광은 어딜 가나 별다를 것 없이 같은 것을 보는 듯 지루하게 여겨졌다.


되풀이라는 늪에 빠진 것처럼 점차 나는 얄팍해지고 둔감해졌다.      


이제 제법 쌓여 밟을 때마다 뽀득 소리를 내던 흰 눈보단 꽁꽁 언 발가락에 신경을 쓰며 걷던 어느 순간 그녀가 문득 말을 걸어왔다.      


“기분 좋아?”

“좋아. 진짜.”

“그런데 연주 너는 왜 노래도 부르지 않아? 춤도 안 추고.”     


그리고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춤을 추듯. 눈 위에서.      


정말이지 생각지 못했던 언어들. 당혹함에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정말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를 어정쩡하게 뒤따르다가, 답가 대신 이내 나는 쪼그려 앉아 눈을 뭉쳐 집어 들었다. 이전에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았을 눈은 깨끗했고, 아주 찼다. 우리는 웃었고, 뛰었고, 즐거웠고, 각자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누르고 소감을 소리쳤다. 어제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나는 몇 번 수줍은 댄스를 시도했고, (노래는 결코 할 수 기에) 그것은 비록 어색한 몸짓에 그쳤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마저도 낭만적이었으므로.     


수많은 예술가가 거쳤을 몽마르트르 언덕길을 그녀와 오래 걷다가, 몽마르트르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어쩌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지 모를 몇몇 화가들과 그들이 그린 그림을 구경하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진심으로 즐겁게 느껴지는 그녀의 노래를 감상하다 나는 문득 함이 부풀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부터였다. 파리가 내게 실제 낭만이 된 것은.   

  

다음날, 그녀는 연주야, 하며 내게 불쑥 편지를 건넸다. 여느 때와 같이 그녀의 침대에 몸을 기대 썼을 짤막한 편지를. 그리곤 우리는 헤어졌다. 잘 가. 낭만적으로.      


나는 그녀를 그날 이후로 보지 못했고, 낭만의 증거로 소중히 간직해오던 그 편지도 십이 년이라는 시간의 흐름과 나의 부주의가 혼합되면서 분실되었지만 흰 눈 위에서의 그녀, 그리고 그 낭만의 이미지그 어떤 보다도 내게 확실하게 새겨져 있다는 것은, 놀랍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스물한 살 두렵고 설렜던 첫 유럽 여행. 그때를 떠올리면 나는 늘 파리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여전히 파리가 ‘낭만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굳게 움켜쥐고 있기도 하지만, 에펠탑이 아닌, 루브르가 아닌, 강도 아닌, 흰 눈 위의 오 양 그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까닭은 역시나 그녀가 건드려 깨워준 의 진짜 감성 때문이랄까.  장면, 그 순간의 감정, 교감, 그리고 남과 헤어짐의 과정까지 포 그 모든 것이 파리의 낭만이었다.


이제 나는 기분이 좋으면 곧잘 흥얼거린다. 간혹 춤도 춘다. 그리고 감동적인 것을 보면 입 밖으로 외치는 것이다. ‘와!’ 그러니까 와, 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탄성으로. 내게 남은 그녀와 파리의 낭만이다.


또다시 파리가 그리워진다. 낭만을 일깨워준 그녀가 그리워진다. Oh, Paris! 내게도 파리의 낭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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