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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빈 Jan 14. 2019

어른스러움과 나다움

그는 표정이 다양하고 유머감각이 있었다. 어른들은 생기 있는 그를 보면 '낙엽이 굴러가는 것 만 봐도 웃을 때지. '라고 말하곤 함께 너털웃음을 지었다.


몇 년 후 그는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동기의 솔직함에 대하여 조직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너무 튄다거나 조직에 융화가 어려운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식이었다. 그는 점점 점잖고 차분하게 행동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절제하고 검열했다. 몇 년이 지나 그는 참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어느 순간 감정은 평이해졌고 그렇게 재미있는 날도, 그렇게 마음이 괴로운 날도 없이 하루가 순조로워지기 시작했다.


한편 그와 동료로 함께 일하는 그녀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왜 이렇게 마음이 힘들까? 저 사람은 저렇게 무던하게 잘 살아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지?





나는 가끔 세상이 말하는 '어른스러움'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곤 한다.


그 범위는 포괄적이어서 삶을 살아가며 마주치는 다양한 순간에 딱 맞는 지침이 되지는 못하면서도 우리의 행동을 감시하고, 보이지 않는 틀 속에 가둔다. 모두는 각자의 최선을 방패로 세상을 마주한다. 그러나 유교적 통념이 아직 사회 곳곳에 잔재한 우리나라는 쉽게 남을 평가하고 평범과 비범을 규정한다. 그 과정에서 비난받은 이가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과연 그 사람이 나약해서일까?  


그가 몇 년의 시간에 걸쳐 자신을 절제하고 어른이 되었듯이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 결국엔 누구나 단단해진 마음속에 자신을 숨기는 노하우를 알게 된다. 그리고 사회 속에 그럭저럭 녹아들 것이다. 개개인마다 시간적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그렇게 된다.


나는 묻고 싶다. 끝끝내 우리 마음을 흔드는 많은 감정들에 유연하고 능숙해졌을 때. 그녀는, 그리고 당신은 과연 어른이 된 걸까, 아니면 '어른스러움' 속에 흐려진 걸까. 어디선가 읽은 글귀가 떠오른다.



인생의 첫 번째 절반은
어른이 되는 것을 배우고
나머지 절반은 아이가 되는 것을 배운다






보빈

Designer · Illustrator


Email : mia.bak03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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