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정석
이같이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의 애환과 고통이 깃들어 있는 책이 또 있을까? 우리들의 꿈, 희망, 좌절, 고뇌, 희열, 눈물, 침(베고 자다가...) 등 우리의 모든 인생사의 희로애락이 이렇게 집약되어 있는 책은 이 책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수학의 정석.
엄청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수학의 바이블. 대한민국 고교생의 공통 책상 베개(높낮이가 다양해서 나만의 맞춤형 베개를 만들 수 있다), 반에서 1등부터 꼴등까지 모두 함께 갖고 있는 책, 웬만한 애들은 기본 정석, 수학 좀 한다 뽐내고 싶은 애들은 실력 정석, 고교 수학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좋아서 비명을 지르는 책(학생들은 선배 것을 물려받을 수 없다. 또 사야 한다. 실제는 순서만 바뀌지 내용은 별로 바뀌지도 않는다), 일본 책을 그대로 베꼈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본인은 아니라고 3년간 자신이 집필했다고 하지만, 결국 거의 그대로 베낀 것이 입증된 책(일본의 원본이 나중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팔린 책을 모두 쌓아 올리면 에베레스트산(8848m) 156개에 해당하는 높이를 자랑하는 책, 본인도 서울대 수학과, 딸도 서울대 수학과, 사위도 서울대 수학과, 앞으로 자신의 후계자?로 딸과 사위를 지목해서 사위가 표정관리 때문에 고통받게 만든 책(나도 그런 고통이라면...), 항상 앞부분만 새까맣게 변해있는 책(앞은 집합 부분이다. 그래서 웬만한 학생들이 집합은 좀 안다).
대한민국의 독특한 교육열이 창조한 괴물 같은 책 수! 학! 의! 정! 석!
세상에 출몰한 지 50년 동안 4,600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4,600만 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지금이야 예전 같은 위세가 아닐지 모르나, 여전히 수학의 정석은 우리나라 입시교육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책장 깊숙이 꽂혀있는 수학의 정석을 오랜만에 발견했다. 예전에 과외하느라 사용했던 것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나 보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저마다 학창 시절의 다양한 애환이 서려있는 수학의 정석. 같은 책이지만 떠오르는 추억의 파편들은 모두 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