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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여행자 Apr 09. 2020

짜장면에 대한 단상

짜장이냐 짬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랜만에 짜장면을 먹었다. 우리 동네에 얼마 전에 중국집이 새로 생겼다. 왠지 고급스러워 보이는 곳이었다. 호시탐탐 먹어볼 기회를 노리다 오늘 드디어 먹게 되었다. 예상대로 가격은 높았다. 메뉴판을 보며 내가 오늘은 짜장이 당기는지, 짬뽕이 당기는지 느껴보았다. 나는 짜장면보다는 늘 짬뽕을 선호한다. 짬뽕은 자주 당기고, 짜장면이 당기는 날은 아주 가끔 있다. 그런데 오늘은 자극적인 짬뽕보다는 무난한 짜장이 당기는 날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면발이며 소스며 고급지고 정갈한 맛이 났다. 짜장면을 먹는 동안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릴 적에 짜장면은 우리에게 특별한 음식이었다. 지금이야 피자나 다른 다양한 음식이 아이들의 입맛을 홀리고 있지만, 예전만 해도 아이들을 위한 음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보상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줄 때도 짜장면이 일 순위였다. 졸업식 등 특별한 날에는 다 같이 짜장면을 먹는 것이 풍습처럼 자리 잡았었다. 요즘은 잘 모르겠다. 특히 이사하는 날에는 반드시 짜장면을 먹었다. 힘들게 이삿짐을 옮긴 후 허기진 배를 달래려, 같이 이삿짐을 옮긴 사람들끼리 함께 짜장면을 배달해 먹었다. 만약 탕수육까지 시켜먹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에게 언제 먹은 짜장면이 제일 맛있느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당구장에서 먹었던 짜장면이라고 말할 것이다. 중국집 근처에 당구장이 많을수록 그 중국집은 번창했을 것이다.      



이처럼 짜장면은 우리의 추억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론 앞으로의 세대가 자란다면 많이 달라지겠으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럴 것이다. 만약 짜장면이 우리에게 없었다면 과연 어떤 음식이 저 굳건한 짜장면의 자리를 차지했을까? 생각해보아도 마땅한 음식이 떠오르지 않는다. 짬뽕도 아니다. 밥은 종류가 워낙 많고, 짜장면에 비해선 부담스럽다. 라면은 또 느낌이 다르다. 졸업한 후에 가족이 다 같이 라면은 아니지 않은가. 짜장면이여 고마워라. 네가 없었다면 우리의 추억은 서로 제각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로 인해 우리의 추억은 공통분모를 갖게 되었다. 중국에도 없는, 한국식 중국음식이 이렇게 우리 식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일요일엔 짜파게티 요리사로 시작한 인스턴트 짜장은 지금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어떤 브랜드의 인스턴트 짜장이 맛있는지 직접 실험을 다 해보았고, 저마다 선호하는 브랜드의 짜장을 말하며 언쟁 아닌 언쟁을 한 번쯤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실 난 짬뽕을 더 선호한다. 이런 말을 들었다. 짜장면을 좋아하다 짬뽕을 좋아하면 철이든 것이라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갑자기 짬뽕을 좋아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 당시에 벌써 사춘기가 온 것일까. 여하튼 아무리 그래도 짬뽕이 짜장면의 위치를 넘보지 못한다. 짜장면의 아성은 누구도 넘보지 못한다. 짬뽕은 언제나 이인자다. 우리에게 영원한 일인자는 짜장면이다. 짜장이여 영원하라.      



오랜만에 고급스러워진 짜장면을 맛보니 어릴 적에 먹었던 전혀 고급스럽지 않던 짜장면 부터해서 많은 추억이 감돌았다. 우리의 짜장면은 적당한 맛을 계속 유지했으면 한다. 우리가 낯설지 않게 말이다. 나는 앞으로 짬짜면은 먹지 않을 것이다. 짜장면 아니면 짬뽕 둘 중에 한 가지만 먹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각각의 고유한 맛을 지켜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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